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병기' 플로터, 챔프전 좌우할 변수 되다

이준목 2023. 4. 2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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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터 적극 활용한 SK, 예상 깨고 KGC 상대로 77-69 승리

[이준목 기자]

농구의 공격 기술인 플로터(Floater)는 현대농구에서 그 가치가 점점 올라가고 있는 고급 기술로 꼽힌다. 레이업처럼 뛰다가 슛을 쏘는 방식이지만 오버핸드로 공을 띄워버리는 동작 특성상, 일반 레이업이나 점프슛보다 매커니즘의 난이도가 높다. 대신 슈팅 타이밍이 더 빠르고 올라가는 각도도 높아서 블록이 어렵기 때문에 한번 들어가기 시작하면 상대가 알고도 못막는 상황에 놓인다는 장점이 있다.

NBA(미국 프로농구)나 해외무대에서 플로터는 공격수들의 필수적인 공격기술로 애용되고 있다. 크리스 폴, 스테판 커리, 자 모란트, 제임스 하든, 트레이 영 등 내로라 하는 선수들도 중요한 순간에 플로터를 '필살기'처럼 구사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아무래도 자신보다 큰 선수를 앞에 두고 대응하는데 효과적이기에 주로 단신 드리블러들에게 유용한 기술로 여겨지고 있지만, 그만큼 장신 선수들이 플로터까지 장착하면 더 위협적이다.

프로농구 서울 SK가 플로터를 앞세워 경기를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SK는 지난 4월 25일 안양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정규리그 우승팀 안양 KGC와 2022~23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 예상을 깨고 77-69로 승리를 거두는 이변을 연출했다. 이로써 SK는 정규리그 6라운드부터 플레이오프, 챔피언결정전까지 16연승 행진을 이어갔다.

전희철 서울 SK 감독은 챔피언결정전 운영 전략에 대한 질문에 김선형과 자밀 워니 위주의 '몰빵농구'를 예고한 바 있다. 안영준(상무)과 최준용(부상)의 공백으로 정규시즌 순위와 팀전력에서 앞선 안양 KGC에게 열세라는 평가를 받던 SK로서는, '원투펀치'인 김선형과 자밀 워니 위주로 경기를 풀어나갈 수밖에 없다고 인정한 것이다.

MVP 듀오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워니가 23점 10리바운드 3스틸, 김선형이 22점 12어시스트 6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KGC도 오마리 스펠맨(24점 11리바운드)-오세근(21점 16리바운드)을 앞세워 분전했으나 승부처에서의 집중력에서 차이가 났다. 이날 경기에서는 양팀 합쳐 무려 4명의 선수가 한 경기 동반 더블-더블이 나오는 진기록을 세웠다.

여기서 눈에 띄는 부분은 SK가 이날 플로터를 유난히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공격을 펼쳤다는 것이다. 워니와 김선형이 합작한 45점 중 무려 32점이 플로터로 올린 점수였다. 두 선수는 이날 야투를 나란히 10개씩 성공시켰는데 이중 워니가 9개, 김선형이 7개로 플로터의 비중이 압도적이었다. 3점슛(김선형 2/3)과 자유투(워니 3/3)을 제외하면 이날 경기 내내 두 선수의 주요 공격 옵션은 사실상 플로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그 최강의 수비력을 자랑하는 KGC가 김선형-워니의 몰빵농구를 뻔히 알고서도 당한 이유가 바로 플로터를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KGC가 높이에서 우위에 있었음에도 수비를 달고 던지는 워니와 김선형의 플로터가 백발백중으로 꽂히면서 골밑 수비는 무력화됐다.

공격 1옵션인 워니는 이미 정규리그에서도 플로터를 주무기로 구사했던 선수. 상대의 집중견제가 이미 예상된 챔프전에서 워니는 골밑까지 깊숙이 치고들어가기보다는 KGC의 더블팀에 둘러싸이기 전에 자유투 라인에서 한박자 빠른 플로터로 마무리하는 패턴을 구사했다. 골밑에서 직접 부딪히며 우격다짐으로 넣는 것보다 체력소모도 줄일 수 있는 효과가 있었다. 워니는 이날 40분 풀타임을 거뜬하게 소화하면서도 지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또한 눈여겨볼 것은 김선형의 움직임이었다. 국내 선수중에서는 수준급의 플로터 능력을 장착한 김선형이지만 이날은 플로터를 평소보다 의도적으로 더 자주 구사했다. 돌파력이 뛰어난 김선형은 특유의 스피드와 엇박자 스텝으로 KGC의 수비를 휘저은 뒤 본인의 슛 또는 A패스라는 2개의 선택지를 동시에 가져갈 수 있었다.

여기서 김선형의 돌파는 사실 본인의 공격보다는 항상 패스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다만 골밑 돌파를 빠르게 하다보면 외곽 패스를 할 수 있는 타이밍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여기서 플로터는 상대 움직임에 따라 득점과 패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자연스러운 연결이 가능하다. 상대는 김선형이 슛을 할지 패스를 할지 혼란을 느끼다가 리듬을 빼앗기게 된다.

김선형이 이날 두 자릿수 어시스트를 기록한 것은 이타적인 플레이에 집중했다는 증거다. KGC는 김선형의 플로터를 의식하지 않을수 없다보니 자연스럽게 대응 타이밍이 한박자씩 늦을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김선형의 플로터가 상대가 무시할수 없는 공격 옵션으로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 플로터가 선수 개인의 효율적인 공격기술을 넘어, 팀 차원에서의 '전술적 이점'을 가져다줄 수 있음을 보여준 장면이기도 하다.

또한 전희철 감독은 KGC의 수비를 분산시키기 위하여 특유의 스리가드 시스템을 포기하고, 식스맨인 장신슈터 허일영을 스타팅으로 과감하게 기용하는 등 워니와 김선형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넓히는 데 주력했다. KGC로서는 어렵게 득점을 해서 따라가다가도, 상대 플로터에 알고도 허무하게 당하는 상황이 반복되자 맥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한국농구에서는 그동안 플로터의 전술적 가치를 받아들이는 게 늦은 편이었다. 이현민이나 전태풍, 김선형 같은 몇몇 선수들만이 비교적 플로터를 능숙하게 구사했다. 불과 10여년전만 해도 농구 전문가들조차 플로터를 '막슛'이나 '확률낮은 플레이'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다행히 최근에는 외국인 선수들을 중심으로 플로터를 적극 시도하는 선수들이 늘어났지만, 아직도 플로터를 주요 공격 옵션으로 완성도 있게 구사하는 국내 선수들은 손에 꼽을 정도다.

양팀의 챔피언결정전 1차전은 현대농구에서 플로터의 가치가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보여준 경기였다. 전희철 감독이 몰빵농구를 당당히 예고할 수 있었던 것도 "김선형과 워니의 플로터는 어차피 알고서도 막지 못한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됐다. KGC는 자유투 라인 인근에서 워니와 김선형에게 조금의 공간도 허용하면 대가를 치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플로터에 호되게 당한 KGC가 2차전부터는 과연 어떤 수비 해법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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