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참전’ 윌리엄 쇼 부자, 참전용사 영웅 선정

최경식 2023. 4. 26.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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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원대학교(이희학 총장)는 매년 추모식을 통해 위대한 희생을 기리는 윌리엄 쇼 부자가 국가보훈처와 한미연합군사령부가 정전협정 및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공동 선정한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에 선정됐다고 25일 밝혔다.

윌리엄 쇼 부자는 한국전쟁 전후 2대에 걸쳐 대한민국과 목원대를 위해 헌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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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얼 쇼 선교사와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목원대학교(이희학 총장)는 매년 추모식을 통해 위대한 희생을 기리는 윌리엄 쇼 부자가 국가보훈처와 한미연합군사령부가 정전협정 및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공동 선정한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에 선정됐다고 25일 밝혔다.

윌리엄 쇼 부자는 한국전쟁 전후 2대에 걸쳐 대한민국과 목원대를 위해 헌신했다. 윌리엄 얼 쇼 선교사(한국명 서위렴·1890~1967)는 한국전쟁 당시 주한미군 군목으로 자원입대해 한국 군대에 군목 제도를 도입한 인물이다. 전쟁으로 인한 파괴와 살육의 현장에서 군목으로 일하면서 피란민을 구호하는 활동도 벌였다. 전쟁 직후에는 목원대 전신인 ‘감리교대전신학원’의 창립이사 겸 신약 교수로 활동했다.

아들인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서위렴 2세·1922~1950)는 맥아더 장군과 함께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했다. 앞서 미국의 해군 장교로 노르망디상륙작전 등 제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했고 한국에서 해군사관학교(해안경비대) 초대 교관으로 근무했다. 또 해방 후 한국 정부 수립 전 미군정청(점령지 군사정치 기관) 경제협력관으로 근무했다.

쇼 대위는 1947년 전역 후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기도 했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내가 태어난 곳인 한국에 있는 친구들을 돕겠다”며 1950년 미국 해군에 재입대해 다시 한국을 찾았다. 하지만 1950년 9월22일 오전 정찰을 위해 서울 은평구 녹번동으로 접근하던 중 기관총으로 중무장한 인민군의 공격을 받고 28세를 일기로 전사했다.

쇼 선교사는 아들의 죽음을 기리고자 5955명으로부터 1만4500달러를 모금해 1957년 목원대에 해밀턴기념예배당을 세웠다. 윌리엄 쇼 부자는 서울 마포구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서 영면에 들었다. 쇼 대위는 1956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금성을지 무공훈장을 추서받았고, 미국 정부로부터 은성 훈장을 수훈했다.

이희학 총장은 “한국을 위해 희생했던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매년 추모예배를 대학에서 하고 있다”며 “목원대는 쇼 일가의 한국 사랑과 목원 사랑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최경식 기자 ks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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