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집행정지 제도 취지 흔드는 건보법 개정안

2023. 4. 26.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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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섭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국행정법학회 회장

행정소송은 위법한 행정처분으로 피해를 본 국민의 권리를 구제하기 위한 절차다. 그런데 판결 확정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당사자인 국민은 행정소송과 별도로 집행정지를 신청해 행정처분의 효력이나 집행을 멈추는 일종의 임시 구제를 받을 수 있게 돼 있다.

최근 집행정지 제도와 관련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제101조의 2)이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 상정돼 있다. 해당 개정안은 의약품 제조·판매자가 약가 인하 같은 행정처분에 대해 행정심판 청구나 행정소송을 하면서 집행정지를 신청하는 경우를 대상으로 한다. 집행정지가 법원에서 받아들여진 뒤 소송에서 질 경우 집행정지 기간 중 내리지 않은 약가 인하 부분을 손해로 보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환수·환급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개정안에 대해 법무부는 ‘잠정 절차(집행정지)를 본안소송과 구분하는 소송법 체계에 반하는 조항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법원행정처도 “본안소송에서 패소 판결이 나오더라도 처분의 효력이 집행정지 결정 당시로 소급해 부활하지 않는다”면서 집행정지 제도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 역시 ‘개정안이 국민 권익을 구제하는 취지로 만들어진 집행정지 제도를 무력화한다’는 의견을 국회 법사위원회에 제시했다. 법조계의 주축을 이루는 핵심 기관들이 모두 반대 입장인 셈이다.

「 본안소송서 지면 약가 소급환수
행정소송 체계 훼손할 가능성
입법목적 좋아도 교각살우 우려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물론 야당의 개정안은 “건강보험 재정의 악화를 해소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현행법으로는 법원이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이면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고가의 약값이 건강보험재정에서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이런 야당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회가 제약회사와 보건복지 당국의 균형추 역할을 하기보다 행정기관에 일방적으로 치우친 정책을 법제화하려는 것은 문제다. 만약 약가 인하 고시와 관련된 개정안을 야당이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여 통과시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행정청의 위법한 처분에 대한 구제책인 행정소송 제기와 이에 따른 집행정지 신청이 위축될 우려가 있다. 이는 재판을 통한 국민의 권리 보호를 침해할 위험성으로 이어진다.

어떤 제도를 바꾸려면 그 제도가 왜 만들어졌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현행 행정소송법은 ‘행정소송의 제기가 처분의 효력이나 집행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원칙(집행부정지 원칙)을 택하고 있다. 다만 회복할 수 없거나 예측하기 어려운 국민의 손해를 예방하기 위해 예외적으로 법원을 통한 집행정지 수단을 마련해 놨다. 이는 사익 보호와 공익 추구의 균형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집행정지는 본안 행정소송의 부수적 제도이지만, 엄연히 본안 소송과는 독립적이다. 설사 본안 소송에서 기각되거나 패소하더라도 집행정지에 직접 영향을 주는 건 아니다. 따라서 본안 패소를 이유로 집행정지 기간 정지됐던 약가 인하분을 소급해 환수하는 것은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결과가 된다.

따라서 개정안과 같은 입법 목적을 달성하려면 행정소송법에 약가 인하만이 아니라 과세 처분이나 금전 급부를 명하는 처분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야당 개정안과 같이 특정 처분만 제도적으로 규율하는 것은 입법의 형평성과 체계의 정합성에 어긋난다. 더구나 행정소송법상 집행정지는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해 긴급한 필요가 있고, 본안에서 패소할 것이 명백하지 않거나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줄 우려가 없을 때 한해 허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보건복지부 장관이 행정소송 당사자로서 적극적으로 주장해 다툴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현행 행정소송법 체계에 비춰 볼 때 국민건강보험법의 영역에서만 집행정지에 관한 법리와 어긋난 규율을 하는 것은 자칫 교각살우(矯角殺牛)를 범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개정안의 입법 목적을 달성하려면 차라리 행정소송법을 개정해 독일의 입법 사례처럼 공과금 및 공적 비용 청구의 경우에는 집행정지의 예외 사유로 규정하는 것이 낫다. 그래야 법체계의 관점에서 무리가 없을 것이고 입법의 형평성 문제도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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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섭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국행정법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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