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공룡·미어캣… 불꽃 같이 솟은 기암괴석과 ‘가위바위보’

남호철 2023. 4. 26.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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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조각 전시장’ 남산제일봉
푸른빛을 머금은 경남 합천의 남산제일봉이 하늘 높이 우뚝하다. 가파른 철계단을 딛고 정상에 올라서면 일망무제의 풍광을 맞이할 수 있다.


경남 합천의 남산제일봉(南山第一峯·1010m)은 가야산국립공원에 속해 있지만 별도로 떨어져 있다. 가야산의 남쪽에 있어 ‘가야남산’ 또는 ‘남산제일봉’으로 불린다. 규모는 작지만 기묘한 형상의 바위가 늘어서 있어 바위 조각 전시장을 이룬다. 그 바위들로 연결된 능선이 등산코스로 인기다.

남산제일봉은 홍류동계곡 북쪽 돼지골탐방지원센터나 봉우리 동쪽 기슭의 청량동탐방지원센터를 들머리로 삼는다. 돼지골에서 오르면 숲길도 편안하고 암릉도 짧다. 종주든 원점회귀든 암릉과 조망을 즐기고 싶다면 청량동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

정상까지는 2㎞도 안 되지만 초반 가파른 오르막길이라 체력 소모가 크다. 30분쯤 오르면 능선에 서게 되고 곧바로 전망대를 만난다. 홍류동계곡 바로 건너 가야산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부터는 가야산을 가슴에 안고 암릉을 오르내리므로 지루할 틈이 없다. 다양한 모양의 기암괴석들의 퍼레이드, 가파른 철계단, 사방이 확 트인 전망까지 가야산 상왕봉·칠불봉과 닮았다. 뾰족한 모양의 바위들로 이뤄진 남산제일봉은 칠불봉에 버금가는 또 다른 석화성(石火星·바위로 된 불꽃)의 절정이다.

왕관바위와 목 긴 공룡바위.


전망대 바로 위 바위는 자체로는 별 볼거리가 없다. 하지만 이곳에 오르면 정상 방향으로 왕관바위와 그 바로 앞 목이 긴 공룡바위를 볼 수 있다. 다음으로 만나는 기암괴석은 등산로 바로 옆 ‘가위바위보 바위’다. 먼저 보이는 것은 거대한 바위 두 개가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공간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서 있는 모습이다. 가운데 작고 뾰족한 바위에 올라 인증사진을 찍는다. 이 바위를 오른쪽에서 보면 가위·바위·보가 합쳐진 모양으로 보인다. 눈을 돌려 맞은편 매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보면 미어캣 모양의 바위가 경계를 서듯 정상을 바라보고 있다.

인증사진 명소인 가위바위보 바위 공간.


이어지는 바위도 눈을 뗄 수가 없게 만든다. 도끼로 내리쳐 쪼갠 듯 길쭉한 바윗덩어리가 서로 붙잡거나 기대고 서 있다. 철계단과 어우러져 색다른 풍경을 펼쳐놓는다. 능선을 따라 오르내리다 정상 바로 아래 이르면 가파른 철계단이 나온다. 기암 옆으로 설치된 계단을 이용해 정상에 오른다. 수직에 가깝게 곧추서 있어 보호난간이 있어도 다리가 후들거린다.

가위바위보 바위를 오른쪽에서 본 모습.


정상에 서면 사방이 일망무제다. 북쪽으로 나지막한 오봉산(968m)이 눈에 들어오고 해인사를 품은 가야산이 산너울을 펼쳐 놓았다. 지리산 천왕봉과 반야봉, 덕유산 능선도 시야에 잡히고 금오산, 팔공산, 비슬산의 마루금도 사이좋게 박혀 있다.

정상을 바라보고 있는 미어캣 바위.


남산제일봉에는 불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진다. 조선시대인 1695년부터 1871년까지 176년 동안 가야산 해인사에 모두 7차례 큰 화재가 발생했다. 풍수가들은 그 원인으로 남산제일봉의 화기(火氣)를 들었다. 봉우리의 불기운이 날아들어 불이 났다는 것이다. 이에 해인사는 화기를 누른다는 의미로 매년 단옷날마다 소금단지를 묻기 시작했다. 소금은 바다고 물기운(水氣)을 의미하니 수기로 화기를 누른다는 ‘비보염승(裨補厭勝)’ 처방이다. 단옷날을 택한 것은 1년 중 양기가 가장 센 날이라는 이유에서다.

남산제일봉과 가야산 사이는 시원한 물줄기가 흐르는 홍류동계곡이다. 합천8경 중 하나인 홍류동계곡은 공원 입구에서 해인사에 이르는 십리길 계곡이다. 가을 단풍이 날릴 때면 흐르는 물에 홍엽이 빨갛게 비친다고 해서 ‘홍류동’(紅流洞)이란 이름을 얻었다.

홍류동계곡에는 소리길이 이어진다. 해인사 들머리의 대장경문화축전 행사장에서 출발해서 해인사를 향해 6.8㎞ 이어진다. 고운 최치원의 산책로이며 소요길이다. 계곡 주변엔 물 흐르는 소리에 귀가 먹었다고 해서 붙여진 농산정(籠山亭), 애송시를 새긴 제시석(題詩石) 등 고운과 관련된 명소가 늘어서 있다. 계곡에 가까이 다가서면 힘찬 물소리가 따라오고, 멀어지면 산새 소리와 바람 소리가 귓가에 스친다.

길상암에서부터 최치원이 노닐었다는 농산정까지 구간이 소리길의 하이라이트다. 길상암 부근 칼로 자른 듯한 바위 아래 계곡물이 푸른빛으로 고여 있는 낙화담 부근의 경관이 빼어나다.

합천=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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