[신복룡의 신 영웅전] 나폴레옹의 자비와 청년의 행운
1800년 5월, 알프스의 눈은 아직 녹지 않았다. 프랑스 쪽 알프스 산기슭의 상 베르나르 마을에 산행 준비를 갖춘 한 무리가 나타났다. 주민들은 그들이 누구인지 몰랐다. 그들은 주력 부대와 다른 길로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를 정복하러 떠나는 나폴레옹 일행이었다. 나폴레옹은 마을에서 젊고 준수하며 성실한 산악 안내원을 만났다.
나폴레옹의 알프스 원정을 얘기할 때면 으레 두 발을 치켜든 백마 위에 붉은 망토를 입고 삼각 모자를 쓴 채 알프스 정상을 향해 손짓하는 그림(사진)을 보여주지만, 그런 장면은 역사에 없었다. 그 복장으로는 알프스를 넘을 수 없다. 실제로는 말이 아닌 노새를 타고 넘었다. 그 흔한 그림은 나폴레옹의 신화화 과정에서 나타난 상상화일 뿐이다.
산길을 넘으며 안내원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걸을수록 들을 것이 많았다. 그런데 그 청년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서로 사랑하는 여인이 있는데 처가에서 지참금을 너무 많이 요구해 사랑이 이뤄질 수 없음을 탄식했다. 나폴레옹은 헤어지면서 편지 한장을 써주며 청년의 고향 가까이에 있는 주둔군사령관을 찾아가라고 말했다.
고향에 돌아온 청년이 그 부대 사령관을 찾아갔더니 “그분이 누구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했더니 그분이 바로 프랑스의 통령 나폴레옹이라고 말하면서 땅과 집과 재산을 넉넉히 마련해 줬다(E. Ludwig, Napoleon, 1922).
자, 우리가 여기서 물어보자. 그 청년은 운이 좋았을까. 그것은 요행이었을까. 아니다. 그랬었다면 나는 이 글을 쓰지 않았다. 행운은 준비하고 기다리는 사람에게만 온다. 행운의 여신은 그리 헤프지 않다. 그 청년에게 인생을 고뇌하는 신실한 모습이 없었더라면 나폴레옹은 자비를 베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청년들이여, 지금 당신의 문밖에 행운의 여신이 그대의 선행을 지켜보고 있으니 성실히 살며 절차탁마하시라.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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