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보호하려다…간호조무사·응급구조사 일자리 없앤다 [박은식이 소리내다]

박은식 2023. 4. 2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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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의사로서 진료 현장을 경험했기에 간호사님들이 처한 열악한 현실을 잘 알고 있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많은 환자가 배정되고, 잦은 야간 근무와 연장 근로에 시달리다 결국 일을 그만두는 분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간호사의 퇴직이 늘어날수록 기존 간호사의 업무가 과중해져 진료의 질이 저하되고, 또 퇴직이 늘어나는 악순환을 겪기도 했다. 그래서 간호법이 제정된다는 소식을 듣고, 간호사님들의 실질적 처우 개선을 이룰 수 있는 법안이 마련되길 바랐다.

그런데 본회의 상정을 앞둔 간호법은 간호사의 처우 개선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간호법에 노동조건과 처우 개선, 인권침해 금지 등을 담은 조항이 있지만 선언적 수준에 불과하고, 구체적인 방안은 빠져있기 때문이다. 정작 한 명의 간호사당 과다하게 배정되는 환자 수를 제한하는 간호인력인권법안이 5만 명의 동의를 받아 국민청원으로 국회에 접수됐지만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내년 21대 국회 종료와 함께 폐기된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를 명시한 근로기준법과 국가인권위원회가 있어 열악한 근로조건이나 태움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데 왜 굳이 간호사만을 위한 법을 제정하려 애쓰는 걸까?

간호법 제정안 제1조가 논란이 되고 있다

많은 이들이 간호법 제정안 제1조의 ‘지역사회’라는 문구에서 이유를 찾는다. 요양원이나 가정간호센터 같은 지역사회를 간호 활동 영역으로 명시한 법을 제정한 다음, 일부 개정을 통해 의사의 관리감독 없이 주사 투여나 간단한 시술을 할 수 있는 단독 개원을 노리는 것으로 의심받는 것이다. 하지만 의사의 관리 감독이 없는 간호사의 단독 의료 행위는 잦은 의료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또 의료기관에서의 처우 개선이 없이 상대적으로 편한 ‘지역사회’ 일자리가 늘어나면 의료기관에서의 간호 인력 이탈이 늘어날 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간다.

간호법 제정 시 다른 직군들의 일자리가 위협받는 것도 문제다. 응급구조사협회는 지금도 의료기관에서 이탈한 간호사들이 대거 119구급대나 소방공무원직에 지원하면서 일자리가 줄어드는데, 간호사의 지역사회 진출이 늘어나면 이런 상황이 더 심해질 것을 우려한다. 간호조무사협회는 간호법이 제정되면 복지시설에서 촉탁 의사의 지도 하에 간호조무사만 고용해도 되는 기존 방식이 바뀌는 것을 우려한다. 간호사가 지역사회에서 독자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됨에 따라 간호사가 시설에 반드시 필요하게 되고, 그만큼 간호조무사의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보건정보관리사,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요양보호사 등 13개 의료 관련 단체들도 마찬가지 이유로 반대 입장이다.

간호협회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한 38개국 중 30개 나라가 간호법이 있음을 들어 간호법 제정이 필요하다 주장한다. 하지만 의사협회의 의료정책연구소는 Law, Act, Code등의 형식을 갖추지 않고 Regulation, Order처럼 법의 일부나 하위법의 형태를 띤 나라를 제외하면 11개국뿐이라고 주장한다. 굳이 선진국 사례를 들자면 오히려 간호사에게 불리한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보자. 한국은 간호 면허를 가지고 있으면 119구급대나 소방공무원직에 바로 지원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응급구조 관련 특수 교육을 이수하지 않은 간호사는 119구급대에서 응급구조업무를 할 수 없다. 또 한국에서는 간호조무사 경력에 상관없이 간호학교 진학이 불가하고 간호조무사 응시 자격이 고졸로 제한되어 있어 위헌 논란까지 나온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한국의 간호조무사에 해당하는 ‘준간호사’가 1년 이상의 실무 경험이 있으면 2년 과정인 간호사학교양성소에 다닐 수 있고 이를 마치면 간호사국가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즉 OECD 회원국 중 몇 개 국가가 간호법이 존재하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나라마다 처한 다른 환경에서 직역 간의 원활한 협력이 가능한 업무 조정을 통해 환자 진료에 최상의 질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갈등이 지속하자 당정이 중재하여 간호법의 처우 개선 부분을 강화하고 문제가 된 ‘지역사회’ 문구를 빼려 했다. 하지만 간호협회는 협상 테이블을 박차고 나갔다. 애초에 간호법 제정의 목적이 처우 개선이 아님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런 무리한 간호법 추진은 ‘직역 이기주의’로 볼 수밖에 없다.

의료의 궁극적인 목적은 환자의 건강 증진이다. 이를 위해서는 간호사를 포함한 다양한 의료 직역들의 역할이 규정된 의료법의 테두리 안에서 더 나은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그래야 직역 간 갈등을 피할 수 있다. 간호사 처우를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라면 의료법 개정을 통해 간호 관련 수가 신설, 간호사 1명당 환자 수 제한 등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지역사회 돌봄을 확대하려면 이미 의사의 관리·감독하에 이루어지는 ‘방문간호제도’ ‘찾아가는 복지서비스’등을 보완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래야 기존 의료기관 및 지역사회 의료의 질 하락을 막을 수 있다. 지금처럼 반대가 심한데도 힘으로 간호법을 밀어붙인다면 이 모든 걸 다 놓칠 수 있다.

※이 글에 대한 반론을 대한간호협회에 요청했으며, 협회 추천으로 남송우 고신대 석좌교수가 간호법 제정에 대한 찬성 입장을 밝힙니다.

박은식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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