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전기차, 갈림길에 서다…IRA 본격 시행 전부터 美 점유율 하락
지난해 IRA 시행 전 7월 최고 13%까지 치솟았던 현대차의 미국 전기차 시장점유율은 올 1분기 5.5%까지 축소됐다. 테슬라에 이은 2위에서 GM, 폭스바겐에 밀려 4위까지 내려앉았다.
지난해 8월 IRA가 시행하며 북미 지역에서 생산, 조립되는 친환경차에 대해서만 보조금이 지급돼 왔다. 보조금이 중단되며 현대차와 기아의 전기차 판매량이 하락세를 걷게 됐다. 현대차그룹 측은 “미국이 IRA 시행을 밝힌 이후부터 보조금 영향으로 현대차·기아 전기차 매수 심리가 꺾인 게 사실”이라고 했다.
실제로 현대자동차그룹은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는 중이다. 지난 3월 국내 주요 15대 수출품목 중 자동차가 월 수출액 65억달러(약 8조5962억원)를 넘어서며 반도체와 석유화학 등 기타 품목의 부진을 만회했다. 그러나 전기차 판매 실적은 14.1% 감소했다. 대표 전기차인 아이오닉5는 전년 동월비 22% 판매가 줄었다. 기아 EV6는 무려 68%나 급감했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경쟁력이 떨어진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전기차 수상 소식도 잇따랐다. 최근 현대차 아이오닉6는 ‘2023 월드카 어워즈’에서 ‘세계 올해의 자동차(WCOTY)’를 수상했다. 지난해 아이오닉5에 이어 2년 연속 수상하는 쾌거를 누렸다. 세계 올해의 자동차는 30개 차종이 후보에 올랐는데 현대차 아이오닉6, 기아 니로, BMW X1·iX1 등 3개 차종이 경합을 벌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K-전기차의 미래를 걱정하게 만드는 요인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배터리 규정을 강화한 IRA가 본격적으로 시행하면 한국차는 더욱 영향을 받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4월 17일(현지 시간) 공개한 전기차 보조금 지급 기준 세부 기준에 따르면, 연방 정부의 IRA 보조금 7500달러를 받을 수 있는 대상 차종은 16개다. 전부 미국 자동차 회사다. 이 가운데 테슬라 모델3와 모델Y, GM의 쉐보레 볼트, 이쿼녹스, 포드의 F-150 라이트닝 등 10개 차종은 7500달러 보조금을 100% 지급받는다. 일부 배터리 요건을 부합시키지 못한 6개 차종(포드 머스탱 마하-E 등)은 절반인 3750달러를 받는다. 역시 전부 미국 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정부 조치로 GM·테슬라가 승자가 됐다”며 “전기차 세제 혜택을 받고 싶으면 앞으로는 미국 브랜드를 사야 한다”고 꼬집었다.
한국 전기차가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IRA가 규정한 ‘북미 현지 조립’과 배터리 규정을 충족시키지 못해서다. IRA 요건에 따르면, 배터리 부품은 북미에서 제조·조립된 비율이 50% 이상이어야 한다. 핵심 광물은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40% 이상 확보해야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현대차 제네시스 ‘GV70 일렉트리파이드’가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서 만들어져 북미 현지 조립이라는 조건은 만족했지만 최종적으로 제외됐다. 배터리가 문제였다. 배터리 부품과 핵심 광물에 중국산이 대거 사용돼서다. 이번 조치의 가장 큰 피해자는 사실상 한국이다. 독일과 일본 등 다른 해외 업체의 전기차도 모두 제외됐지만, 한국 전기차는 테슬라에 이어 미국 시장점유율 2위를 지켜온 핵심 플레이어라 피해가 더 클 수밖에 없다.
IRA 세부 규정에 발목…보조금 한 푼도 못 받아
플랫폼 실력 인정받지만 가성비 전략 차질 생길 수
자동차 업계에서는 IRA를 통해 현대차와 기아의 전기차가 ‘진짜’ 글로벌 경쟁력을 갖췄는지 면밀하게 분석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강점’을 살려 ‘기회’를 찾는 동시에, 경쟁사 대비 ‘약점’을 보완하고 ‘위협’ 요인에 대응해야 한다는 진단이다.
현대차·기아 전기차의 기술력에 대해서 자동차 업계는 후한 평가를 내린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4월 18일 열린 ‘2023 상하이 국제 모터쇼’에서 EV6·EV5 등 전기차를 출격시켰다. 일단 검증된 전기차 EV6를 시작으로 매년 1종의 전기차 모델을 새로 선보여 현지 전기차 리더로 거듭나겠다는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플랫폼 대응 전략도 마련했다. 2025년에는 기존 전기차 플랫폼(E-GMP)보다 진화한 차세대 전기차용 ‘eM플랫폼’, PBV용 ‘eS플랫폼’을 신규 전기 차량에 적용한다. 발 빠른 전용 플랫폼 업그레이드는 현대차그룹의 강점이다.
경쟁사와 비교해 품질 대비 가격이 저렴하다는 점도 만만치 않은 경쟁력이다.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등은 프리미엄급 전략을 유지하고 있지만, 전기차에서는 프리미엄에 걸맞은 신차를 내놓지 못한다는 평가가 다수다. 반면 현대·기아차는 전용 플랫폼을 기반으로 비용과 연비 효율성을 확보해 가성비에서는 단연 앞선다. 그간 미국에서 전기차 점유율 2위까지 올라설 수 있었던 데도 가격 경쟁력이 작용했다.
그늘도 뚜렷하다. 내연기관뿐 아니라 전기차 시장 경쟁도 치열하다. 미국에선 테슬라가, 중국에선 비야디(BYD)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각국 정부가 대대적으로 지원하는 가운데 현대차·기아는 이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형국이다.
부품 40%에 달하는 배터리 주도권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한계로 언급된다. 테슬라와 폭스바겐, 제너럴모터스(GM) 등은 배터리 셀 가격 인하와 공급망 확보를 위해 원자재 조달 분야에 직접 투자하고 있다. 포드는 중국 최대 배터리 기업 CATL과 합작 공장을 설립해 저렴한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직접 생산한다.
테슬라發 가격 경쟁도 부담스러운 요인이다. 테슬라가 올해 판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델3·모델Y를 중심으로 가격을 내린 데 이어 샤오펑·비야디 등 중국 업체에서도 잇따라 전기차 가격을 내렸다. 루시드나 BMW, 폭스바겐 등도 각 시장 상황에 맞춰 가격을 내렸거나 인하하기로 했다. 이렇게 주요 전기차가 가격을 내리면 K-전기차의 강점이었던 ‘가성비’ 전략이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대차·기아도 다양한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무엇보다 미국 내에서는 리스와 렌털 등 상업용 전기차 비중을 넓힐 계획이다. 상업용 전기차는 IRA 규정을 적용하지 않고 보조금을 100% 받을 수 있어서다. 현대차·기아는 기존 5% 수준이었던 상업용 전기차 비중을 30%까지 늘린다. 통상 리스 시장은 대량 구매로 수익은 떨어지지만 점유율 유지에 유리하다. 이미 현지 구독 서비스 등을 선보였고, 대형 업체와의 업무 협력도 추진 중이다.
미국 조지아주에 조성 중인 전기차 전용공장 현대차그룹 메타플랜즈 아메리카(HMGMA)는 완공에 속도를 낸다. 계획대로라면 이 공장은 2025년 상반기 완공될 예정이었으나 현대차그룹은 2024년 하반기로 그 시기를 앞당기기로 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6호 (2023.04.26~2023.05.0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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