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출사표에 트럼프 "가장 부패한 대통령"…어게인 2020 되나
“우리는 이 일을 계속하고 마무리해야 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이 같은 출사표와 함께 재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내년 미 대선의 윤곽이 조금씩 구체화하고 있다. 지지율이나 민주당ㆍ공화당 내 대선 주자들의 면면을 볼 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양강 구도가 두드러져 2020년 대선 때 붙었던 두 사람의 격돌이 재현될 가능성이 커졌다.
당장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바이든 대통령의 출마 선언을 맹비난하면서 대립각을 세웠다. 그는 자신이 만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 계정을 통해 “바이든은 미국 역사상 가장 부패한 대통령”이라며 “이런 비참하고 실패한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재선에 나서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러면서 2020년 대선 결과 조작 음모론도 다시 불 지폈다. 그는 “여러분은 지난 대선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것”이라며 “그들은 속였고, 선거를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선거에서 개표기 조작 가능성을 적극 유포했던 폭스뉴스가 최근 개표기 제작업체(도미니언)에 7억8750만 달러(약 1조540억 원)를 배상하게 된 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열성 지지자들에겐 음모론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걸 강조한 셈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막대한 재정 지출과 치솟는 물가,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로 대표되는 금융위기, 불법 이민자 문제와 마약 중독 등 공화당 지지층이 민감해하는 이슈도 집중 거론했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에 뼈아픈 경제난에 대해선 “200년 만에 우리의 가장 큰 패배”라고 날 선 비판을 했다.
그는 또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 정책과 관련해 “아프가니스탄 재난을 시작으로 세계 무대에서 우리를 망신시켰다”며 “끔찍한 (미군) 철수를 보면서 러시아는 중국과 협력하고 이란의 핵폭탄(핵보유)은 며칠 안 남았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두곤 “내가 대통령이었다면 절대 안 일어났을 것”이라며 “바이든은 우리를 3차 대전 직전으로 이끌었다”고 강조했다.
“마가(MAGA)와의 전쟁 안 끝났다”
이같은 트럼프 진영의 ‘무능한 정권’ 프레임 공격에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정상화’로 맞서고 있다. 이날 재선 출마를 선언하면서도 트럼프를 지지하는 강성 우파들을 지칭하는 ‘MAGA(마가)’를 가리키며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마가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 구호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에서 따온 말이다.
3분 분량의 바이든 대통령 출마 선언 동영상도 지난 대선 결과에 불복하고 2021년 1월 6일 미 국회의사당에 난입했던 트럼프 지지자들의 폭동 영상으로 시작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문제는 앞으로 우리가 더 많은 자유를 가질 것인가 아닌가다. 아직 만족할 때가 아니다”며 마가와의 대결 구도를 선명히 나타냈다.
바이든 캠프의 이런 선거 전략을 두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와 마찬가지로 ‘정권 심판론’을 피하겠다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바이든 진영은 바이든 대통령을 신뢰할 수 있고 경험이 풍부한 정치인, 극단주의 우파에 대항한 드라마틱한 대안으로 내보이고 싶어한다”며 “지난 중간선거 때처럼 내년 대선을 바이든 대통령의 성적에 대한 투표가 아닌 양자택일 구도로 가져가야 더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고 짚었다.
2016년 대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 후보 캠프의 홍보전략가였던 제니퍼 팔미에리도 “(중간선거에서의 민주당 선전은) 바이든과 민주당이 승리하기 위해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유권자들에게 무엇이 위태로운지 이해시키기만 하면 된다”고 폴리티코에 말했다.
바이든과 트럼프의 재대결이 성사될 경우 중도층의 표심이 쏠리면서 바이든 대통령이 우세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현재의 낮은 지지율(CNBC 18일 발표 여론조사, 지지율 39%)과 내년 82세를 맞는 고령 등에 대한 우려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특히 경제 상황에 대한 비관론은 최근 17년 사이 가장 높은 수준(CNBC 조사, ‘비관적’ 응답 69%)이어서 이를 어떻게 극복할지가 당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 출마 선언 후 첫 공개석상인 25일 북미건설노조 행사에서 “우리는 다시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고, 제조업은 다시 활기를 찾았다. 여러분과 우리가 하는 일 덕분에 잊히고 죽어가는 도시들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취약점을 의식한 것이란 풀이가 나온다.
줄줄이 재판 열리는 트럼프
트럼프 전 대통령은 현재 진행 중인 성추문 관련 여러 건의 재판이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2016년 대선 직전 성관계 폭로를 막기 위해 전직 포르노 배우에게 회삿돈을 쓰고 관련 문건을 조작한 혐의로 기소된 데 이어 27년 전 성폭행 의혹과 관련한 민사 재판도 이날 시작됐다.
이번 재판의 원고인 패션잡지 엘르의 칼럼니스트 출신 엘리자베스 진 캐럴(79)은 1996년 뉴욕의 한 백화점 탈의실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성폭행 시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원고 측 변호인은 “당시 사건으로 왕성한 사회 활동을 하려던 캐럴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며 “이번 재판은 정의를 구현하고 캐럴이 자신의 인생을 되찾을 기회”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 측은 “사실무근”이라며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타격을 주겠다는 정치적인 목적과 함께 비망록(2019년 출판)을 팔기 위한 경제적인 목적에서 꾸며진 것”이라고 반박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외에도 뉴욕주 검찰이 제기한 금융사기 민사소송, 자산가치 조작 혐의와 관련한 또 다른 민사소송도 걸려 있다. 이처럼 선거 과정에서 여러 건의 재판에 불려가는 모습이 나오면 지도자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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