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길게 해도 되나" 목청 높였다…원희룡·한동훈 미묘한 경쟁
지난 23일 국회에서는 예정에 없던 장면이 연출됐다.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책을 놓고 국민의힘과 정부, 대통령실이 회의를 했는데 결과 브리핑에 관련 부처 장관이 모두 나선 것이다. 그간 당정 회의 후 수석대변인이 브리핑한 것과는 양상이 달랐다.
키는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잡았지만, 시선은 경쟁하듯 발언하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로 쏠렸다. 원 장관은 각종 질문에 손짓을 하며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매입임대 방안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뒤 야당을 향해 “국민 혈세로 피해자 보증금을 대납해준다”며 각을 세웠다.
그러자 한 장관도 뒤지지 않았다. 그는 “좀 길어도 되냐”며 양해를 구한 뒤, 야당 안에 대해 “국가가 피해자 손해를 떠안으라는 취지”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대책에 포함된 전세사기범 가중처벌 대책도 원래는 안건이 아니었지만 한 장관이 회의 중 관철했다고 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사회적 공분이 큰 전세사기 사건에 대해 두 장관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모습”이라며 “차기 주자 주도권 싸움을 놓고 미묘한 경쟁을 벌이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이런 경쟁은 두 장관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로 경합을 벌이는 것과 무관치 않다. 차기 지도자 적합도를 묻는 국민리서치그룹·에이스리서치 여론조사(3월 11~13일)에서 한 장관은 16.4%였고, 원 장관은 5.6%였다. 여권 주자 중에는 한 장관이 1위였지만 원 장관도 지난해 12월 조사(3.3%)보다 큰 폭으로 오르며 상승세를 탔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두 사람이 더욱 주목받는 것은 이들이 윤석열 대통령과 가까운 친윤 주자라는 점 때문이다. 홍준표 대구시장, 오세훈 서울시장, 안철수 의원, 유승민 전 의원도 여권 차기 주자로 거론되지만, 당내에서는“주류인 원희룡·한동훈 장관이 스포트라이트를 더 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 나온다. 두 사람 모두 핵심 부처 장관인데다가 서울대를 나온 검사 출신 엘리트라는 점에 주목하는 이들도 많다.
이에 두 사람은 부처 현안을 진두지휘하며 성과 내기에 집중하고 있다. 원 장관은 지난 20일 이용객 포화 문제가 지적된 김포골드라인 열차를 직접 탔다. 시민들을 만나 고충을 들은 그는 버스전용차로 설치 및 전세버스 60여대 긴급 투입 등 대대적 조치를 꺼냈다.
한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선포한 ‘마약과의 전쟁’을 직접 지휘하고 있다. 지난 21일 당정협의회에서 한 장관은 “마약범죄에 대해서는 ‘악’ 소리가 나게 강하게 처벌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관련 정책을 비판하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을 향해서는 “마약 정치”라고 맹비난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원 장관은 지난 대선에서 선대위 정책본부장으로 짜임새 있는 정책을 만들었고 이후 국토부를 이끌면서 과단성 있는 정책으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며 “반면에 한 장관은 윤 대통령 핵심 측근으로 젊고 유능한 이미지로 황태자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어 두 사람의 미묘한 경쟁 구도가 점점 세질 것”이라고 했다.
당내에서는 내년 4월 치러질 22대 총선이 두 사람의 정치적 향배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원 장관이 최근 서울 동작구 노량진1동으로 이사하자 정치권에서는 ‘동작갑 출마설’까지 돌았다. 3선 의원 출신인 그가 수도권 선거를 끌어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않다. 다만 원 장관은 일단 출마설은 부인한 상태다.
아직 선출직 경험이 없는 한 장관의 경우에도 “당이 어려울 수 있는 수도권에 출마해 직접 선거를 끌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한 장관만 한 인지도를 가진 여권 주자가 많지 않은 데다가 야당과 선명하게 각을 세울 수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 때문이다.
다만 여권 고위 관계자는 “원 장관의 경우 윤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차기 총리설이 돌고, 한 장관도 대통령이 정부 요직을 더 맡기겠다는 생각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두 사람도 당장 금배지를 다는 것보다는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48살에 본드의 딸 낳은 그녀…논란 부른 피범벅 출산현장 떴다 | 중앙일보
- '작전' 세력에 30억 투자한 임창정 "나도 피해자, 1.8억 됐다" | 중앙일보
- 10주면 베트남어로 흥정까지 가능…삼성 '외생관'의 비밀 | 중앙일보
- 멧돼지 '무죄론' 터졌다…수백억 들여 잡고도 되레 감염 확산, 왜 | 중앙일보
- 노엘, 아빠 장제원 골프채 루머? “방문 부수고 들어온 적 있다” | 중앙일보
- 文은 무릎 인사, MB는 카트 탔다…尹∙바이든 케미 결정적 장면은 | 중앙일보
- "비트코인 1만개 봤다니까요"…390억 뜯겼다, 지옥이 시작됐다 | 중앙일보
- 집 4채 사고 빨래방도 차렸다…7년간 15억 빼돌린 경리의 수법 | 중앙일보
- '지구촌 한달살기' 46번한 부부…덥고 맥주 비싸도 이곳 갔다 | 중앙일보
- "내가 성폭행범이라고?"…챗GPT가 씌운 누명, 대책도 없다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