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전기차 경쟁력 SWOT 분석(1)…HW·SW 역량 높아 통합 시너지 내야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3. 4. 26.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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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아세안 등 신흥국 공략 기회(강점·기회)

미국, 유럽 등 주요 전기차 시장에서 현대차 위상이 과거와 사뭇 달라졌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내연기관에서 서비스·소프트웨어(SW) 등 모빌리티 중심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온 데다 민첩한 전동화 전략으로 조직 전반에 혁신을 도모한 결과로 풀이된다. 현대차는 ‘강점(strength)’과 ‘기회(opportunity)’를 살려 미국·중국 등 전기차 시장에서 빅 플레이어로 자리 잡기 위해 노력 중이다.

(1) 민첩한 전동화 전략

EV 전용 플랫폼 E-GMP

현대차그룹 전동화 전략의 민첩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은 경쟁사 대비 발 빠른 전용 플랫폼 개발이다. 현대차그룹은 2021년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완성해 이를 기반으로 전동화에 최적화한 전기차 모델을 잇따라 내놓는다.

전기차를 제조할 때는 내연기관과는 전혀 다른 개발 프로세스가 요구된다. 핵심 부품이 전용 플랫폼이다. 자동차 산업에서 플랫폼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내연기관에서는 플랫폼을 중심으로 엔진, 변속기 등을 배치한다. 플랫폼 설계와 구도에 따라 차량의 중량 배분, 무게 중심, 승차감, 연비, 안전성, 내부 공간 등이 천양지차다. 잘 만든 플랫폼 하나에 자동차 회사의 명운이 달렸다는 말이 지나치지 않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는 철저히 전기차 제조를 위해 설계됐다. E-GMP는 배터리, 모터와 전력 전기 시스템을 포함한 섀시로 구성된다. 휠베이스 확장을 통해 소형부터 대형을 아우르는 다양한 유형의 차량을 개발할 수 있도록 모듈러 구조(Modular Architecture)를 기반으로 한다. 모듈러 구조는 서로 연관성이 높은 부품과 기술을 유기적으로 통합해 생산 공정 최적화를 가능케 한다. 모듈러 구조가 정교하게 구현된 자동차 전용 플랫폼에서는 부품 간 호환성이 뛰어나 기존 공장의 신증설 없이도 여유 인력의 전환, 재배치가 가능해 생산능력을 확대할 수 있다.

전용 플랫폼 덕분에 배터리가 바닥에 낮게 깔려 무게 중심이 낮아지고 이는 주행 거리와 실내 공간의 경쟁력 확보로 이어진다. 아이오닉 모델의 디자인과 실내 공간이 확 바뀔 수 있던 것도 E-GMP 플랫폼 덕분이다.

반면, 벤츠와 BMW 등 내연기관 톱 메이커는 전동화 전략의 민첩성이 현대차그룹 대비 상대적으로 뒤처진다는 지적을 받는다. 현재 벤츠가 사용하는 전기차 플랫폼은 EVA(Electric Vehicle Architecture) 플랫폼이다. EVA 플랫폼은 C클래스부터 S클래스까지 내연기관 모델에 쓰이는 기존 MRA 플랫폼과 서스펜션·차체 기본 구조를 공유한다. 이 때문에 전기차에 특화한 플랫폼으로 보기는 힘들다는 게 자동차업계 시각이다. 벤츠는 EVA 플랫폼을 개선해 2025년 MB EA 플랫폼, AMG EA 플랫폼, VAN EA 플랫폼과 같은 전기차 전용 플랫폼 출시를 준비 중이다.

(2) HW·SW 역량 밸런스

독자적 OS 구축 속도

전기차 시장은 내연기관에 기반한 하드웨어(HW)와 SW 역량의 통합과 균형이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 시각이다. 세계 전기차 시장 1위 메이커인 테슬라는 소프트웨어 역량이 탁월한 반면 세밀한 품질 등에 있어서 하드웨어 역량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내연기관 상위 메이커는 하드웨어 경쟁력이 뛰어난 반면, 소프트웨어 경쟁력은 열위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특히 전기차 등 미래 모빌리티의 핵심 경쟁력(Core Capability)을 규정하는 키워드는 소프트웨어다. 모빌리티는 기존 내연기관차와 달리 ‘SDV(Software Defined Vehicle·소프트웨어로 정의되는 차량)’로 규정된다. SDV는 소프트웨어가 주행 성능을 비롯해 각종 기능, 품질까지 규정하는 차량을 뜻한다.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구동하기 위해서는 차량 상태, 운전자 습관, 차량 위치·운행 정보 등이 담긴 방대한 데이터가 필수적이다.

이에 비춰, 현대차그룹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역량의 통합을 통한 시너지를 적극 추구한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이런 인식은 정 회장 발언에서도 엿보인다. 그는 올해 신년사에서 “독자적인 운영체제(OS)를 확실히 구축하겠다”며 “데이터만큼은 확실히 장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율주행에 있어서 내연기관 ‘엔진’ 역할을 하는 것은 차량 관제·관리 시스템(FMS)이다. FMS는 차량에 설치된 단말기를 통해 실시간으로 주행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관제 시스템으로 전송해 통합 관리하는 체계다. 현대차그룹에서는 네이버랩 출신 송창현 대표가 이끄는 ‘TaaS(서비스형 운송)본부’에서 FMS 개발을 총괄한다. TaaS본부 외에 현대차그룹 소프트웨어 역량을 상징하는 또 다른 조직은 경기 성남시 판교에 위치한 ‘선행기술원(IATD)’이다. 선행기술원은 정 회장 직속 조직으로 하드웨어 기반의 남양연구소와 역할이 구분된다. 선행기술원은 미래차 관련 연구개발 인력을 한데 모아 전동화 시스템, 소프트웨어, 인공지능 등 미래차 핵심 기술 고도화를 주도한다.

인도 전기차 시장은 현대차그룹에 기회 요인이다. 지난 1월 11일 인도 수도 뉴델리 인근 그레이터노이다에서 열린 ‘오토 엑스포-더 모터쇼 2023’에서 현대자동차 전기차 아이오닉5의 인도 시장 출시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3) ‘가격 대비 가치’ 탁월

차별적 포지셔닝 구축

자동차의 본고장 미국 전기차 시장을 들여다보면 의아한 대목이 눈에 띈다. 내연기관 시장에서의 1등 브랜드인 벤츠와 BMW의 존재감이 거의 없다. 2022년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BMW는 1만5589대, 벤츠는 1만2421대를 각각 판매했다. 반면, 기아는 2만7965대, 현대차는 2만6693대를 각각 팔았다. 현대차그룹 전체로는 5만4658대를 팔아 1위 테슬라, 2위 포드에 이어 미국 전기차 시장 3위를 차지했다.

미국, 유럽 등 주요 시장에서 현대차그룹은 합리적인 가격과 뛰어난 성능으로 차별적인 포지셔닝(Positioning)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다만, 현대차그룹 포지셔닝 전략은 과거 내연기관 시절 단순히 저가격에 주력했던 ‘가성비’ 전략과는 명확히 구분된다. 통상 후발 주자 브랜드에서는 저가격 전략으로 품질과 감성, 서비스 등에 관한 소비자 경험을 축적한 뒤 브랜드 평판을 닦아 프리미엄 시장 진입을 노린다. 현대차그룹은 단순 저가격 전략 단계는 일찌감치 지났고 준고급차(Near luxury car)로 브랜드를 포지셔닝했다는 게 완성차업계 평가다. 최근 미국 시장에서는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전기차의 주 소비층인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가격 대비 가치’를 중시하는 소비 문화가 확산 중이다. 합리적인 가격과 품질을 앞세운 현대차그룹의 브랜드 전략이 미국 소비자층의 구매 심리와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다.

반면, 내연기관 브랜드 부동의 1위 벤츠와 BMW는 유독 전기차 시장에서 부진하다. 벤츠의 전기차 EQS·EQE 등은 소비자 기대치에 못 미치는 주행 거리와 호불호가 갈리는 디자인으로 시장에서 존재감이 미미하다. 학계에서는 이를 두고 ‘평판의 부채(The liabilities of Reputation)’라는 흥미로운 진단을 들려준다. 기대치 위반 이론(Expectancy Violation Theory)에 따르면, 기대치가 높은 상대방에게 부정적인 결과를 접하면 그 실망감의 정도는 기대치가 낮은 상대방보다 더 크다. 가령, 벤츠처럼 평판이 뛰어난 기업의 자동차를 구매했는데 품질, 디자인 등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치자. 이때 소비자가 느끼는 실망감은 평판이 낮은 브랜드에서 유사한 결함을 접했을 때보다 더 크다. 그 결과, 톱 브랜드에서 결함이 발견됐을 때 상대적으로 더 큰 점유율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완성차업계에서는 전기차 등 모빌리티 시장에서 자동차 브랜드 순위가 지각 변동을 겪을 것으로 본다. 내연기관에서 자동차는 단순히 탈것에 그치지 않고 소비자의 지위(Status)를 보여줬으나 모빌리티 시대에서는 소유에서 구독으로 소비 행태가 변화한다. 기존 내연기관 메이커의 브랜드 평판도 큰 변화를 겪을 전망이다.

(4) 아세안·인도 잠재력 커

일본 독무대였지만 전기차 새 장

전기차 같은 신성장 산업에서는 점유율보다는 ‘침투율(전체 자동차 판매량 중 전기차 판매량)’을 더 중요한 지표로 본다. 자동차를 예로 구분하자면, 점유율은 특정 기간 전체 자동차 누적 등록 대수 가운데 전기차 비중을 뜻한다. 침투율은 특정 기간 신차 판매량 가운데 전기차 판매량을 뜻한다. 예를 들어, A국가에서 지난해 신차 100대가 팔렸는데, 이 가운데 10대가 전기차였다면 침투율은 10%다.

눈에 띄는 대목은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 중 하나인 미국의 전기차 침투율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유럽과 북미의 지난해 전기차 침투율은 각각 18%, 6% 수준이다. 그만큼 미국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미국은 자동차 이동 거리가 워낙 길어 충전 인프라가 부족했던 탓에 전기차 보급이 상대적으로 더뎠다는 분석이다.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과 인도 시장도 기회 요인으로 지목된다. 전통적으로 일본 완성차 업체의 독무대였던 아세안은 전기차 시장이 팽창하는 시점에 접어들었지만 전동화에 뒤처진 일본 업체의 민첩성이 떨어진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의 ‘아세안 순수 전기차 시장 전망과 진출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아세안 시장에서 판매된 하이브리드,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순수 전기차, 수소 전기차 등 친환경 자동차는 총 5만2000대로 전년보다 약 9배(872%) 늘어났다. 친환경 차량의 42%를 차지하는 순수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대비 9배(863%) 증가한 2만2000대로 나타났다.

인도 시장도 각광받는다. 인도에서 현대차의 승용차 점유율은 15%, 기아는 7%다. 문용권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인도는 2만달러 수준의 중저가 전기차 시장 확대가 예상된다”며 “인도 내연기관 시장에서 다진 현대차그룹의 입지를 바탕으로 전기차 시장도 공략해나간다면 인도 시장은 차별화 요인이 될 것”이라 내다봤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6호 (2023.04.26~2023.05.0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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