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전세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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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독특한 전세제도에 대해 오래전 취재원들에게 들었던 몇 가지 말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설령 시장(市場)이 전세를 버리더라도 정부는 버리지 말아야 한다. 서민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제도니까."
조선시대 후반부터 이어져온 전세제도가 21세기 들어 위기를 맞을 때마다 전세의 운명을 비관하는 예측이 나오곤 했다.
이렇게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나 정부의 무리한 정책에 위기를 맞곤 했던 전세제도가 이번엔 세입자의 기피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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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독특한 전세제도에 대해 오래전 취재원들에게 들었던 몇 가지 말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어떤 이는 전세를 ‘바겐세일’이라 했고, 다른 이는 ‘사다리’라고 했다. 주택 임대차 시장에서 전세만큼 세입자에게 값싼 상품이 없으며, 잘사는 동네와 못 사는 동네의 거리를 좁혀주는 역할로 전세만한 것이 없다는 뜻이었다. 또 다른 이는 말했다. “설령 시장(市場)이 전세를 버리더라도 정부는 버리지 말아야 한다. 서민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제도니까.”
조선시대 후반부터 이어져온 전세제도가 21세기 들어 위기를 맞을 때마다 전세의 운명을 비관하는 예측이 나오곤 했다. 처음은 2011년 ‘반전세’란 말이 등장했을 때였지 싶다. 부동산 침체기에 집값 상승을 기대할 수 없던 집주인들이 월세 수입에 눈을 돌리면서 전세가 귀해지자 이러다 결국 소멸할 거라고 전망하는 이들이 많았다. 2014년에는 사상 최장인 76주 연속 전셋값이 오르며 전국의 월세 가구 비율이 전세 가구를 처음 앞지를 만큼 전세의 월세화가 가열돼 비관론을 부채질했다. 2020년 재등장한 전세 소멸론은 조금 달랐는데, 정부의 징벌적 다주택 정책과 임대차 3법으로 전세 물량이 급감하는 통에 ‘월세시대’가 성큼 다가오는 듯했다.
이렇게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나 정부의 무리한 정책에 위기를 맞곤 했던 전세제도가 이번엔 세입자의 기피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올해 들어 서울 빌라의 전세 거래량은 작년보다 30% 이상 줄었고, 부동산에는 전세 세입자의 월세 전환 문의가 잇따른다고 한다. 생계 밑천을 앗아가는 전세사기의 피해가 워낙 광범위해서 서민에게 유리한 제도를 서민들이 기피하게 된 것이다. 한국인의 자생적 주거복지 제도가 시장도 정부도 아닌 사기꾼에 의해 위기를 맞았다. 가처분소득이 많지 않은 이들의 집 문제를 해결해주며 오랜 세월 힘이 돼 온 제도다. 피해자 구제 못지않게 전세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시급해졌다. 설령 시장이 버리더라도 정부는 이 제도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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