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네가 지난 겨울에 한 일을 안다 [서승욱의 시시각각]
더불어돈봉투당 쩐당대회 엄정수사. 얼마 전 서울 강남의 성수대교 사거리를 지나다 한 중학교 앞에 걸린 현수막을 봤다. 강렬한 조롱의 언어로 민주당의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파문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현수막의 출처는 국민의힘 강남갑 당원협의회, 지난 3월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에 선출된 태영호 의원의 사무실이다. 태 의원은 요즘 대선후보급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대한민국을 연거푸 뒤흔든 대형 말폭탄 사고들 때문이다. 전당대회 경선 과정에 나온 "4·3은 김일성의 지시로 일어난 사건"이 서막이었다. "한·일 관계에 대한 일본의 화답 징표"란 일본 외교청서 평가, "쓰레기(Junk) 돈(Money) 성(Sex) 민주당. 역시 JMS 민주당" 게시글에 이어 "김구 선생이 북한의 통일전선전술에 이용당했다"는 발언이 클라이맥스를 찍었다. 징계 위기에 몰린 그가 상대 정당에 손가락질한 셈이니 당원협의회의 '더불어돈봉투당' 현수막에서도 좀처럼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태 의원은 거침이 없는 스타일이다. 한국에 온 지 고작 7년이지만 국내외 민감한 이슈에 누구보다 더 강한 확신을 갖고 말한다. 야당에 대한 비판 역시 그 누구보다 혹독하다. 상대를 코뿔소처럼 몰아붙여야 자기 진영에서 인정받는다는 한국 정치의 생리를 속성으로 체득한 느낌이다. 중도층이 듣기엔 고역인 4·3 발언도 극렬 보수층엔 청량한 사이다가 되는 현실이 결국 그를 웃게 했다. 4·3 발언 파문과 불리한 판세 예상을 비웃듯 100% 당원들만 참여한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에 선출됐다. 한동안 자숙할 것이란 전망을 뒤엎고 "역사 문제는 내 소신"이라며 24일 당 회의에 당당히 컴백한 것도 '민심보다는 어차피 당심'이란 판단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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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잇따른 설화에 전광훈 소용돌이
당원 100% 전대 룰이 낳은 비극
여당의 잔인한 봄, 내년엔 어떨까
」
'친윤 순혈주의'가 목적이었다면 지난해 12월 여당 지도부가 감행한 당원 100%로의 룰 변경은 절묘한 한 수였다. 당시 그들은 "소극적·일시적 행위인 여론조사는 자발적·적극적 행위인 투표를 대체할 수 없다"는 자기 최면과 정신 승리 속에 '국민 여론조사 30% 반영'이란 룰을 18년 만에 지워버렸다. 그 결과는 불순물이 전혀 섞이지 않은 순도 100%의 친윤계 지도부였다. 동료 의원들의 돌팔매질에 쓰러진 쟁쟁한 라이벌들을 제치고 김기현 대표는 과반 득표율로 승부를 1차에서 끝냈다. 최고위원 자리도 모두 같은 편 차지였다. 특히 TV에서 보수 독설가로 활약했던 이들이 열혈 당원들의 화끈한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민심의 견제란 최소한의 제동장치를 외면했던 전당대회는 곧바로 심각한 후유증에 직면했다. 면역력을 상실한 생태계처럼 당 지도부는 애초에 긴장감 제로였다. 초록동색의 역대급 라인업은 역대급 사고를 쳤다. 공포의 KT(김재원·태영호) 라인에 "밥 한 공기 비우기"란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조수진 최고위원이 가세하며 당 전체가 골병을 앓았다. 여기에 "국민의힘은 내 통제를 받아야 한다"며 전광훈 목사까지 끼어들었다. 과거 "전광훈은 이사야 같은 선지자"라고 칭송했던 김 대표가 전당대회 때 전 목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룰 변경 전 국민 여론조사가 지탱했던 전당대회 민심 30%의 공간에 아스팔트 우파들이 파고들어 숟가락을 얹은 꼴이다. 태 의원이 "난 애먼 곳(전 목사)에 도움을 구걸하지 않았다"고 김 대표를 들이받으며 당 내부는 X묻은 이와 겨 묻은 이가 서로 멱살을 잡는 난장판으로 전락했다. 일부 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이재명 리스크와 돈봉투 파문에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는 민주당에도 뒤져 있다.
잔인한 집권여당의 4월은 지난해 겨울 전당대회 룰 변경 때 이미 씨앗이 뿌려졌다. 앞으로도 묻지마 지지층의 눈치만 살핀다면 잔인한 시간은 더 길어질 것이다. 과감한 쇄신과 징계로 거듭나지 않는다면 총선이 치러질 내년 4월이 올 4월보다 더 잔인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총선은 대통령 혼자서 치르는 게 아니다.
서승욱 논설위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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