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길게 해도 되나" 목청 높였다…원희룡·한동훈 미묘한 경쟁

김다영 2023. 4. 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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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전세 사기 대책을 발표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주현 금융위원장, 박 의장,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 김성룡 기자


지난 23일 국회에서는 예정에 없던 장면이 연출됐다.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책을 놓고 국민의힘과 정부, 대통령실이 회의를 했는데 결과 브리핑에 관련 부처 장관이 모두 나선 것이다. 그간 당정 회의 후 수석대변인이 브리핑한 것과는 양상이 달랐다.

키는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잡았지만, 시선은 경쟁하듯 발언하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로 쏠렸다. 원 장관은 각종 질문에 손짓을 하며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매입임대 방안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뒤 야당을 향해 “국민 혈세로 피해자 보증금을 대납해준다”며 각을 세웠다.

그러자 한 장관도 뒤지지 않았다. 그는 “좀 길어도 되냐”며 양해를 구한 뒤, 야당 안에 대해 “국가가 피해자 손해를 떠안으라는 취지”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대책에 포함된 전세사기범 가중처벌 대책도 원래는 안건이 아니었지만 한 장관이 회의 중 관철했다고 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사회적 공분이 큰 전세사기 사건에 대해 두 장관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모습”이라며 “차기 주자 주도권 싸움을 놓고 미묘한 경쟁을 벌이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왼쪽)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7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제74주년 제헌절 경축식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상선 기자


이런 경쟁은 두 장관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로 경합을 벌이는 것과 무관치 않다. 차기 지도자 적합도를 묻는 국민리서치그룹·에이스리서치 여론조사(3월 11~13일)에서 한 장관은 16.4%였고, 원 장관은 5.6%였다. 여권 주자 중에는 한 장관이 1위였지만 원 장관도 지난해 12월 조사(3.3%)보다 큰 폭으로 오르며 상승세를 탔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두 사람이 더욱 주목받는 것은 이들이 윤석열 대통령과 가까운 친윤 주자라는 점 때문이다. 홍준표 대구시장, 오세훈 서울시장, 안철수 의원, 유승민 전 의원도 여권 차기 주자로 거론되지만, 당내에서는“주류인 원희룡·한동훈 장관이 스포트라이트를 더 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 나온다. 두 사람 모두 핵심 부처 장관인데다가 서울대를 나온 검사 출신 엘리트라는 점에 주목하는 이들도 많다.

이에 두 사람은 부처 현안을 진두지휘하며 성과 내기에 집중하고 있다. 원 장관은 지난 20일 이용객 포화 문제가 지적된 김포골드라인 열차를 직접 탔다. 시민들을 만나 고충을 들은 그는 버스전용차로 설치 및 전세버스 60여대 긴급 투입 등 대대적 조치를 꺼냈다.

지난 2월 2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추경호(가운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과 원희룡(오른쪽) 국토부 장관, 한동훈(왼쪽) 법무부 장관이 전세사기 대책 관련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선포한 ‘마약과의 전쟁’을 직접 지휘하고 있다. 지난 21일 당정협의회에서 한 장관은 “마약범죄에 대해서는 ‘악’ 소리가 나게 강하게 처벌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관련 정책을 비판하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을 향해서는 “마약 정치”라고 맹비난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원 장관은 지난 대선에서 선대위 정책본부장으로 짜임새 있는 정책을 만들었고 이후 국토부를 이끌면서 과단성 있는 정책으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며 “반면에 한 장관은 윤 대통령 핵심 측근으로 젊고 유능한 이미지로 황태자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어 두 사람의 미묘한 경쟁 구도가 점점 세질 것”이라고 했다.

원희룡(왼쪽) 국토교통부 장관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3월 2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5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당내에서는 내년 4월 치러질 22대 총선이 두 사람의 정치적 향배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원 장관이 최근 서울 동작구 노량진1동으로 이사하자 정치권에서는 ‘동작갑 출마설’까지 돌았다. 3선 의원 출신인 그가 수도권 선거를 끌어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않다. 다만 원 장관은 일단 출마설은 부인한 상태다.

아직 선출직 경험이 없는 한 장관의 경우에도 “당이 어려울 수 있는 수도권에 출마해 직접 선거를 끌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한 장관만 한 인지도를 가진 여권 주자가 많지 않은 데다가 야당과 선명하게 각을 세울 수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 때문이다.

다만 여권 고위 관계자는 “원 장관의 경우 윤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차기 총리설이 돌고, 한 장관도 대통령이 정부 요직을 더 맡기겠다는 생각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두 사람도 당장 금배지를 다는 것보다는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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