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해도 안되는 집, 토트넘을 보며 [IS 시선]

김우중 2023. 4. 27. 00:1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그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그 이유가 제각각이다.”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첫 문장이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의 토트넘 홋스퍼가 요즘 저 문장을 떠올리게 한다. 토트넘의 올 시즌 행보를 보면 불행한 집, 안 되는 집은 안 되는 일들을 참 다양하게도 벌인다는 느낌이다. 

 
25일 토트넘 구단을 통해 공개된 선수들의 사과 메시지. 손흥민을 비롯 토트넘 선수들도 이 글을 공유했다. 사진=손흥민 SNS


토트넘 구단은 26일(한국시간) 공식 홈페이지에 “팬 여러분의 좌절과 분노를 이해한다. 어떤 말로도 이미 벌어진 상황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뉴캐슬 원정 응원을 오셨던 분들께 입장권을 환불해드리겠다”는 선수단의 메시지를 전했다. 

토트넘은 지난 23일 뉴캐슬 원정에서 1-6으로 졌다. 충격패였다. 전반 21분 만에 스코어가 0-5로 벌어졌고, 제대로 손도 써보지 못한 채 무너졌다.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두 번째로 빠른 5실점이었다. 토트넘은 리그 4위 안에 들어가야 다음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받는데, 이날 패배로 사실상 목표가 물건너갔다. 

토트넘 선수단의 원정팬 환불 소식을 전한 미국 ESPN의 유튜브 채널 뉴스에는 한 미국팬이 이런 댓글을 달았다. “미국 스포츠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인데, 잉글랜드에서는 흔한 일인가요?”

이건 유명 축구게임 FM(풋볼매니저) 유저들이라면 익숙한 상황이다. 이 게임은 자신이 구단을 꾸려 컴퓨터와 축구 대결을 하는데, 패배하면 팀 선수들(AI)이 가상의 팬들에게 티켓 값을 환불해 준다는 메시지가 뜬다. 

한때 영국의 이혼률을 끌어올린다는 평가를 들었을 정도로 잉글랜드 남성 축구팬이라면 대부분 몰입해서 즐겼던 게임 안의 상황을 토트넘 선수들이 실제로 실행한 것이다. 실망한 팬을 위한 이벤트다. 

토트넘은 사실 2009년에 반대의 상황을 경험한 적이 있다. 당시 토트넘은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위건에 9-1 대승을 거뒀다. 위건 선수단은 런던까지 차로 4시간 거리를 운전해 원정 응원온 팬들에게 티켓 값을 환불해줬다. “팬들의 응원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도 전했다. 

토트넘 팬들이 선수단의 정성에 감동했을까. 소셜미디어(SNS)와 커뮤니티 반응은 전혀 그렇지 않다. 

선수단이 원정 응원온 팬들에게 티켓값을 환불해주겠다고 나서는 동안 토트넘 구단의 CEO 다니엘 레비는 크리스티안 스텔리니 감독대행을 해임했다. 

스텔리니는 지난달 안토니오 콘테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경질된 후 코치에서 감독대행을 맡은 인물이다. 이번 뉴캐슬전 패배가 스텔리니 감독대행의 포백 전술 실패 탓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안 되면 자르는 것으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진 않는다. 토트넘이 과연 어떤 감독을 데려와서 팀을 재건할지 아직 청사진이 공개되지 않았다. 

다니엘 레비 토트넘 회장. 게티이미지


팬들의 불만은 레비를 향하고 있다. 레비는 선수 영입에는 과감한 투자를 하지 않으면서 빅네임 감독만 데려와서 성적을 내려 했다. 결과는 ‘무관’이다. 토트넘은 2008년 칼링컵(리그컵) 우승 이후 15년간 트로피가 없다. 조제 무리뉴, 콘테 등 우승청부사로 불리던 감독들이 토트넘에 왔다가 줄줄이 성적부진으로 짐을 쌌다. 

토트넘 팬들은 투자하지 않는 레비를 향해 ‘짠돌이’라고 비난한다. 이번 뉴캐슬 참패 이후에도 레비가 한 건 돈을 쓴게 아니라 스텔리니를 자른 것 뿐이다. 환불은 선수단이 주급을 쪼개서 해준다. 토트넘 팬의 소셜미디어에는 ‘한 경기 환불로 성에 차지 않는다. 레비가 나서서 시즌권을 환불해줘라’는 비난일색이다. 

설상가상으로 토트넘의 최고 스타인 공격수 해리 케인은 올 시즌 후 빅클럽으로 이적설이 유력하게 돌고 있다. 과거 토트넘을 챔피언스리그 결승까지 이끌었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은 런던 라이벌팀 첼시로 부임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토트넘 팬들은 원정 티켓이 문제가 아니라 연일 터지는 이적 루머와 팀 패배 소식에 속이 터진다는 반응이다. 



안 되는 집안 토트넘을 지키는 손흥민(토트넘)을 보는 한국 팬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손흥민이 토트넘에 남는다면, 과연 남은 선수 커리어에서 우승은 할 수 있을지 불투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김민재(나폴리)가 올 시즌 이탈리아 세리에A로 이적하기 전 손흥민이 토트넘 구단을 설득해서 김민재 영입에 적극적으로 힘을 보탠 적이 있다는 뉴스가 나오자 한국 축구팬들이 비명을 질렀다. ‘김민재가 그래서 손흥민과 인스타그램 언팔(팔로우 취소)을 했던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토트넘의 문제는 빅 네임의 스타급 선수를 적재적소에 영입하지 않는 것이다. 작은 것에 돈쓰고 생색은 크게 내면서 효과도 없는 감독들에게는 엉뚱하게 돈을 써왔다. 목표 설정을 바꾸든가, 액션 플랜을 바꿔야 하는 게 아닐까. 토트넘을 지켜보면, 우리도 정작 핵심이 뭔지 애써 외면하고 애먼 곳만 고치면서 변명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게 된다. 올 시즌 토트넘은 축구팀이 아니라 철학 과제물 같다. 

스포츠2팀 기자

Copyright © 일간스포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