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 수발러' 이경규 밉지가 않다
[이준목 기자]
▲ JTBC <뭉뜬 리턴즈>의 한 장면. |
ⓒ JTBC |
이경규와 여자사람친구, 그리고 여행 예능의 만남, 아무리 봐도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이다. 심지어 환갑이 넘은 연예계 대선배이자 존경받는 예능 대부에게, 오히려 선배와 여사친들의 수발을 들게 한다? 그 발상의 전환만으로 짠한 웃음을 자아내는 것도 바로 이경규이기에 가능했다.
4월 25일 방송된 JTBC 여행예능 <뭉뜬 리턴즈>에서는 '꽃보다 경규' 2탄으로 여사친들을 이끄는 '환갑 수발러'로 변신한 이경규와 네 여사친(조혜련, 박미선, 노사연, 신봉선)의 좌충우돌 베트남 여행기가 그려졌다.
여행 2일 차를 맞이한 이경규 일행의 본격적인 베트남 하노이 배낭여행이 시작됐다. 조혜련은 초췌한 몰골로 일어난 이경규를 위하여 마스크 팩과 메이크 업, 안마까지 해줬다. 이경규는 말로는 싫은 티를 내면서도 결국은 고분고분하게 조혜련에게 얼굴을 맡겼다.
멤버들은 베트남 전통의상인 아오자이를 대여했다. 이경규는 말로는 입기 싫어하면서 행동으로는 가장 적극적으로 아오자이와 모자까지 세트로 착용해 웃음을 안겼다. 이어 현지인보다 더 현지인 같은 비주얼로 유럽 관광객들 앞에서 춤까지 추면서 마치 주인처럼 호객행위에 나서기도 했다.
아오자이를 착용한 멤버들은 하노이의 대표적인 포토 스팟인 '성 요셉 성당'으로 향했다. 여사친들은 서로 다정하게 인증 사진을 찍었다. 이번에도 관심 없는 척을 하면서 떨어져있던 이경규는 돌연 여사친들이 사진 찍을 때마다 빠짐없이 끼어드는 반전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황당한 여사친들은 "안 끼는 데가 없다"고 이경규를 타박하면서도 미소띤 얼굴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일행은 하노이의 명물인 '코코넛스무디 커피'를 맛볼 수 있는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달달하지만 예상보다 차가웠던 코코넛커피에 라지 사이즈를 주문했던 '먹사슴' 노사연마저 놀랍게도 한 컵을 다 비우지 못 하는 진풍경이 펼쳐쳤다. 계속해서 코코넛카페를 오자고 보채던 이경규도 상상을 뛰어넘는 냉기에 당황하더니 "앞으로 코코넛카페는 금지"라고 발빠른 태세전환을 선언하며 여사친들을 어이없게 만들었다.
일행은 신봉선이 직접 검색한 맛집인 베트남의 유명 전통음식점에서 분짜와 스프링롤, 반쎄오 등을 주문하여 푸짐한 한 상을 즐겼다. 이경규는 음식이 미처 다 나오기도 전에 "입에 안 맞는다"고 툴툴거렸으나 정작 폭풍먹방을 선보였다. 박미선이 낮은 목소리로 "초등학교 애 데리고 다니는 것 같다"라고 불평하자 이경규는 곧바로 알아듣고 반응했다. 여사친들은 "자기 욕하는 이야기는 귀신같이 알아듣는다"며 웃음을 지었다.
한편으로 이경규는 식사를 하면서도 서로 챙겨주며 화기애애한 여사친들을 바라보며 은근한 소외감과 부러움을 드러냈다. 이런 이경규를 지켜보던 조혜련은 "경규 오빠는 남자들이랑 있으면 이야기를 잘 안 한다. 그런데 우리랑 있으니까 모든 이야기마다 다 끼려고 한다"고 팩폭을 날리며 웃음을 자아냈다.
일행은 이번엔 시클로 투어에 나섰다. 5인이 3대에 나뉘어 탑승하는 상황에서 박미선의 권유로 이경규는 선배인 노사연과 동승하게 됐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막상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던 두 사람은 둘만 붙어있게 되자 어색해하며 대화를 이어가는 데 잠시 어려움을 겪었다.
베트남 시클로 기사님이 어색함을 깨는 뜻밖의 웃음 버튼이 됐다. 노사연와 이경규를 태운 시클로는 다른 자전거와의 확연한 무게 차이 때문에 갈수록 뒤로 처졌다.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기사님의 표정과 말투만으로 힘겨운 상황을 눈치챈 이경규와 노사연은 그만 웃음을 참지 못했다. "힘들어 죽겠는데 왜 빨리 가라고 그러냐"며 기사님의 속마음이 빙의된 듯한 이경규의 성대모사 재롱은 노사연을 빵 터지게 했다. 간신히 목적지에 도착한 후 한숨을 내쉬며 기진맥진한 기사님의 표정은 30분간의 험난했던 여정을 요약해주며 또 한 번 웃음을 자아냈다.
여행 3일 차에 접어들며 이경규는 여사친들을 위하여 직접 볶음밥과 메추리알국 등으로 아침식사를 정성껏 준비했다. 이경규는 "나는 내가 요리한 음식을 남들이 맛있게 먹는 걸 보면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라며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하지만 감동도 잠시, 이경규가 과도하게 쏟아부은 소금치기 때문에 음식이 너무 짰던 여사친들은 곳곳에서 소금 테러를 호소하여 이경규를 민망하게 했다.
일행은 이경규가 준비한 대로 하롱베이로 떠나는 럭셔리 크루즈 투어에 돌입했다. 여사친들은 기대 이상으로 화려한 크루즈의 위용에 "이제야 제대로 여행 온 기분이 난다"며 설레는 반응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다음주 예고편에서는 체력이 방전된 이경규가 수발 포기를 선언하고 짜증을 부리는 모습과 여사친들이 눈물 흘리는 장면을 통하여 '몰래카메라'를 암시하며 궁금증을 남겼다.
▲ JTBC <뭉뜬 리턴즈>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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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규는 데뷔 이래 콩트에서 버라이어티, 토크쇼, 관찰예능, 전문직업과 미션 수행 예능, 1인 라이브 방송 등 약 40년간 수많은 장르를 두루 경험했고. 여전히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방송인이기도 하다. 트렌드의 흐름을 읽는 안목과, 각기 다른 장르에 녹아드는 유연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경력이다.
유재석이나 신동엽, 김구라, 강호동같은 이경규보다 아랫 세대의 정상급 예능 MC들도 저마다 자신들이 더 강점과 약점을 보이는 장르나 캐릭터가 정해져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경규는 그야말로 몇 안 되는 올어라운드 플레이어형 방송인이라고 할수 있다. 여행예능은 이경규의 커리어에서 그나마 비중이 낮은 편이지만, 이경규는 주특기가 아닌 장르마저도 아예 자신의 장점에 맞추어 '이경규화' 시킬 수 있는 내공을 과시한다.
<뭉뜬 리턴즈>는 시리즈의 터줏대감 격인 김용만, 안정환, 김성주, 정형돈 4인방의 배낭여행기 도전기에 이어, 2편에서는 이경규와 여사친들의 여행이라는 새로운 조합을 선보였다. 이경규는 <뭉뜬> 시즌1에서도 게스트로 출연하여 좋은 케미를 선보인 바 있다.
여행사가 정해놓은 코스를 따라다니기만 하면 되는 패키지 여행이었던 시즌1과 달리, 시즌2인 <리턴즈>는 출연자가 모든 것을 직접 알아서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자유여행을 표방했다. 함께하는 출연자와 역할에 따라 이경규의 캐릭터와 케미도 자연스럽게 달라진다.
▲ JTBC <뭉뜬 리턴즈>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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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에게는 카리스마 넘치는 예능 대부나 호통 캐릭터로 익숙한 이경규지만, 사실 그는 알고보면 남들을 받쳐주고 살리는 역할에 더 능숙한 방송인이었다. 애초에 이경규를 처음 스타덤에 올린 것이 대표작인 <일요일 일요일밤에>에서 메인 MC 주병진을 보좌하며 콩트에서 몸개그까지 온갖 궃은 일을 해내는 2인자의 역할이었다. 방송가 최고참급 선배가 된 지금도 <나를 돌아봐>에서 조영남을 보좌하던 매니저로, <도시어부> 시리즈에서 맏형 이덕화를 챙기고 희생하는 둘째형으로 능숙한 수발 내공을 보여준 바 있다
이경규의 트레이드 마크인 호통과 버럭이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은, 역설적으로 그 권위가 무너지는 반전에서 이루어진다. 누가 봐도 대선배이고 강해보이는 이미지의 이경규에게 전혀 주눅들지 않고 받아칠 수 있거나, 혹은 능글맞게 대응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나 역으로 당하고 쩔쩔매는 모습에서, 시청자들은 더 친근함을 느낀다.
노사연은 이경규보다 선배이고, 박미선과 조혜련은 후배지만 이경규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인물들이다. 여사친들은 초딩처럼 끊임없이 투덜거리고 감정기복이 심한 이경규의 페이스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능숙하게 앞담화까지 시전한다.
이경규가 진짜로 화난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는 조혜련에게 박미선은 "화난 건 아니고 원래 말투가 그런 것"이라며 이경규의 진심을 이해해주고, 좌충우돌하는 이경규에게는 "초등학교 애 데리고 다니는 것 같다"고 타박하며 조련한다. 이경규가 "음식이 안 맞는다"라며 불평하자, 조혜련은 "오빠가 우리랑 제일 안 맞아"라고 센스에게 응수해 모두를 박장대소하게 한다. 자칫 도를 지나치면 불편하게 보일 수 있는 이경규의 떼쟁이 캐릭터를 여사친들이 유머러스하게 중화시켜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또한 이경규는 비록 말로는 '어색하고 불편하다'며 늘 투덜거릴지언정, 정작 실제로는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하며 여사친들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노력하는 '츤데레'의 전형을 보여준다. 애교를 부리는 조헤련에게 질색하다가도 마지못한 듯 결국은 시키는 대로 다 따라주고, 직접 음식을 하거나 짐을 옮기는 것을 앞장서서 도와주며 책임감을 드러낸다.
마음 대로 따라주지 않는 체력과 돌발상황에 사고를 치기도 하고 힘들어하면서도 어떻게든 최선을 다하려는 이경규의 모습은 우리네 평범한 60대 아저씨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청자들에게 서툴고 짠하고 투덜거리는 이경규가 그리 밉지 않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어떻게 이경규가 장르를 가리지 않는 노련한 베테랑 예능인으로 아직도 건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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