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아 , 그 독보적인 위대함에 대하여
Q : 이렇게 활발하게 활동한 적이 있나 싶습니다. 자우림 11집과 두 장의 스페셜 앨범 그리고 4월 12일 발매한 첫 솔로 라이브 앨범까지. 이 모든 일이 지난 1년 반 동안 일어났어요
A : 지난해 데뷔 25주년을 맞아 성대한 한 해를 보냈죠. 저희도 신기했어요. 10년 차 때까지도 이렇게 오래 하게 될 것을 예상못했으니까요. 특히 팬들과 의미 있는 곡들을 함께 ‘떼창’하자고 기획했던 〈Happy 25th Jaurim〉 앨범은 저희에게도 각별합니다. 그렇게 활발하게 활동하니 축하도 많이 받고, 불러주는 곳도 생겨서 기쁜 마음으로 출석했어요.
Q : 덕분에 연말 시상식 무대에서 오랜만에 자우림을 볼 수 있었죠. 특히 (여자)아이들과 꾸몄던 ‘MAMA’ 무대가 기억에 남습니다
A : (여자)아이들의 ‘Tomboy’와 매시업을 할 때 어떤 곡이 어울릴까 고민했는데, 강하고 차가운 곡의 느낌이나 코드, BPM이 ‘밀랍천사(Boxing helena)’와 잘 맞아떨어지더라고요. 만족스러운 퍼포먼스였어요.
Q : 놀랄 정도로 잘 어울렸습니다. 오늘 촬영에 입었던 과감한 의상처럼
A : 촬영을 마치고 나니 생각보다 과감했던 것 같긴 하네요(웃음). 하지만 결과물로 보면 또 그렇게 과하지는 않을 것 같아서 기대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둬야 재미있어요.
Q : 본격적인 솔로 활동의 궤도에 오릅니다. 갓 발매된 라이브 앨범은 2019년에 진행했던 두 솔로 공연 ‘노래가 슬퍼도 인생은 아름답기를’과 ‘사랑의 형태’의 실황을 각각 담았죠. ‘Going home’ ‘야상곡’ ‘봄날은 간다’는 두 CD 모두의 리스트에 올랐더군요
A : 팬 서비스입니다(웃음). 사랑받는 곡이거든요. 사실 2020년에 발매하려고 했을 때는 더 야심 찼어요. 두 장의 앨범에 같은 곡을 배치하려고 했으니까요. 특히 ‘봄날은 간다’가 많이 다른데요. ‘노래가 슬퍼도 인생은 아름답기를’ 버전은 기타와 아코디언이 함께 연주한 소편성 곡이고, ‘사랑의 형태’ 버전은 좀 더 익숙한 풀 밴드 곡이에요.
Q : ‘봄날은 간다’가 수록된 솔로 1집 〈Shadow of Your Smile〉(2001)이 발매된 지도 20년이 훌쩍 넘었네요. 오랜 생명력을 지닌 곡을 갖는 것은 뮤지션에게도 신기한 일처럼 느껴질 것 같아요
A : 완전히 신기합니다. 저는 그 곡들을 계속 좋아해주는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너무 많은 요소가 우연히 겹쳐서 많은 사랑을 받는 곡이 되는데,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Q : 김윤아의 마음속에 취향의 원형 같은 곡이 있다면
A : 여전히 바로크 음악입니다. 비발디, 바흐, 페르골레시…. 오직 종교나 왕 같은 절대적 존재들을 위해 음악을 했던 시대잖아요. 광신자들의 음악이에요. 그래서 순수하면서도 되게 로킹한 면이 있어요. 지금 음악과는 어법이 다르니까 들을 때마다 뇌가 정리되는 기분이에요.
Q : 올해 예정된 솔로 공연의 제목은 라이브 앨범 제목과 같은 ‘행복한 사랑은 없네’입니다
A : 프랑스 시인이 쓴 시에 프랑스 작곡가가 곡을 붙인 노래가 있어요. 2019년 ‘사랑의 형태’ 공연에 한국어로 개사해서 부른 적 있는데, 내년에 선보일 5집 앨범에 수록하려고 생각 중이에요. 팬들이 제 음악을 좋아해주는 이유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시는 제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요.
Q : 어떤 부분이 위로가 되던가요
A : 인생이 써야 작품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행복을 뭐 하러 노래하겠어요? 그런데 마침 “하찮은 기타 선율, 하찮은 노래 한 줄에도 슬픔은 필요한 법”이라는 운율이 있어요. 정말이지 하찮은 노래 한줄에도 쓴맛은 필요합니다.
Q : 끝없이 말을 걸고 노래하는 당신도 이야기가 고갈될 것 같은 공포를 느낀 적 있나요
A : 지난해 오은영 선생님의 프로그램을 통해 학대받고 자란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2000년에 생부가 죽었을 때예요. 인생 최대의 적이 갑자기 자연 소멸되니까 앞으로 뭐를 노래해야지? 적이 없는데 무얼 공격해야 하지? 절망감 같은 걸 느꼈던 것 같아요. 그게 드러난 곡이 2집 수록곡 ‘증오는 나의 힘’이죠.
Q : 살아가는 데 가장 힘이 되는 감정이 분노면 조금 슬프지 않나요
A : 왜요? 제일 기운 나는데, 그게? 사랑은 얄팍해요(웃음). 지금은 분노가 동력이라기보다 영감이긴 하지만요.
Q : 김윤아의 감성은 여전히 젊은 여성들에게 소구됩니다. 그것도 왠지 인생의 취약함에 쉽게 노출될 것 같은 여성들이죠. 4집에 수록된 ‘은지’ 같은 곡에서 그들에 대한 애정을 짐작해도 될까요
A : 제가 10~20대 때도 여성은 취약했지만, 그때는 최소한 여자는 약하니까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나 정의는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어린 동생들을 보면 아무것도 없는 데서 정말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것처럼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아동이자 여성으로서 학대받았던 사람이기 때문에 조금 머리가 커지고, 경제활동을 시작한 다음에는 대외적으로 뭔가 여자나 아이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제 음악에는 당연히 제가 녹아들어 있기 마련이고, 그 안에 어떤 외롭고 취약한 존재가 있다는 걸 제 음악을 듣는 분들은 공명해서 아는 것 같아요. 저는 확실히 여성들에 대한 애정이 있습니다. 젊고, 명민하고, 어떻게든 자기를 발전시키려고 하는 사람들. 너무 좋고 사랑스러워요.
Q : 만약 딸이 있다면 지금과는 조금 다른 어머니가 됐을 것 같나요
A : 아니요. 다만 로망은 있어요. 맨날 똑같은 옷을 입고 ‘물고 빨고’ 했겠죠. 물론 지금 아들도 물고 빨지만요(웃음). 어쩌면 남자아이를 잘 키우는 일 또한 중요할 수도 있고요.
Q :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툭’ 하고 자주 꺼내는 뮤지션이기도 합니다. 돌아보면 10대 시절 자우림과 김윤아의 노래를 들으며 자란 것이 죽음에 대한 제 인식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A : 어릴 때부터 주변에 죽은 사람이 너무 많았어요. 저한테는 항상 가까운 소재였죠.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활하는 게 더 어색하게 느껴져요. 죽음은 어디에나 있고, 결국 우리는 다 죽잖아요. 그러니까 살아 있는 동안은 춤춰야 하는데, 그 짧은 시간에도 왜 우리는 제대로 춤을 추지 못하는가. 누가 우리의 춤을 방해하는가. 그리고 너는 여기까지만 추라고 제어하는 존재는 누구인가. 그런 대상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불공평하잖아요.
Q : “그 누구도 살아 있는 동안엔 춤을 추는 것이오” 자우림 11집에 수록된 ‘Pe′on pe′on’의 가사네요. 곡의 주인공인 고양이 빼옹이가 얼마 전 무지개다리를 건넜습니다
A : 빼옹이가 명이 짧을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이후로 우울증이 심하게 왔어요. 빨리 기운을 내야죠. 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빼옹이가 더 짧고 힘들게 살았을 수도 있었다는 게 조금 위로가 돼요. 오래 앓지 않았다는 사실도요. 병원에서 수액을 맞다가 잠자듯이 떠났어요.
Q :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을 꼽은 적 있습니다. 다양한 인간 군상에 관심이 없다면 고르지 않을 책이라고 생각해요
A : 타인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죠. 세상에 귀를 열지 않고 어떻게 살겠어요.
Q : 4집 앨범 제목이 〈타인의 고통〉이기도 했고요. 타인의 고통에 무감한 시대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꺼내는 이유는
A : 저는 분노 센서가 잘 작용하는 사람 같아요. 강자가 약자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보면 화가 납니다. 나도 피해자고, 나야말로 약자라고 주장하는 일부가 있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그게 인간으로서 도덕률에 맞는 건 아니잖아요. 사람은 수치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걸 왜 우리가 모르게 됐는가, 왜 내 것 아닌 고통에 아랑곳하지 않는가. 사회가 그걸 몰라도 된다고 가르쳤기 때문이죠. 그럼 다 같이 입 닫고 있어야 할까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직 기억하고 있는 누군가는 그 이야기를 해야 영원히 이런 세상이 되지 않을 것 같아요. 저도 엄청난 의무감은 없으나 도덕적 기준은 있어요. 그게 이야기로 나오는 것뿐이고요.
Q : 비주얼로도 자우림은 대담하고 명확한 시도를 해왔습니다. 상대적으로 덜 이야기된 부분 아닐지
A : 비주얼에 관여하는 것, 컨셉추얼한 걸 굉장히 좋아합니다. 음악을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는 만화 ‘덕후’였기에 캐릭터 설정에 능해요. 활동 초기에는 콘서트 의상을 그려서 이렇게 만들어달라고 제작을 요청하기도 했어요. 메이드복이나 웨딩드레스를 입기도 했으니 덕질이 직업에 영향을 미친 셈이죠. 개인적으로 ‘Vlad’ 뮤직비디오는 지금 봐도 잘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Q : 성실한 뮤지션이자 스토리텔러로서 내가 갖고 있는 가장 큰 덕목은
A : 되게 운이 좋다고 여기는 지점인데요.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된 것이죠. 그래서 많이 하려고 해요, 살아 있는 동안.
Q : 곧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자우림의 첫 다큐멘터리 〈자우림 더 원더랜드〉가 공개될 예정이죠. 돌아봤을 때 가장 즐겁고 행복했던 시기는
A : 전 계속 신이 난 상태였던 것 같아요. 앨범 작업을 정말 좋아하는데 작업도, 공연도, 일도 계속하고 있으니까요. 내일은 또 무슨 일이 생길까 두근두근하면서 일해오고 있어요.
Q : 지난해 발표한 크리스마스 앨범 〈Merry Spooky X-Mas〉에 직접 써서 수록한 동화를 보면 악마의 영혼이 빠져나온 장면을 묘사한 부분이 있는데요
A : 아, 그거! 정말 더럽게 묘사됐죠(웃음). 너무 재미있었어요. 써 내려가는 일을 멈출 수 없었어요.
Q : 김윤아의 영혼이 어떻게 표현되기를 바라나요
A : ‘형체 없이 어떤 노래 소리가 지나갔다’ 혹은 ‘형체 없는 향기가 지나갔다’ 아주 빠르게, 휘발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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