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이던 날파리 사라졌다" 건폭전쟁 120일, 확 바뀐 건설현장 [르포]

김민주 2023. 4. 26.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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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부산 강서구 명문초등학교 신축공사 현장. 지난해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등으로 공기가 크게 밀리면서 당초 계획한 3월에 맞춰 준공하지 못했다. 김민주 기자

지난 25일 부산 강서구 명지동 명문초등학교 공사 현장. 학교 건물은 최근 완공됐지만, 보도블럭 설치 등 마무리 공사가 진행중이다. 이 학교는 지난 3월 개교했지만 아직 임시 교실 등에서 수업하고 있다. 그동안 레미콘 파업과 장비사용 요구 집회, 두 차례에 걸친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영향으로 70일 넘게 공기(工期)가 밀렸기 때문이다. 다행히 정부가 지난해 12월 건설현장 불법행위에 칼을 빼 들면서 공사 방해 행위는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학교측은 "이르면 다음달께 준공할 것 같다"고 말했다.


“놀랄 만큼 잠잠해져”


전국 건설현장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정부가 ‘건설현장 불법행위 일제조사’를 시작하는 등 고강도 조치가 이어지면서다. 지난 2월 21일엔 윤석열 대통령이 장비사용ㆍ인력 채용을 강요하고 월례비 등을 요구하는 건설현장 불법행위를 ‘건폭’(건설현장 폭력행위)으로 규정하고 “완전히 근절될 때까지 엄정하게 단속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근무 시간을 준수하지 않고 무단으로 이탈하거나 노조 측 현장 방문, 갑질, 채용 강요 등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수시로 집회를 열어 공사를 방해하는 행위도 보기 힘들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대책을 보고받은 후 고강도 대책을 주문하고 있다. 뉴스1

부산 남구 한 아파트 공사현장 관계자는 “공사가 막 시작되는 현장엔 이른바 ‘날파리’들이 많이 꼬인다. 건설 노조 등이 포크레인ㆍ덤프트럭 등 장비와 인부, 사토장(토목공사 때 생기는 흙 등을 비용을 내고 버리는 장소)을 써달라는 요청이 몰렸다”라며 “그런데 올해는 놀라울 만큼 잠잠하다”고 했다.

경기 구리와 전남 해남, 전북 전주, 경북 고령 등 현장 관계자도 “채용 등을 요구하던 군소 노조 발길이 끊겼다” “1월부터 현장 앞 집회가 중단됐고 민주ㆍ한국노총 등 양대 노조 방문도 없다”고 말했다. 전주 B아파트 현장은 지난 1월부터 노조측이 현장 집회 신고를 중단했고 경기 고양 주택공사현장도 지난 2월 이후 노조원이 찾아오지 않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직원은 “현장 관계자가 노조를 만나게 되면 내용 등을 보고하도록 한 국토교통부 조치가 유효하다”고 했다. 노조에서 면담하자는 연락이 오더라도 ‘면담 내용을 국토부에 보고해야 한다’고 답하면 더는 연락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2월 28일 오후 서울 종각역 일대에서 건설노조 탄압 규탄 결의대회 사전집회를 하고 있다. 뉴스1

현장을 감독하는 부산지방국토관리청 배양근 주무관은 “(현장을 둘러보니)본래 잘 알고 소통하던 사이가 아니면 요즘 (노조에서) 연락을 거의 하지 않는다. 요구사항도 조심스럽게 전달하고, 거절하더라도 현장을 막는 집회나 안전장비 미착용ㆍ폐기물 처리 등 문제를 지자체에 허위 신고하는 보복도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신고도 적극적, 월례비 관행 끊겨


종전에는 노조마다 현장 장비 사용과 인력 채용 등을 요구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보복성 집회에 나섰다. 경찰이 관련 불법행위 신고 기간을 운영해도 건설사 등 사용자 측은 노조 보복을 의식해 신고를 꺼렸지만, 정부가 일관된 대응에 나서면서 이런 분위기도 변했다고 한다.
지난달 14일 서울 동대문구 한 주택재개발 신축공사 현장에서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 서울시, 경찰청 등 기관 관계자들로 구성된 건설 현장 점검팀이 타워크레인 운용 등과 관련해 현장을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국토부가 월례비 근절을 위해 크레인 조종사 면허를 취소하는 대책을 발표하자 뒤이어 한국타워크레인협동조합이 고액의 월례비를 받은 크레인 조종사들을 수사 의뢰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타워크레인 임대사업자 110개사로 이뤄진 조합 측은 부산·울산·경남 지역에서 월례비를 7000만 원 넘게 받은 기사 60명 명단을 특정해 수사 의뢰했다. 월례비는 정상적인 급여 이외에 타워크레인 기사에게 일정 금액을 매월 관행처럼 주는 돈이다. 부·울·경 지역 월례비는 500만~700만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조합 측 신고 이후 전국 현장에서 월례비 요구도 사라졌다.


“압박만 하면 역효과 올라” 우려도


하지만 정부 조치를 불안하게 바라보는 의견도 있다. 울산 아파트 건설현장 관계자는 “정부 차원 일제조사가 끝없이 이어질 수는 없다"며 "단속 손길이 느슨해지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어 아직 안심할 수는 없다”고 했다.

또 다른 건설현장 관계자는 “아직은 노조가 정부 눈치를 살피며 몸을 사리지만 계속 압박만 하면 노조도 야ㆍ특근 거부, 현장 태업 등으로 대응할 수 있다”라며 “지금 상황을 정착시킬 수 있는 제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민주·안대훈 기자 kim.minju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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