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여성이 혼자 살아도 욕먹지 않는 사회를 위하여
[백세준 기자]
"결혼 왜 했어?"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왜?'라는 말에는 호기심이 담겨 있는데, 이에 대해 시원하게 정답을 말해주지 못하는 내가 답답할 때가 많다. 정말 결혼을 왜 할까, 아무리 되물어도 그저 머릿속은 컴컴할 뿐이다.
친구들이 질문하는 의도를 나는 잘 알고 있다. 사실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 살아야 되는 인간'의 표본으로 불리곤 했었다.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절실히 필요하고, 혼자 있다고 해서 외로움을 느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결혼을 이미 한 이상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어내야 하지만 궁색한 변명처럼 단지 와이프와 오랫동안 함께 살면 재밌을 것 같다고 말하곤 한다. "결혼 왜 했냐"는 질문은 아무리 곱씹어봐도 철학적이다.
나는 와이프와 결혼을 하고 싶어 '선택'을 했다. 오랫동안 연애를 하면서 나는 혼자 있는 것도 좋지만, 타인과 시간을 보내는 걸 꽤나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혼은 다른 문제였다. 와이프와 결혼을 하겠다고 선언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거쳐야 할 통과의례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와이프와 나는 사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썩 마음에 들지 않고, 결혼식도 올리기 싫었지만 으레 그렇듯 양가 부모님들이 자신의 친구, 직장 동료 등에게 뿌려 놓은 씨앗(축의금)이 많기 때문에 그걸 거두는 수단으로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게 아니였다면 등짝 스매싱을 맞을 각오하고 결혼식은 건너뛰고 소소하게 축하하며 지내지 않았을까 싶다.
▲ 김희경, <에이징 솔로> |
ⓒ 동아시아 |
부모-자녀로 이루어진 가족만 정상으로 여기고, 그렇지 않은 형태는 비정상이라고 간주하는 사회를 비판한 저자 김희경이 이번엔 '결혼'을 중심에 두고,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을 비정상으로 손가락질하는 사회를 지적하는 책 <에이징 솔로(Aging Solo)>를 내놓았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사회는 자율성에 기초해 다양한 방식의 삶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특히 40~50대 비혼 중년 여성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공격을 해댄다. "성격의 결함이 있어서 결혼 못하는 거 아니야?"라며 쉽게 단정 짓고,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사는 여성을 보고 "독하다"는 꼬리표를 붙이고 백래시를 가한다. 이는 비혼을 '선택'의 유무로 옭아매고 결혼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 김희경은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혼자이기 때문에 비혼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고 일갈한다. 계속해서 혼자 살다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 마음이 들었을 때 오히려 결혼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선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욕먹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이 책은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비혼 중년 여성 19명을 직접 인터뷰하여 이들의 삶은 어떠한지 소개하고,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나 제도, 법이 다양한 형태의 가구들을 어떻게 아우를 수 있을지 고찰한다. 특히 우리 나라의 법과 제도는 결혼을 한 가구들을 중심으로 짜여지기 때문에 1인 가구에 대한 대비책은 미비한 점을 꼬집는다. 2021년 통계청의 '통계로 보는 1인 가구'에 의하면 1인 가구는 33.4%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에도 실질적인 지원책은 없다.
외로운 비혼 중년여성들?
최근 고립감과 우울감을 느끼는 이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지원 서비스를 정부 차원에서 제공하고 있다. 서비스 대상을 살펴보면, 대부분 혼자 사는 노인이나 혼자 사는 중년들이다. 이들의 기본값은 외로움이다. 혼자 있으니 외로울 것이라고 단정짓고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연결해주는 일명 사회적 관계망을 만들어준다. 특히 중년 여성일수록 이러한 정서 지원 대상의 1순위가 된다.
(중략) 누구에게 권할 것도, 비난할 것도 아니고 그저 다양한 삶의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39쪽)
그러므로 에이징 솔로는 혼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가족 바깥의 관계를 넓혀가며 친밀함을 쌓고 있다. 자신과 가치관과 라이프 스타일이 맞는 사람과 순간순간 소통하면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즉 결혼이라는 제도권 내에 속한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외롭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나라는 변수만 생각"하면 되기 때문에 자유로운 생활이 가능하여 외로움이라는 잣대는 거둬들여야 되지 않을까 싶다.
판단하지 말고 호기심을 가져라
편견은 관계의 깊이를 가로막는다. 편견으로 인해 쉽게 단정 짓게 만들고, 그사람과의 대화를 단절시킨다. 어떤 사람인지 더 파악해보고 싶은 호기심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미 특정 (가짜)정보가 머릿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에미상 수상에 빛나는 애플TV+ 드라마 <테드 래소> 중 편견을 가졌다가 된통 당한 사람의 이야기가 일부 등장한다. 전개에 전혀 중요하지 않은 장면이었지만, 나는 이것이 잊혀지지 않는다. 드라마 내용을 모르더라도 기시감이 들 것이다.
사람들은 항상 나를 얕봤던 것 같은데 왜 그런지 한동안 이해를 못했어요. 한때는 열 받기도 했고요. 그러다 아들을 학교로 데려다 주는 길에 윌트 휘트먼의 명언을 봤어요. '판단하지 말고 호기심을 가져라.' 끝내주게 마음에 들던데요.
그러면서 한 발을 던지며 명중시킨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그 글을 보고 깨달았어요. 나를 깔보던 수많은 사람들, 단 한 명도 저한테 호기심조차 없었다는 걸요. (중략) 내가 누구였건간에 그 사람들은 애초에 저한테 관심이 없었다는 거죠. 예를 들어 정말 나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었다면 물어봤을 거 같아요. '다트 많이 해봤어?'라고요.
우리는 살면서 많은 호기심을 품고 질문을 하지만, 유독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들에게는 질문하지 않는다. 그저 '이들은 이럴 것이다' 하고 자체적으로 결론을 내릴 뿐이다. 만약 중년 비혼 여성에게도 다양한 질문을 했다면, 그만큼 다채로운 대답이 나왔을 것이고, 정부 정책 또한 그랬을 것이다. 저자 김희경은 그러한 역할을 책을 통해 해냈다.
더이상 혼자 사는 삶이 놀림거리가 되지 않고, 욕먹지 않고, 결함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이 책을 통해 조금이라도 편견의 균열이 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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