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플러스] “의료폐기물 소각장 경북에 이미 3곳… 주민 목소리 들어야”
환경부 승인받은 업체 건립 추진에
“대기·수질 오염 우려… 생존권 문제”
주민 90%가 반대 서명·철회 요구
“맑은 물과 푸른 숲, 아름다운 바다가 어우러진 고향 산천이 의료폐기물소각장의 그림자로 얼룩지고 있다.”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에 의료폐기물 소각시설 건립을 두고 몇년째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주민들은 “의료폐기물소각장 굴뚝이 세워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의료폐기물처리업 등을 하는 A업체는 환경부 승인을 받고 포항 북구 청하면 상대리에 의료폐기물 소각시설 건립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대기·수질 오염 등을 우려하며 사업철회와 포항시의 적절한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A업체는 2018년 11월 부지를 매입하고 2019년 8월 대구지방환경청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면서 사업을 본격화했다. 이어 2021년 6월 환경부로부터 지정 폐기물처리업 통합허가 승인을 받고 그해 9월 포항시에 도시관리계획(폐기물처리 및 재활용시설) 결정 입안을 제안했다. 이에 포항시는 지난해 10월 도시계획 결정 공고를 하고 도시계획위원회를 개최하는 등 행정절차를 진행 중이다.
A업체는 청하농공단지 내 7078㎡ 부지에 건축 연면적 1698㎡, 하루 처리 용량 48t 규모의 의료폐기물 소각시설을 짓기 위해 절차를 밟고 있다. 격리의료폐기물과 조직물류폐기물 등 7종을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생존권이 걸린 중요한 사안이라며 폐기물 소각시설을 반대하고 있다. 2019년 이후 3년이 넘었다. 그동안 ‘청하면 의료폐기물처리시설 반대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반대 서명에 나서는 등 본격적인 저지에 나섰다. 청하면 전체 주민 4700여명 중 4100여명이 건립 반대 서명에 동참했다. 주민 90% 정도가 의료폐기물 소각시설에 반대한 셈이다.
주민들은 소각 과정에서 1급 발암물질 다이옥신 등 각종 환경오염물질 배출 우려와 보관 및 운반 과정에서 감염 피해, 환경오염을 유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태경 반대대책위원장은 “의료폐기물 소각장에서는 대기환경오염물질이 분출돼 인근 주민들 호흡기에 치명상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라며 “유서 깊은 고장에 의료폐기물 소각장이 들어서 대기환경이 오염되고 침출수로 바다를 오염시킨다면 사람들이 찾지 않는 죽음의 고장이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죽음을 불사한 각오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의료폐기물 소각시설 설치를 막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청하면은 내연산 수목원과 월포해수욕장 등 천혜의 자연 경관은 물론 최근 드라마 촬영지로 알려지며 관광지로 떠오르는 곳이다. 또 주민 70% 정도가 과수·채소·벼 등 친환경 작물을 재배·판매하는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최근 귀농·귀촌 인구도 늘고 있다. 면 소재지에 있는 중학교는 전교생 130명 중 90명이 포항시내에서 통학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은 의료폐기물 소각시설 설치 추진에 편할 날이 없다. 30여년 전 방폐장 건설 반대 시위를 했던 기억 때문이다. 청하면은 1992년 중·저준위 핵폐기장 설치에 반대하며 7번 국도를 가로막고 격렬한 시위와 집회로 몸살을 앓은 적이 있다.
주민들과 업체의 공방이 수년간 이어지며 갈등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그동안 업체와 주민들 간 여러 건의 민형사 소송이 이뤄졌다. 이 위원장은 “사업자의 개인 영리 추구 사업에 주민들이 생명과 재산권을 담보로 희생당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며 “주민들의 반대는 집단이기주의가 아니라 생존권을 사수하려는 정당방위”라고 했다. A업체 대표는 지난 21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구체적인 회사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한국환경공단의 의료폐기물 소각 업체별 현황에 따르면 전국 의료폐기물 소각장 총 14곳 중 경북도와 경기도에 각각 3곳이 있다. 또 충남 2곳, 부산·울산·경남·충북·광주·전남에 각각 1곳이 있다.
경북은 경주에 하루 96t을 처리할 수 있는 의료폐기물 소각장, 경산은 44t, 고령은 55t을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이 있다. 2021년 한 해 동안 처리한 의료폐기물은 5만6450t 정도다. 경북의 2021년 의료폐기물 발생량 7720여t의 7.3배가 넘는다. 주민들은 “경북 지역은 현재 운영 중인 3곳의 의료폐기물 처리시설로도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의료폐기물 소각시설은 포항시도시계획위원회 승인이 있어야 지을 수 있다. 포항시는 의료폐기물은 인근 지역에서 처리가 가능하고 주민 건강과 환경 피해 등의 예상에 따른 주민 수용성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포항시의회도 소각장 설치 필요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하고 ‘주민 수용성을 최우선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을 도시계획위원회에 전달했다. 도시계획위원회는 지난달과 이달 두 차례 열린 회의에서 조건부 재심의 결정을 내렸다.
포항시 관계자는 26일 “주민 수용성 등 요건을 충족하면 추후 다시 검토할 것”이라며 “민감한 사안인 만큼 도시계획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절차를 밟아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포항=안창한 기자 chang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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