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세 ‘한국의 모지스’ 그림엔 파란 소와 교회가 있었다
그림 스승은 사위 강석진 회장, 101세 화가 모지스
상상력 입힌 수채 풍경화 60여점
프랑스 남부의 생레미 요양원에서 창밖을 보며 그림을 그린 반 고흐의 삶이 떠올랐다. 고향을 그리워하며 파랑 빨강 색을 입힌 말과 교회를 화폭에 담은 샤갈의 상상력도 오버랩됐다. 그리고 나이 70이 넘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101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시골 풍경을 그리면서 ‘그랜마 모지스’라 불리고 미국인의 사랑을 받은 안나 매리 로버트슨 모지스의 삶과도 닮아 있었다.
한국나이로 98세인 정옥희 권사의 이야기를 듣고 그림을 본 뒤 갖게 된 느낌이다. 정 권사는 26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갤러리 라메르에서 ‘정옥희 작품전-자연의 풍경’이라는 이름으로 첫 전시회를 열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고작 4년밖에 안 된 정 권사를 통해 거장의 반열에 오른 화가들이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이날 전시장을 찾은 박명인 한국미학연구소 대표가 명료하게 설명했다. 바로 ‘영혼의 힘’이었다.
미술평론가이기도 한 박 대표는 “50년 넘게 미술 평론을 했는데 (정 권사의) 그림을 본 뒤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무리 재주로 그림을 잘 그리더라도 영혼이 없다면 예술작품이 될 수 없다. 보는 이의 공감을 살 수 없기 때문”이라며 “3년간 강남의 요양원에 있으면서 창밖으로 보이는 건 빌딩들뿐인데 자연을 그리고 가족을 그린 건 정 권사의 영혼이 담긴 상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시회 첫날 갤러리엔 정 권사의 가족과 지인, 나경원 전 의원, 한국기독교학교연맹 원로교목회 원광호 목사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100세 철학자’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도 조만간 전시장을 찾을 예정이다. 전시는 다음 달 2일까지 계속된다.
94세, 그림을 시작하다
초록 들판에 난 길은 시공간을 넘나들고 파란 소와 빨간 말이 달린다. 고구마가 가득 든 소쿠리 앞 가족의 모습은 정겹다. 풍경화에 상상력을 보탠 그림 곳곳엔 십자가 첨탑의 교회까지 더해진다. 수채 물감으로 그린 이 따뜻한 풍경화는 8호 사이즈의 캔버스(32×43㎝)에 담겼다.
그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었지만 정 권사와 대화는 어려웠다.
그의 셋째 딸인 이복진(69)씨는 “작년 말 대상포진에 걸린 뒤 한참 고생하시고 많이 수척해지셨다”며 “보청기를 껴야 겨우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데다 기력까지 떨어진 터라 대화가 어렵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림을 이야기할 때면 표정이 달라졌다.
‘전시를 하니 어떠냐’는 질문에 “좋다”라며 해사한 미소를 지었고 ‘그림 계속 그려 달라’는 무리한 요청엔 손을 들어 하이파이브도 했다.
이날 사위와 자녀들이 정 권사를 소개하는 말에 붙은 건 ‘가족을 위해 평생 취미도 없이 사업을 하신 분’이었다. 이씨가 “(어머니가) 초등학생 때 그리고 85년 만에 그린 그림”이라고 설명한 이유다. 1925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정 권사는 결혼 후 7남매를 키우면서 당시엔 흔치 않게 여성 사업가로 살았다.
이씨는 “어머니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큰일을 했을 거라고 주변 사람들이 말할 정도로 여장부셨다”고 전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예술적 조예가 깊으셨는데 그걸 우리가 물려받은 듯하다”며 “다섯 명의 딸 중 2명은 음악, 2명은 미술을 전공했다. 17명의 손자 손녀 중에서도 7명이 예술 분야를 전공했다”고 말했다.
예술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던 정 권사가 그림을 시작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5년 전 갑작스럽게 찾아온 뇌경색 때문이었다. 강남의 요양원에서 생활하게 된 정 권사를 둘째 사위가 찾았다. 제너럴 일렉트릭 코리아 회장을 지내고 현재 화가이자 시인이며 경영자인 강석진(84) CEO컨설팅그룹 회장이다. 강 회장은 요양원에서 장모의 이야기를 들었다.
“일제강점기 때 공주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그림을 잘 그려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선생님이 자기 그림을 학교 복도에 붙여놨다고 하셨다”며 “아마도 화가이기도 한 저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신 듯하다”고 강 회장은 말했다.
그러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게 장모님에게 그림 그릴 시간을 주자는 것’이었다.
수채물감과 붓 등 그림 도구를 사서 요양원을 찾았다. 그리고 2019년 당시 94세였던 정 권사의 화가 인생이 시작됐다.
강 회장은 “초등생 가르치듯 기본부터 가르쳤는데 두 어 달 지나니 혼자 그리기 시작하셨고 매주 토요일 면회 갈 때면 몇 장 그려서 기다리고 있었다”며 “반년이 지나니 실력이 쑥 올라갔다”고 전했다.
가족이 준 모지스와 강 회장의 화집을 보며 열심히 연습했고 옛 기억과 화보집에 상상력을 더해 그림을 그렸다.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요양원 면회조차 금지됐을 때도 정 권사의 붓질은 멈추지 않았다.
이씨는 “모지스의 책은 자기 삶에 대한 글과 그림이 담겨 있었는데 책이 해질 정도로 쉬지 않고 보고 그리신 듯하다”고 말했다.
어느덧 그림은 200점이 됐고 자녀들은 ‘전시’를 생각했다. 이번 전시에선 60여점만 볼 수 있다.
강 회장은 “고령화 시대 누구든 시작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장모님은 그림을 그린 뒤 건강이 좋아져 요양원에서 퇴원도 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힘, 신앙
그림을 그리기 전 정 권사의 삶에 힘이 된 건 믿음이었다.
이씨는 “5살인가 6살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종로구 원남동에 살았는데 30대 중반이던 어머니가 내 머리를 땋아 주면서 동네 교회에 가자고 하셨다”면서 “어머니는 모태신앙은 아니었지만 젊을 때부터 교회를 다니셨다”고 말했다.
신앙생활을 이어가던 정 권사는 은평구에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한림교회도 개척했다. 정확히 말하면 개척을 도왔다. 첫째 사위가 담임 목사로 교회를 섬겼다. 첫째 사위가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엔 그의 첫째 딸이 목사 안수를 받아 사역을 이어갔다.
넷째 사위인 강석남(68) 장로는 “한림교회에서 헌신한 장모님은 91년 지금의 교회인 은평구 세광교회로 옮겼다”며 “지금도 세광교회 유창진 목사님이 집으로 오셔서 어머니를 위해 예배하신다”고 말했다.
오랜 세월 켜켜이 쌓였을 신앙 이야기를 정 권사의 입으로 직접 듣지 못한다는 게 못내 아쉬웠다. 그 아쉬움을 달래준 건 그림이었다. 그림 속 자연의 풍경엔 십자가 첨탑의 교회가 곳곳에 따뜻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글·사진=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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