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 '무죄론' 터졌다…수백억 들여 잡고도 되레 감염 확산, 왜
2019년부터 대대적인 ‘멧돼지 포획 작전’이 벌어졌다. 한 마리당 20만~30만 원의 포상금도 걸렸다. 원인은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농작물 피해 때문에 유해조수로 분류되던 멧돼지가 전염병을 옮기는 매개 동물로 확인되면서 개체 수를 파격적으로 줄여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3년 여가 지나 멧돼지 개체 수는 절반 이상 줄었다. 그러나, ‘멧돼지 반감(半減)’을 놓고 일부 전문가들은 여러 문제점을 거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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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만~30만 원 포상금 걸고 대대적 포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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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도 감염 확산…“풍토병화 시간 문제”
문제는 이런 총력전에도 불구하고 ASF가 더 빠르게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초기에는 ASF가 DMZ 부근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지만, 바이러스가 백두대간을 따라 점차 남하하면서 충북과 경북 지역까지 ASF에 감염된 멧돼지 폐사체가 발견됐다.
돼지농가의 ASF 발생 건수도 최근 다시 늘어나는 추세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돼지농장 ASF 발생 건수는 2019년 14건에서 2020년 2건으로 줄었다가 21년 5건, 22년 7건으로 다시 늘었다. 올해에는 벌써 8건의 농장 감염이 발생했고, 이 중 5건이 경기 포천에 집중됐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ASF는 봄·가을철에 주로 발생했지만, 올해는 겨울철인 1월부터 농장 발생 사례가 보고되는 등 바이러스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번지고 있다. 야생동물질병관리원 관계자는 “올해 감염 농가가 발생한 포천과 철원의 경우 ASF에 감염된 멧돼지 폐사체가 발견된지 1년이 넘은 곳”이라며 “농가 감염과 멧돼지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멧돼지 외에도 다양한 감염 경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멧돼지 포획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얘기다. 돼지농가 중심으로 바이러스 방역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재홍 전 한국동물보건의료정책연구원장은 “이미 많은 야생 멧돼지가 감염된 상황에서 방역 대응을 잘못하면 ASF가 풍토병화 되는 건 시간 문제가 될 수 있다”며 “ASF 발생 농장에 대한 철저한 역학 조사를 통해 어떤 경로로 감염됐는지를 조사하고 이를 토대로 추가적인 방역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멧돼지 급감하면 생태계 질 떨어져”
국립생물자원관의 야생동물 실태조사(2022) 보고서에 따르면, 멧돼지는 외부 기생충 등을 제거하기 위해 진흙 목욕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몸통에 묻은 식물 종자들을 멀리 퍼트리기 때문에 산림 속에서 중요한 종자 산포자의 역할을 한다. 또, 땅을 파헤치는 습성으로 토양을 갈아엎어 딱딱한 땅을 부드럽게 하고 산소를 공급해 비옥하게 한다. 멧돼지 개체 수가 급감하면 자연 생태계의 질이 떨어지거나 고라니·노루 등의 경쟁 동물 개체 수가 증가할 수 있다.
방역을 위해 설치한 울타리가 다른 야생 동물의 이동을 방해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야생동물 전문가인 한상훈 박사는 “설악산 국립공원만 해도 좌우로 울타리가 3~4줄씩 가로질러서 쳐있어서 서식지가 단절됐고 동물 사이에서 근친교배 위험도 커졌다”며 “지역별로 울타리의 방역 효과를 재검토해서 필요가 없는 곳은 방치하지 않고 철거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결책인 백신은 상용화에 수년 이상 걸릴 수도
ASF 백신 개발이 근본적인 해결책이지만, 아직 전 세계적으로 백신 상용화에 성공한 사례는 없다. 야생동물질병관리원은 지난해 가능성 있는 백신 후보군을 선정해 현재 효능을 평가하고 있다. 야생동물질병관리원 관계자는 “각 백신 후보를 돼지에 접종해 생존하는지 확인하며 계속 생존하는 경우 병원성(독성)이 있는 바이러스를 접종해 얼마나 살아남는지를 평가한다”면서도 “상용화까지는 수년 이상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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