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공동체를 찾고 찾다가 포기했습니다
당신 곁에 있을 수 있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합니다. 현재 조현정동장애(조현병과 우울증이 혼재된 정신질환)로 진단 받은 뒤 살아나가고 있습니다. 조현정동장애 환자는 2021년 기준 국내에 1만 2435명(건강보험심사평가원)입니다. 제 이야기를 통해 당사자들과 주변인들에게 힘이 되고자 하며, 조현병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에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기자말>
[율림 기자]
정신질환을 진단받은 이후부터 저는 항상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정신질환과 관련된 여러 인터넷 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어떤 모임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시도했어요. 현재 어느 공동체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지만, 저는 정신질환자들의 공동체나 모임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입니다.
정신질환을 치료받는 초기에 저는 몹시 외로웠습니다. 저는 운이 좋은 편이라 부모님께서 제 정신질환을 염려해주셨지만, 아무리 혈육이라도 정신질환이 있는 저의 감정이나 생각까지 이해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공감은 당연히 불가능하고요. 말을 꺼내면 지겨워하기도 하고 그만 말하라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 정신질환을 치료하기 시작하면서 외로움을 자주 느끼곤 했습니다. 부모님이나 친한 사람도 이해나 공감해주지 않는 상황이 무척 외로웠어요. |
ⓒ Priscilla Du Preez |
그래서 정신질환 공동체를 찾아보았습니다. SNS나 네이버 카페 등을 방문해서 제 경험을 이야기해보았어요. 비슷한 정신질환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을테니 당연히 공감을 많이 해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와 비슷한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도 제가 만족할 정도로 제 경험에 공감하지 않았습니다. 조현병이나 조현정동장애라는 진단명으로 진단받고 비슷한 카테고리로 분류되긴 하지만, 이 정신질환들은 당사자가 가진 증상의 종류와 정도가 제각각이라는 특징이 컸어요. 경미한 증상을 가진 사람은 중증 증상을 가진 사람을 완전히 공감하기 어렵고, 환청만 들리는 사람은 환시만 보이는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테니까요.
이런 증상 경험의 차이가 조현병이나 조현정동장애 정신질환 당사자들이 응집된 커뮤니티를 만들기 어렵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증상의 차이가 있는 사람들을 억지로 한 그룹으로 묶으려고 하면 충돌이 일어날 거 같기도 했고요. 제가 쓰는 에세이를 읽는 사람들 중에서도 저와 비슷한 정도의 증상을 가진 사람들과 더 심각한 증상을 가진 사람들이 가진 의견이 다르겠지요.
게다가 조현병과 조현정동장애의 보유자들 중 일상생활을 하는데 크게 지장이 없는 정도의 증상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다는 걸 남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아 공동체와 흔적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가끔 저와 비슷한 사람의 인터넷 게시글을 찾았다 싶으면 일이년 전의 글일 때도 있었고요.
그렇다고 제가 직접 나서서 공동체나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모임을 제가 운영한다면 부담감과 스트레스가 너무 클 것 같았습니다. 다른 당사자들도 저와 비슷한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있겠죠.
당사자가 아닌 당사자의 부모들이 중심으로 이루어진 커뮤니티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런 커뮤니티는 게시글이 보호자의 시각에서 당사자를 어떻게 보호하고 증상을 치료하는지가 대부분이라, 당사자의 입장을 공감해주기는 아무래도 어려워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장애인 자녀를 살해한 부모들에 대해 쓴 뉴스 기사들을 볼 때마다 저는 무척 무섭습니다. 제가 범죄자가 아닌 살해당한 피해자의 입장에 공감하기 때문이죠. 저는 제 부모님이 저에게 그럴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래도 부모가 질환을 가진 자녀를 살해한다는 사실이 남의 일이 아닌 거죠.
이런 공포를 당사자들의 부모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에서 말하면 공감할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부모가 수십년 동안 많이 힘들었을 테니 어쩔 수 없었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요.
공동체에 속하는 걸 포기했지만 그럼에도
저는 조현정동장애 정신질환 공동체를 찾거나 그에 속하는 걸 포기했습니다. 그렇지만 탐색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경험과 이야기를 읽으면서 힘을 얻었습니다. 많은 당사자들이 쉽지 않은 현실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힘내고 있으니까요.
지금은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제가 느끼는 외로움이나 고독이 남에게 말한다고 해서 해소가 될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공감을 해주는 사람을 만난다고 해도 일시적으로 기분이 좋고 속이 후련할 뿐, 나중에 살펴보면 외로움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거라는 걸 아니까요.
▲ 타인과의 대화에서 외로움을 해소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만, 외로움이란 감정에 대해 생각하고 그 감정과 대화를 나누는 일도 한 번쯤 시도해볼 일입니다. |
ⓒ Priscilla Du Preez |
비록 비슷한 정신질환을 가진 타인과 공동체를 가지는 걸 포기했지만, 이런 소모임도 나쁘지 않습니다. 어찌되었던 제가 죽을 때까지 계속 함께 해야 하는 외로움이라면 친해지는 게 좋을 테니까요. 그렇게 외로움과 저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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