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살 케이크'는 홀대라고? …美 '국빈 만찬'의 진짜 의미

임주형 2023. 4. 26.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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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최대 외교 행사 '국빈 만찬'
숨겨진 의미 두고 논란 분분
"美 재료 선보이는 쇼케이스"

미국 국빈 만찬은 방문국엔 항상 뜨거운 감자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내외와 함께하는 국빈 만찬 메뉴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화제가 됐다.

혹자는 2021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과의 오찬에서 즐긴 '게살 케이크'가 이번 만찬에서도 나왔다며 일종의 정치적 함의가 담긴 게 아니냐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실제 국빈 만찬, 오찬 등에는 과연 고도의 정치적 메시지가 담긴 걸까. 미국인은 '백악관 만찬'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게살 케이크는 크랩(헛소리)? 진실은 뭘까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 만찬 메뉴인 메릴랜드 게살 케이크가 전시돼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26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 저녁 만찬에는 게살 케이크, 소갈비찜, 후식으로는 아이스크림과 바나나 스플릿이 나올 예정이다. 앞서 백악관 측은 전날 만찬 메뉴에 관해 "한미 두 문화를 조화"했다고 소개했다.

만찬 메뉴를 두고 누리꾼 사이 반응이 갈렸다. 특히 일각에선 2021년 한미 정상회담 당시 문 전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과 오찬하며 먹은 음식도 게살 케이크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게살 케이크는 익힌 게살을 마요네즈 등에 버무려 튀긴 대중 음식이다. 당시에도 일부 유튜버 사이에서 미국에 한국 대통령에게 '격'이 떨어지는 음식을 대접한 게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게살(crab)이라는 단어가 '헛소리'라는 뜻으로도 쓰일 수 있다는 점을 들어 '한국 홀대론'이 나오기도 했다.

만찬, 오찬 등을 두고 논란에 휩싸이는 것은 비단 한국뿐만이 아니다. 2021년 문 전 대통령 오찬 전에는 스가 요시히데 전 일본 총리의 오찬도 있었다. 당시 메뉴는 햄버거였다. 이를 두고 일본 내에서도 '일본 홀대론' 주장이 빗발쳤다.

"美 최대의 쇼케이스" 국빈 만찬, 어려운 시대에 자부심 더해줬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질 바이든 여사가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에서 헌화 증정식에 참석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그렇다면 국빈 만찬, 오찬 등에는 실제 방문국 정상, 수반 등의 격을 나누려는 고도의 메시지가 심겨 있는 걸까. 지난 2월7일 미국 베테랑 기자 알렉스 프뤼돔은 백악관 저녁 식사의 역사를 총망라한 '대통령과의 저녁 식사(Dinner with the President)'라는 저서를 출간했다. 이 책은 백악관 최대의 외교 행사인 '국빈 만찬'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소상히 기록했다.

프뤼돔에 따르면 실제 국빈 만찬은 백악관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행사다. 국가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하고, 나아가 행사에 참여한 모든 이들을 축하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중요성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의미와 약간의 거리가 있다. 프뤼돔은 국빈 만찬이 '미국의 식문화와 역사, 문화를 반영하기에'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사실 백악관 만찬이 대중에 처음 공개된 건 1960년대라고 한다. 린든 B. 존슨 행정부 시절인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전쟁, 냉전, 인종 갈등 문제 등으로 피로가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존슨 전 대통령은 정치적 위기를 무마할 방안으로 외교 행사를 대중에 전면 공개하기로 했다.

'백악관 레드카펫'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 국빈 만찬을 대중에 공개한 것은 미국 식문화와 재료에 대한 자부심을 높였다. [이미지출처=미국 공공방송 아카이브]

1967년 일본 국빈 방문 당시 소규모 방송팀이 백악관 안에서 3일을 보내며 행사 과정을 촬영했다. 특히 미국산 최고급 재료로 만든 만찬과, 이를 맛보고 감탄하는 방문객을 카메라에 상세히 담아내는 데 힘썼다. 이 내용은 이후 '백악관 레드카펫'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로 공개됐다.

다큐멘터리에 대한 청중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이후 미국 정치권은 '인간화된 외교 행사'로 대중의 관심을 끄는 데 주력하기 시작했다. 즉, 국빈 만찬은 백악관이 상대국에 숨겨진 메시지를 던지는 게 아닌, "백악관 요리사와 기술, 최고의 미국 재료를 선보이는 쇼케이스"이기에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지난해 12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부부와 함께한 국빈 만찬에서도 잘 드러난다. CNN에 따르면 당시 백악관 대변인은 '성공적인 국빈 만찬'의 기준으로 "미국과 방문국의 요소를 유기적으로 결합해 환대를 제공하되, 그걸 너무 인공적으로 뽐내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라마다 다른 환대 전통, 오해 빚기도

영국 버킹엄궁 국빈 환영 만찬에서 건배하는 왕세자빈과 남아공 대통령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그러나 국빈 만찬이 방문국 국민에 '오해'를 주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도 사실이다. 일례로 지난해 11월24일, 고(故) 엘리자베스 2세를 이어 영국 국왕으로 즉위한 찰스 3세 국왕은 첫 국빈 만찬으로 라모파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부부를 초대한 바 있다.

당시 만찬에는 영국, 프랑스에서 빚은 각종 진귀한 와인들이 동원됐다. '왕실의 숲'인 윈저성 일대에서 잡은 야생 꿩으로 만든 고기 요리, 1983년에 생산돼 40년가량 숙성시킨 포르투갈산 최고급 포트와인도 준비됐다. 숲에서 사냥한 꿩고기에 진귀한 와인을 제공하는 것은 유럽의 오랜 환대 전통이다. 영국 입장에서는 영연방의 일원인 남아공 정상을 극진히 모신 셈이다.

그러나 남아공 현지 매체 일부는 이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아프리카 최대 와인 생산국 중 하나인 남아공의 와인이 단 한 병도 식탁에 오르지 않았다는 지적이었다. 각 대륙, 문화권 별로 다른 천차만별인 환대 전통이 낳은 해프닝이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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