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깜빡이던 수상한 여행객 알아봤다…밀수범 잡은 신기술
세계 78개국의 관세당국 수장·대표단이 서울에 총출동한다. 관세청은 ‘코리아 커스텀즈 위크(Korea Customs Week, KCW) 2023’를 주최해 국제 공조를 강화하고, 한국 기업에 우호적인 무역 환경을 조성할 계획이다.
26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KCW가 개막했다. 관세 분야 최첨단 기술을 한곳에서 볼 수 있는 ‘관세기술전시회’는 오전부터 분주했다. 특히 가상현실(VR)을 이용해 수입 물품 검사를 체험하는 부스에는 많은 관람객들이 몰렸다. 헤드셋을 쓰자 탁 트인 항만에 컨테이너가 놓여 있었다. 엑스레이 차량이 지나가며 컨테이너 외관검사를 하고, 컨테이너 속 상자 두 개를 의심 물품으로 판단했다. 컨테이너 자물쇠를 펜치로 끊고 안에 있는 상자를 다 꺼냈다. 마약 탐지견이 달려와 냄새를 맡았다. VR 체험을 한 관람객 정예빈(24)씨는 "세관검사를 직접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생생한 게임처럼 몰입이 잘됐다"고 밝혔다.
관세기술전시회는 KCW 행사장에 마련된 상설 전시관 20곳에서 27일까지 열린다. VR체험 부스를 운영하는 HO엔터테인먼트의 백성실 대표이사는 “이번 박람회에서 해외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겠다”고 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밀수범을 잡아내는 기술도 눈길을 끌었다. 반입금지 물품을 가진 여행자는 눈을 깜빡이는 빈도나 혈류량·호흡량 등이 일반 여행자와는 다른데, 이런 미세한 생체신호 변화를 AI가 잡아낸다. 연구·개발에 참여한 남기표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국내 관세 기술에 이바지한다는 생각으로 연구‧개발에 집중했던 그간의 노력을 국내외에 알리고 있다”고 했다.
현장에서 소개된 마약 탐지 키트는 지름 1㎝가량의 스티커 형태다. 이 위에 마약으로 의심되는 액체를 소량 떨어뜨리고 1분 후 검사지의 색상 변화에 따라 양성·음성을 판단할 수 있다. 또 인체에 무해한 테라헤르츠파(THz)를 이용해 몸에 숨긴 물품을 빠르게 검색하는 기술도 전시회에 나왔다.
KCW에는 국제기구‧학계 인사 등을 포함해 총 600여명이 참가한다. 단일 국가가 개최한 관세 분야 글로벌 회의 중 최대 규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국가 간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해지는 시점에서 세계 관세당국의 공조를 강화하자는 취지다. 미국은 참석국 중 최대 규모인 16명의 대표단을 파견했다.
개회식에 앞서 열린 ‘관세청장 라운드테이블’에선 56개 관세당국이 ‘서울 선언문(Seoul Declaration)’을 공동 채택했다.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가 확산하고 공급망이 재편되는 여건 속에서, 자유로운 무역을 촉진하고 불법·불공정 무역은 근절하자는 취지다. 특정 국가 주최로 열린 글로벌 관세 회의에서 공동 선언문이 발표된 것은 처음이다.
윤태식 관세청장은 선진화된 한국 제도와 기술을 해외에 확산해 ‘관세 한류’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제시했다. 윤 청장은 “KCW 같은 행사를 통해 관세 이슈를 선도하고 비즈니스 미팅 등을 하는 것이 우리 기업이 수출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며 “KCW가 유용한 플랫폼을 제공했다고 대부분 관세당국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이 행사를 관세 분야 한국판 ‘다보스 포럼’으로 만든다는 게 관세청의 목표다.
27일에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18개국 관세당국이 참여하는 마약밀수 공동대응 선언문이 발표된다. 윤 청장은 “선언문은 마약 등 불법 물품 단속 및 적발과 관련해 참여국 간 정보교환과 인적교류 활성화하려는 취지”라며 “지난해 관세청이 적발한 마약 중 건수 76%, 중량 87%가 아태 지역에서 반입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선언문은 마약 차단에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윤 청장은 글로벌 관세청장 회의를 주재하는 한편, 미국과 베트남 등 25개 당국과 양자회의를 한다. 세관상호지원협정 체결, 마약·총기류 등 불법 밀수 단속 공조 강화, 한국형 전자통관시스템(UNI-PASS) 수출 등을 논의한다.
서지원 기자 seo.jiwo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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