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이제 '핵방패' 손에 쥐었다...한미 정상 '워싱턴 선언'의 의미

박현주, 김한솔 2023. 4. 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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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억제 관련 한ㆍ미 정상 간 최초의 공동 선언인 '워싱턴 선언(Washington Declaration)'을 통해 기존에 미국이 한반도에 펼쳤던 '핵우산'이 '핵방패' 개념으로 진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이 핵무장을 추진하지 않는 대신 양국 간 협의체 신설 등으로 미국의 확장억제를 획기적으로 강화한다는 게 핵심이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관저에서 열린 친교행사에서 한미 동맹 70주년 사진집에 서명하는 모습. 강정현 기자


"NCG로 나토보다 깊은 협의"


오는 26일(현지시간) 한ㆍ미 정상이 발표할 워싱턴 선언의 핵심은 ▶한ㆍ미 간 확장억제 협의체인 'NCG(Nuclear Consultative Group·핵 협의 그룹)' 창설 ▶핵(공격)잠수함 등 전략 자산의 한반도 정기적 전개 ▶미국의 핵자산 관련 정보 공유 확대 등이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25일(현지시간) 전화 브리핑에서 "한국 국민과 주변국들은 '워싱턴 선언'을 통해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에 대응한 우리의 확장억제가 훨씬 선명해졌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 NCG는 이름부터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NPG(Nuclear Planning Group·핵 계획 그룹)를 본딴 형태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9일 로이터 인터뷰에서 "나토 이상의 강력한 대응"을 언급했고,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한ㆍ미는 나토처럼 한국 땅에 핵무기를 갖다 놓지는 않지만, 협의의 깊이와 폭은 훨씬 강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설되는 NCG를 통해 지난해 11월 한ㆍ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 원칙적으로 합의한 ▶정보공유 ▶협의 절차 ▶공동기획 ▶공동실행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될 전망이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25일(현지시간) 워싱턴DC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내외와 함께 참배하는 모습.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함께 25일 워싱턴DC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을 방문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아직 협의체의 급 등은 공개되지 않았다. 그간 국방 당국 간에 혹은 외교ㆍ국방 2+2 형태로 이뤄지던 확장억제 논의를 안보실장 수준으로 끌어올릴 거란 전망도 나온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주요 위기 상황 때 우리가 어떻게 (핵 자산 운용 관련) 기획을 하는지 한국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라며 "이는 냉전 시대 미국이 유럽의 동맹에게 제공하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약 40년만에 핵잠 전개"


미국은 또 1980년대 초 이후 처음으로 한반도 주변 해역에 핵미사일을 갖춘 잠수함을 정기적으로 전개하기로 했다. 한반도 상공에 전개 시 눈에 띄는 전략폭격기 등과 달리, 위치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핵잠의 경우 '정기적 전개'에만 합의하더라도 사실상 '상시 배치'의 효과를 낸다.

박철균 전 국방부 군비통제검증단장은 "핵공격 잠수함은 사거리가 수천㎞에 달하고 잠항을 하기 때문에 위치 파악도 되지 않아 은밀성과 위력 측면에서 가공할만한 무기"라며 "정기적인 전개만으로도 상당한 억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로서는 상당한 수확"이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미 전략 자산의 구체적인 움직임을 포함해 정보 공유의 폭을 넓히고, 미국의 핵 기획에 있어 한국의 재래식 전력을 효과적으로 통합하겠다"고 밝혔다. 한ㆍ미는 워싱턴 선언에서 합의한 확장억제 강화를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맞춤형확장억제(TDS) 개정을 논의 중이다.

이와 관련, 정부 소식통은 “워싱턴 선언은 또 현무 계열의 탄도ㆍ순항미사일 등 한국의 3축 체계 자산을 미국의 확장억제 자산으로 통합해 억제력을 높이는 길을 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정부 소식통은 “워싱턴 선언을 통해 한국에 대핸 미국의 확장억제는 실질적 담보력이 높아졌다”며 “일례로 지금까지 한ㆍ미 연합연습에선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하는 상황을 포함하지 않았는데, 이번에 넣기로 했다”고 말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핵자산 관련 정보나 훈련 내용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공개할 것인가, 유사시 시나리오를 짤 때 한국의 의견을 어느 단계부터 반영할 것인지 등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오후 (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의 미 항공우주국(NASA) 고다드 우주센터를 방문해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및 한인과학자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대통령실.


"韓은 NPT 준수 명시"


한편 백악관은 워싱턴 선언에 "한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준수하며 비(非)핵 국가의 지위를 유지한다"는 취지도 명시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핵우산을 핵방패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대신 한국의 독자 핵무장은 불가하다는 취지다. 미국이 지금껏 누구와도 나눈 적 없는 핵 최종 결정권은 언제나 미국만이 가지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미국이 NPT 모범 국가로서 한국의 면모를 자꾸 부각하는 건 한국 내 핵무장 여론이 더 이상 점증하지 않도록 관리하려는 목적"이라고 말했다. 실제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이날 "한반도에 핵잠, 전략폭격기, 항공모함을 정기적으로 전개하겠다"면서도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전략자산이 상시적으로 (한반도에) '주둔'하는 일은 없을 것이며, 핵 무기의 경우 더더욱 그렇다"고 강조했다. 당장 한반도 내에 전술핵을 재배치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외교가에선 백악관이 한ㆍ미 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 이날 전화 브리핑을 연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양국 정상의 공동 기자회견 전에 어느 일방이 먼저 엠바고(보도 유예) 조건으로 주요 성과를 미리 공개한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백악관이 워싱턴 선언과 NCG 창설 등 확장억제 강화 조치의 의미를 충분히 설명하면서 한국 내 점증하는 핵무장 여론을 달래려 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은 핵방패를 제공하면서 한국엔 자유주의 진영의 일원으로서의 기여 확대를 원했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이날 "한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있어 '다음 단계'가 무엇일지 정상 급에서 심도 깊게 논의할 거라는 데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가 거론된다는 점을 알렸다.

백악관이 한국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 지원, 대러 제재 동참 등에 사의를 표하면서도 '다음 단계의 지원'을 콕 집어 언급한 건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기대해 왔던 무기 지원까지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있다.
이와 관련 윤 대통령은 25일 방송된 미국 NBC 방송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방침을 질문 받고 "한국은 국제사회와 힘을 합쳐 자유와 인권을 수호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최전선의 상황이 변할 때나 우리가 살상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해야 할 때가 된다면, 한국이 국제사회의 노력을 외면하는 상황은 없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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