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학습 동기 잃은 고등학생, 목표보다 가치다

2023. 4. 26.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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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 G는 좀처럼 공부에 의욕이 없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업 성취도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알아보기 위해 대조군 집단(아무런 교육을 하지 않은 집단), 목표 세우기 집단, 목표설정을 잘하는 법과 함께 자신의 가치에 대한 개입을 받은 집단, 세 그룹으로 나눠 실험했다.

공부 목표에 대한 개입과 가치에 대한 개입이 현저한 차이를 보였다.

가치와 목표는 어떻게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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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는 삶의 등대와 같다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 G는 좀처럼 공부에 의욕이 없다. 중학교 1학년까지는 열심히 공부했다. 영재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성적도 우수했다. 하지만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공부는 해서 뭐해요’라고 말하며 공부에 흥미를 잃었다. 부모가 권유하니 학원에 다니기는 하지만, 가방만 들고 왔다 갔다 하고 시간만 보내고 오는 듯하다. 틈만 나면 게임에 몰두한다. 동기 부여가 안 돼 그런가 싶어 학습상담도 해보고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 어떤 대학을 가고 싶은지 정해봤다. 성적이 10% 올라가면 원하는 선물로 보상해주기로 했다. 시험 계획을 같이 짜보는 등 장단기 목표를 정해보는 노력도 해봤다. 그러나 여전히 무기력하고 학습 동기가 없다.

행동심리학자들의 유명한 실험이 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업 성취도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알아보기 위해 대조군 집단(아무런 교육을 하지 않은 집단), 목표 세우기 집단, 목표설정을 잘하는 법과 함께 자신의 가치에 대한 개입을 받은 집단, 세 그룹으로 나눠 실험했다.

2번 그룹에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는 방법을 배우게 했다. 3번 집단에는 자신의 가치에 대해 탐구해 보도록 했다. 학업 성취도에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놀랍게도 2번 집단에선 아무것도 하지 않은 대조군과 똑같이 학업 성취도에 영향이 없었다. 반면 가치에 대해 개입한 집단에선 학업 성취도에서 20% 향상을 보였다.

가치에 대한 교육을 어떻게 했을까. 학생들이 학업 수행을 ‘정원 가꾸기’처럼 생각하도록 요청하고 과정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보여줬다. 그들이 정원의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알고 식물의 성장을 바라보길 좋아한다는 가정하에 진행했다. 그들은 곧 정원 가꾸는 일이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요구하는 일이라 쉽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힘들고 괴롭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이기에 행위를 하는 매 순간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공부하는 일도 매 순간 이런 마음으로 접근한다면 한 주간 공부하는 것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그 감정과 느낌을 경험해 보게 했다. 그리고 학습하는 행위에서 그들 자신에게 중요한 측면이 뭔지 생각해 보도록 했다.

공부 목표에 대한 개입과 가치에 대한 개입이 현저한 차이를 보였다. 왜 그럴까. 가치와 목표는 어떻게 다를까. 목표는 성취의 결과이며 한번 달성하면 그걸로 끝이다. 반면 가치는 정원 가꾸기처럼 지속적이면서도 순간순간을 느끼며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 목표 대부분이 사회가 또는 부모가 원하는 것에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공부를 잘하거나, 좋은 직업을 갖거나 등 사회에서 인정받는 길이라 생각해 쫓게 된다. 하지만 목표는 그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가치’와 맞닿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누군가의 인정이나 찬사를 받기 위해 해왔던 목표 지향 행동이 자신에게 진정으로 의미 있는 것과 방향이 맞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방향을 잃고 생동감이나 활력을 잃게 된다. 무의미해지고 동기를 잃게 되며 무기력해진다. 심지어 우울에 빠지기도 한다.

삶의 초기에는 부모나 사회로부터 규범을 배우고 사회의 룰을 익히며 가치관을 전수해 형성되는 목표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지속적으로 동기 부여가 되기 힘들다.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의미 있다고 느껴지는 삶의 방향이 있을 때 ‘살아 있다는 느낌’ ‘활기’와 함께 동기 부여가 된다. ‘가치’는 삶의 등대와 같다. 도달할 수는 없지만 힘든 상황에서도 방향을 제시해줘 길을 잃지 않게 해준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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