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편의점에 ‘냉이 도시락’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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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야끼 오니기리'라는 음식이 있다.
어느 편의점 회사에서 도시락을 개발하는 담당자를 만났을 때도 그랬다.
"화려함, 푸짐함, 다양성에 있어 한국 편의점 도시락은 일본 편의점을 능가한다." 어느 매체에 이런 내용의 에세이를 썼더니 인터넷에 비난 댓글이 쏟아졌다.
도시락 자체는 일본이 발달했지만, '편의점 도시락'에만 한정한다면 한국이 상당히 앞선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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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야끼 오니기리’라는 음식이 있다. 오니기리는 우리말로 주먹밥, 야끼는 굽는다는 뜻이니, 조합하자면 ‘구운 주먹밥’ 되시겠다. 특별한 기술을 요하는 요리는 아니다. 이름 그대로 주먹밥을 팬에 구웠을 뿐이다. 고소한 누룽지 맛이 난다. 버터냐 식용유냐, 얼마나 구웠냐 등에 따라 풍미의 차이가 있다. 궁금한 분은 집에서 한 번 만들어보시라.
편의점 본사에서 삼각김밥 개발을 담당하는 분에게 우리나라 편의점엔 왜 구운 주먹밥이 없는 거냐고 이유를 물었다. 그런데 웬걸. 몇 년 전에 연구한 적이 있단다. 하지만 상품화엔 실패했다는데, 주먹밥을 굽고 열을 식힌 다음 냉장 유통을 해서 그걸 다시 전자레인지에 돌렸을 때 바삭한 식감이 되살아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냉장 진열’과 ‘전자레인지’ 때문에 상품 개발에 어려움이 많은데, 차갑게 식은 것을 다시 데웠을 때 원래 맛이 되살아나도록 하는 것이 개발자들의 큰 애로사항이라고 한다. 개발자의 ‘역할’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삼각김밥에 대한 여러 귀찮은 질문에 본사 담당자는 기술적 설명을 곁들인 답변을 꼬박꼬박 적어 보내왔다. 일개 편의점주의 질문에 이토록 정성스러운 답변이라니, 감동할 수밖에. 우리가 ‘왜 이렇게밖에 만들지 못할까’라고 쉽게 단정하는 상품에 사실은 개발상 여러 난제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됐다.
어느 편의점 회사에서 도시락을 개발하는 담당자를 만났을 때도 그랬다. 요즘 냉이가 제철인데 왜 냉이를 활용한 도시락은 없는 거냐고 물으니, 비빔밥에는 들어갈 수 있지만 일반 도시락엔 들어가기 어려운 이유를 설명했다. 그밖에 이런저런 반찬에 대해서도 그는 거침없는 답변을 이어갔다. 다른 반찬의 식감이나 냄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반찬, 냉장 온도를 준수하지 않으면 상했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는 반찬, 배송과 진열 과정에 도시락이 기울어지면 전체를 망가뜨릴 수 있는 반찬, 계절적 특성이 뚜렷한 재료라서 안정적 수급에 문제가 있는 반찬…. 도시락 하나를 만드는데도 이렇게 많은 연구와 노력, 시행착오를 거치는구나. 절로 숙연해졌다.
이런 에피소드도 있었다.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안 되는 반찬이라서 용기를 따로 만들고 “반드시 분리해 돌려주세요”라는 큼지막한 안내문까지 포장지에 붙여놨는데 그걸 함께 돌리다가 문제가 발생해 클레임이 쏟아졌다는 것이다. 분명 고객의 잘못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제조회사나 판매자에게 비난이 쏟아지기 마련. “앞으로는 그런 상품을 개발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는 개발자의 회고에 씁쓸한 웃음을 주고받았다. 고객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까지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이 개발자의 몫이다.
“화려함, 푸짐함, 다양성에 있어 한국 편의점 도시락은 일본 편의점을 능가한다.” 어느 매체에 이런 내용의 에세이를 썼더니 인터넷에 비난 댓글이 쏟아졌다. 일본 도시락이 훨씬 맛있다는 것이다. 맛은 주관적 영역이라 그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는데 왜 엉뚱한 반응일까 의아했다. 도시락 자체는 일본이 발달했지만, ‘편의점 도시락’에만 한정한다면 한국이 상당히 앞선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건 ‘예닐곱 가지 반찬쯤 돼야 대접받는 느낌’이라는 한국인의 독특한 식습관이 만든 결과로, 개발자들의 숱한 땀방울의 흔적이 배어 있다.
무엇과 무엇을 섞으면 왜 안 되는 것인지. 흔히 ‘현장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은 그런 것들을 술술 말한다. 시간과 경험이 만든 힘이다. 그것을 코웃음 치며 무시하는 사람도 있지만, 다른 이의 전문적 영역을 무시하는 사람치고 자기 일에 뛰어난 사람도 흔치 않다. 경험자는 경험자를 알아보고, 전문가는 전문가를 존중하는 법이다. 경험은 쉽게 살 수 없는 재산이다.
봉달호(에세이스트·편의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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