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대학 정리해야 한다? 맞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윤석열 정부가 출범 후 처음으로 내놓은 대학 규제완화 정책을 두고 '지역 대학 죽이기'라는 비판이 상당합니다. 자율과 혁신, 규제개혁을 명분으로 삼았지만 지역대학과 지역경제의 쇠락을 재촉한다는 주장입니다. '공공적 고등정책을 요구하는 전국교수연대회의'가 관련된 글을 <오마이뉴스>에 보내와 5회에 걸쳐 싣습니다. <편집자말>
[전국교수연대회의 양성렬]
▲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9일 세종시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교육·인재 정책 세미나에서 교육개혁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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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대학체제가 근본적인 위기에 처해 있다. 지난 2022년 8월 서울대학교는 중장기발전계획 보고서를 통해 대학의 위기를 언급하며 대대적인 개혁을 예고했다.
대학의 위기는 대학 내외의 무수한 원인이 작용하지만, 무엇보다 만성적이고 심각한 재정난에 있다. 전국의 모든 사립대는 빈사 상태이고, 국가가 설립하고 운영하는 국립대도 다르지 않다.
그나마 사정이 낫다는 경북대 등 거점 국립대조차 재정난을 호소하는 상황은 예사롭지 않다. 며칠 전 일부 사립대는 교육부의 강압적 억제를 뚫고 기어이 등록금 인상을 단행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면 대학 교육의 질과 수준에 대한 걱정은 호사가의 입방정으로 들릴 지경이다.
'돈'으로 대학 존폐 결정하는 정부
국가의 고등교육체계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정부의 실효적인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마침내 정부는 교육당국의 대학 관리 권한을 지자체로 이양하고,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와 글로컬(Glocal) 대학 육성사업을 발표했다.
정책의 핵심은 혁신적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담대한 비전을 보여주는 대학에 매년 200억 원, 5년간 1000억 원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이다. 물론 제한 경쟁으로 향후 3년간 매년 10개씩 선발할 계획이다. 지역과 대학의 공생, 지역 경쟁력, 국가 경쟁력 등 화려한 수식어로 포장되었지만, 결국에는 '돈'으로 대학의 존폐를 결정하고 부실대학은 퇴출하겠다는 의도가 짙게 깔려 있다.
흔히 사람들은 '대학이 너무 많기 때문에 다수가 정리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부실대학의 정리는 필연적인 과제가 분명하다. 냉정하게 말하면 신입생 미충원은 대학의 부실화에 따른 결과다. 학생이 부족하니 당연히 등록금 수입이 줄고 대학은 경영난에 빠진다. 그러면 부실기업이 파산하듯이, 경영난에 빠진 대학의 퇴출은 정상적인 과정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대학들은 끝까지 버틸 것이며, 해산장려금 등 국민 정서에 반하는 주장을 하고, 교육 당국은 관련 법령 미비 등을 핑계로 방관할 것이다. 신입생 미충원과 재학생 이탈 규모가 커지면서 재정은 날로 악화되지만 교원 인건비 삭감, 비정규교원 채용 등의 수단으로 근근이 버틴다.
이러한 대학들은 몇 년 전부터 '한계대학'으로 명명되어 언론에 공개되었다. 모두 사립대학으로서 이들은 혹한기를 대비해 곰이 겨울잠을 자듯 오로지 생존을 위한 경비 감축에 몰두하면서 대학의 고유 기능도 포기하였다. 이 처참한 모습이 바로 일부 사립대학의 현실이며 바로 '대학의 좀비화'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정상적인 대학보다는 부실대학이 더욱 예민하고 신속하게 대비하며, '좀비화'의 최종 결과는 일반의 예상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 한국사립대학교수연합회와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2020년 5월 19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공익발언 탄압하는 대학법인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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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육적이고 국가 예산을 낭비하는 현상은 우리나라 사립대학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대학은 당연히 최상위 교육과 연구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대학의 경영 주체는 교육과 연구를 책임지는 교수가 맡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사립대학 경영의 주체는 대학교수를 포함한 구성원이 아니라, 통상 '사학재단'이라 불리는 (학교)법인이다.
그럼 이것이 왜 문제가 될까? 대학 경영권은 교수 임용과 파면에 관한 권한을 포괄하고, 이는 지금까지 사립대학 교육과 연구의 자율성 및 민주적 대학 운영을 저해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대학의 민주화와 교육의 자율성을 외치는 구성원의 요구보다 사학법인의 자율성이 존중받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사립대학의 미래는 멈춰 서있다. 일반인에게 지극히 생소한 대학과 법인의 병존, 교육과 경영 주체의 분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사립대학의 미래는 존재할 수 없다.
사학법인의 자율적인 경영권 행사는 대한민국 교육체제 발전사의 단면을 보여준다. 신생 대한민국 정부는 열악한 재정상황으로 초등교육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 해결책으로 정부는 전국의 유지에게 면세 혜택 등을 주고 사립학교 설립을 권유하였다. 그 결과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사립대학이 전체 대학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전 세계에서 유일의 특이한 고등교육체제가 형성되었다.
사립대학의 공과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원동력이자 주체로서 대학의 역사적 사명을 상기할 때 사학법인의 역할도 마땅히 평가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학법인은 대학체제 발전의 결정적인 장애가 되었다.
법인이사회는 재정적 기여에 비해 대학 경영 전반에 관한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법원은 그것을 '설립자'의 사적 권리로 정당화하였다. 이러한 환경은 경제성장과 생활 수준의 향상에 따라 대학체제의 선진화 정책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물로 작용했다.
설립자에 의한 사학법인의 직접 운영은 현재 사라졌고, 그 후손들이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직도 사립대학을 법인의 사유재산으로 인정하는 판단이 유효한가? 오늘날 사립대학의 재정은 등록금과 정부의 공적 자금이 핵심을 이룬다.
경제성장을 거치면서 정부는 교육의 공공성을 표명하고 사립대학 운영에 공적 자금을 투입해 왔다. 따라서 재산의 대부분이 공공재적 성격을 강하게 내포하는 점을 고려할 때, 사립대학의 설립에 기여하지 않은 설립자의 후손들이 상속세도 면제받은 채 사유재산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사정이 이럴진대 학생 수가 감소하고 온라인교육이 대세라며 등록금으로 마련한 대학의 '교육용 기본재산'을 법인의 '수익용 기본재산'으로 전환하여 매각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 달라는 주장은 참으로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이러한 주장에 장단을 맞추어 법제화를 추진하려는 교육부의 정책이 진정으로 대학과 학생, 그리고 고등교육을 위한 결정인지 의심스럽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대학의 재정난 해결은 시급한 과제가 틀림없지만, 부실과 비리의 꼬리표를 떼지 못한 사학법인에게 재정적 혜택을 베푸는 것은 대학문제의 합리적 해결을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교육 당국이 내세우는 효율성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근본적이고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사실 대학의 재정지원에 관한 정부와 국회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안)(아래 재정교부금법)이다. 여야가 지난 19년 동안 13차례나 법안이 발의됐지만 모두 본회의 상정조차 하지 못하고 폐기되었다.
대학지원체제 3대 원칙
우리는 이 사례를 통해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이 법안이 적절한 해법이 아니거나 법안에 심각한 하자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투성이의 '재정교부금법'을 대체할 합리적인 대안은 무엇인가?
이제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대학재정지원의 원칙'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첫째, 대학설립 주체와 목적, 편제와 규모, 지역적 특성 등을 고려한 지원원칙을 수립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의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다.
둘째, 국립대학에 대한 확고한 지원체계가 수립되어야 한다. 국립대학은 국가가 설립한 교육기관으로서 지원과 관리 책임이 전적으로 국가에 있음을 명시하고, 국가적 차원의 발전 전략에 입각하여 학문의 균형발전과 전략적인 국가인재 양성을 책임지는 국립대학에 부합하는 합리적이고 안정적인 재정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사립대학도 대학교육의 보편화에 따라 국가가 적절한 지원의 책임을 져야 한다. 이 경우 사립대학의 효과적인 지원을 위하여 사학법인 평가제도 도입이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 즉, 사학법인 평가를 통해 건실한 법인과 부실한 법인을 가려내고, 전자에게는 최대한의 자율성과 가능한 재정지원을 제공함으로써 정상적인 운영을 보장해야 한다.
위의 3원칙은 향후 재정지원 논의를 위한 출발점에 불과하다. 이 원칙을 토대로 삼아 교육 당국, 대학 본부, 그리고 대학 구성원 사이에 꾸준한 토론과 합리적인 세부 방안의 도출이 필요하며,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소통의 장도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사립대학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효적인 지원체제를 갖추기 위하여 전국을 (초)광역고등교육구로 구분하고 구속력을 가진 행정기관으로서 '광역고등교육청' 신설을 제안한다. 이러한 새로운 행·재정적 지원체제의 구축은 교육부의 권한을 지자체로 이관하고 라이즈와 클로컬 대학 선정 사업을 졸속으로 추진하는 정부 정책의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 미래지향적이며 안정적인 대학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대학법의 제정이 시급하다. 신생 대한민국 초기에 6개 종합대학, 12개 단과대학에 불과했던 사립대학의 수는 현재 총 329개에 이른다. 이토록 많은 대학을 규율하는 두 법률이 고등교육법과 사립학교법이다.
그러나 전자는 고등교육의 목적과 대학의 정체성도 규정하지 않은 매우 엉성하고 미흡하기 짝이 없고, 후자는 유치원부터 대학원에 이르는 복잡한 교육 관련 사항을 뭉뚱그려 놓은 잡탕법이다. 이러한 고등교육 관련 법률의 미비와 한계를 빌미 삼아 정부는 수많은 특별법과 시행령을 제정하여 대학을 관리하고 통제하였다(대학법 체제 정비, 2021).
국립대학의 설립과 운영의 근간이 되는 규정조차 법률이 아닌 대통령령(국립학교설치령)에 의지하고 있으며, 대학 운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재산관리 규정조차 시행령도 아닌 교육부 지침에 근거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왜곡으로 국립대학과 사립대학 모두 교육부 관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가 드러났다. 이렇도록 황당한 교육 관련 법체계를 그대로 두고서는 결코 바람직한 대학의 미래상을 설계할 수 없다.
이제 21세기 대학체제 혁신의 선결과제로서 대학 관련 법률의 정비가 시급하다. 궁극적으로 통합적인 대학법 제정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우리나라 대학의 구조적인 차이를 고려하여 우선 국립대학법과 사립대학법의 조속한 제정이 요청된다.
대학의 설립 목적, 권리와 의무, 구성원의 요건과 권리·의무, 법인 및 운영체제, 국가의 재정지원과 통제 범위,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구조조정의 제 원칙 등이 포괄되는 대학법이 제정되는 날 대한민국 대학의 재도약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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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이사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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