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라이트]스필버그는 오늘도 네버랜드로 향한다

이종길 2023. 4. 26.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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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벨만스'로 풀어낸 자서전
"상상 통해 무엇이든 할 수 있어"
호기심 많은 주인공이 쥔 카메라
그 속에 담긴 가족과 화해의 미학

"나는 줄곧 내가 피터팬이 아닐까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내게 성장은 어렵게 느껴진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담백한 고백이다. 감성적 공상에 빠져있단 지적에 흔들리는 법이 없다. 꿈꾸는 듯한 이야기가 관객과 공감대를 형성할 줄기라고 믿는다. 뿌리에는 휴머니즘을 위시한 가족주의가 있다. 연출작 대부분에 가족 간 이별과 화해가 담겨 있다. 누군가는 진부하고 작위적이라고 폄하한다. 'A. I(2001)'가 대표적 예. 원래 메가폰을 잡으려 했던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암울하고 괴기스럽게 제작할 계획이었다. 예기치 않은 죽음으로 연출 권한이 스필버그 감독에게 넘어가면서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바뀌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도 비슷한 경우다.

휴머니즘은 진부하고 보편적으로 치부되기 쉽다. 스필버그 감독은 끊임없는 상상력으로 흥미로운 영상을 만들어내 약점을 최소화한다. 어릴 적 머릿속으로 그려본 이미지를 보기 좋게 풀어내고, 나이를 먹은 뒤에도 주기적으로 공상에 빠진다. 그는 "영화를 만들면서 단순한 이야기로도 위대한 주인공을 창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상상력을 통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으며 어느 곳에서도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가장 위대한 업적은 '왜?'라는 아이 같은 호기심에서 탄생한다. 마음속의 어린아이를 절대 포기하지 말라."

그의 자전적 영화 '파벨만스'는 상상력의 근원만 비추지 않는다. 그것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과정도 함께 들여다본다. 소년 새미(가브리엘 라벨)가 필름의 힘을 실감하며 삶에 작은 변화를 일으키는 내용이다. 새미는 태생적으로 호기심이 많다. 궁금증이 풀려야만 질문을 멈춘다. 부모인 버트(폴 다노)와 미치(미셸 윌리엄스)는 자녀의 관심사에 귀를 기울인다. 내놓는 답의 성격은 판이하다.

"프로젝터라는 큰 기계가 있어. 내부에 크고 밝은 빛이 있고, 그 빛은 사진을 투사하지. 프로젝팅은 그것들을 내보낸다는 뜻이야." "영화는 꿈 같은 거란다, 아가야.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꿈. 보면 알게 될 거야."

실제로 스필버그 감독의 아버지는 늘 분석적으로 해답을 설명했다. 남들이 보기에 답답할 정도로 무엇이든 자세히 설명했다. 반대로 어머니는 자식이 최대한 독창적으로 자라도록 인도했다. 더 많이 되물으며 행동하고 상상할 기회를 제공했다. 아들이 촬영하는 영화도 적극적으로 도왔다. 산에서 지프를 후방으로 운전하는가 하면, 서른 캔 분량의 체리를 압력솥에 넣고 끓여 가짜 피를 만들었다.

새미는 부모의 조력에 탄력을 받아 다양한 시도를 감행한다. 홈비디오를 어머니 중심의 드라마 형태로 찍는가 하면, 친구들을 불러 모아 전쟁영화 '이스케이프 투 노웨이'를 만든다. 그는 충분한 상상력과 기술력을 발휘하고도 한계를 자각한다. 전자를 편집하며 어머니의 불륜을 인지하고, 후자를 촬영하며 배우 통제에 실패한다. 새미는 어머니 앞에서 폭발하고 만다. "이런 거 안 먹을 거예요." "새미, 몇 주 동안 계속 무례하게 구는구나." "무례요?" "왜 이렇게 짜증을 내는 거야? 젠장, 난 네 엄마라고." "엄마가 아니면 좋겠어요!"

끝내 이혼으로 파편화된 가정은 한동안 스필버그 감독의 서사를 지배하다시피 했다. 레스터 D. 프리드먼 시러큐스대학 영화학과 교수는 저서 '스필버그의 말'에서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속) 가정은 혈연관계 혹은 위험한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함께하게 된 경우지만, 개인이든, 소수집단이든, 그보다 큰 규모의 생존자 그룹이든, 가상현실의 팀원들이든 혹은 미국이라는 국가 전체든, 모두 서로 재결합하기 위해 투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2000년 이후 스필버그의 대작들은 이런 요소들을 구체화함으로써, 이전의 많은 영화보다 복잡한 주제들에 훨씬 심도 있게 파고든다"고 평가했다.

새미는 '디치데이 1964'를 제작하면서 절제력과 통일성을 확보한다. 홈비디오나 '이스케이프 투 노웨이' 제작 때와 분명한 차이를 드러낸다. 가장 뚜렷한 변화는 자신이 카메라로 무엇을 찍어야 하는지 분명히 안다는 점이다. 클라우디아(이사벨 쿠스만)가 남자친구 로건(샘 레크너)과 바람피운 르네(챈들러 러벨)에게 물풍선을 맞춘 순간을 포착하는가 하면, 아이스크림을 이용해 친구들이 새똥을 맞은 것처럼 꾸민다. 편집하면서는 자기를 괴롭힌 로건의 남성미를 한껏 부각한다. 네트 가까이에 높이 솟아오른 배구공을 강하게 쳐내는 움직임과 가장 먼저 달리기 결승선에 골인하는 모습 등에 슬로 모션을 적용한다. 부담을 느낀 로건은 세미에게 "인생은 영화와 달라"라고 말한다. 세미는 반박한다. "아마도…. 하지만 결국 너는 여자(클라우디아)를 얻었지."

새미가 로건을 멋지게 조명한 이유는 그에게서 어머니를 봤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외도를 저지르고 폭력을 행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새미는 그들 앞에서 '나'를 표현하는데 서툴렀다. 확실한 의사를 밝힐 방법이 필요했고, 카메라를 잡은 뒤에야 세상에 말을 건넬 수 있게 됐다. 영화가 성공을 위한 수단이기보다 순전히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한 도구였던 셈이다.

스필버그 감독은 내면을 살피고 보살펴 그것을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었다. 고희를 넘긴 지금도 여전히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바깥세상에 그것을 함께 나눌 사람들이 충분히 있기를 소망한다. 마치 동화 속 피터팬이 웬디를 이끌고 네버랜드로 향하듯이. "내가 바라는 단 한 가지는 뭔가 새로운 걸 시작하고 그걸 끝까지 해내려는 열망과 사랑을 잃지 않는 겁니다. 오직 그걸 희망해요."

* 영화 관련 흥미로운 정보는 '[알고보면]스필버그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는다'에서 확인.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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