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전 장관 "日강제징용 보상 양보하고 아무것도 못 건져"
"일본의 군사적 무력 행사와 관련한 결정은 일본의 잔혹한 식민지 침략에 대한 한국인의 생생한 집단 기억을 감안해 이뤄져야 한다. 이런 민심을 무시한 채, 하는 일본과의 동맹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순진하고 무책임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국빈 방문 행사에서 다양한 신뢰를 강조하게 될 것인데, 이로 인해 우리나라에 대한 미국의 도청 사태는 잊히게 될 것(papered over)이다"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국제학과 석좌교수)은 26일(현지시간) 이코노미스트에 칼럼을 통해 윤석열 정권의 한·미·일 외교 행보에 대해 이같이 비판했다.
미국과의 '신뢰' 강조해봐야…
먼저 강 전 장관은 "'신뢰'는 외교 연설에서 많이 쓰는 단어"라고 하면서 운을 뗐다. 다만 "우호적인 국가들과 가까운 동맹국 사이에서도 이들의 진정한 의도에 의문을 제시하는 것이 외교 최전선"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최근 불거진 미국의 도청 의혹이 담긴 미 국방부 기밀문서 유출에 대해 정부가 "미국에 대한 신뢰는 여전하다"고 밝혔지만, "(우리나라) 야당에서는 미국의 스파이 행위가 심각한 '신뢰 위반'에 해당한다는 점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으며, 정부에 대한 지지도 하락 등을 볼 때 이들의 말에 힘이 실린 것이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강 전 장관은 "윤 대통령의 국빈 방문 행사에서 나올 양국 간 안보에 대한 다양한 '신뢰'에 대한 다짐들이 강조되면서 결국, 도청 사태는 잊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 전 장관은 미국과 굳건한 동맹을 얻기 위해 신뢰를 강조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봤다.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일본이나 미국보다 훨씬 활기차고 활발한 시민 사회와 통제되지 않은 표현의 자유는 정부를 계속 긴장시키고 있다. 이런 사회 체제는 'K-팝'과 같은 전 세계적 문화 폭풍을 가져오기도 했고, 젊은 세대들이 새로운 것에 도전할 자신감을 키워주고 있다. 이런 "K-팝과 같은 소프트 파워와 자신감을 활용하면 미국과 동맹관계를 굳건히 하게 되는 길을 만들 수 있다"며 "더 나아가 한국은 불안한 세계에서 평화와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힘이 될 수 있다"라고 강 전 장관은 판단했다.
일본, 강제징용 배상 문제 양보하고 아무것도 못 건져
또한 강 전 장관은 우리나라와 일본 간의 신뢰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그는 "대다수의 한국인은 여전히 미국과의 동맹을 지지하고 있지만, 여기에 일본까지 들어가게 되면 분노를 일으키게 된다"라며 "북한이 도발을 강화하고 있는 만큼 최근 미·한·일 3국 안보 공조 강화가 필요하나, 일본의 군사적 무력 행사와 관련한 결정은 일본의 잔혹한 식민지 침략에 대한 한국인의 생생한 집단 기억을 감안해 이뤄져야 한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런 민심을 무시한 채, 하는 일본과의 동맹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순진하고 무책임하다"라고 덧붙였다.
특히 강 전 장관은 "일본은 한국에 대한 만행의 흔적을 체계적으로 지우며, 희생자들의 고통과 한국인의 억울함을 계속 심화시키고 있다"라며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한, 한국과 일본 사이의 신뢰는 깨지기 쉬운 관계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이어 "대법원 판결을 공동화하려는 최근 한국 정부의 움직임도 이러한 패턴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는 지난 3월 일제강점기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개별 배상금을 지급했던 대법원 판결의 핵심 요소를 포기하기로 결정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라며 "이 문제를 일본에 양보하고 그 대가로 아무것도 받지 못한 정부는 외교 정책 전선에서 대중의 신뢰를 강화하기 위해 힘든 압박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강 전 장관은 윤석열 정부의 이 같은 한·미·일 외교 행보에 대해 "유감스럽다"라며 "일본이 과거를 완전히, 그리고 정직하게 받아들일 때 양국의 잠재력은 역사의 무게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이는 "양국과 아시아 전체의 신뢰에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힘을 실어줄 것이며, 미국과 이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도 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준호 기자 rephw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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