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86세대 퇴장 예감
주사파 활동가였던 민경우 대안연대 상임대표는 86세대 사이 끈끈함의 심리학적 기원을 『86세대 민주주의』에서 설명한 적이 있다. “(운동권) 동료들과 투쟁현장에서 느끼는 영적인 느낌”이 있다며 주사파는 기독교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86세대 일부는 동문회나 송년회, 결혼식장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 같은 노래를 부르며 청년 시절을 집단적으로 회상하며 우정을 나눈다고 한다. 민 대표는 이를 “일종의 제사 행위”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86세대는) 1990, 2000년대를 1980년대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정치권에서 그런 86세대의 끈끈함이 자주 목격된다.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이 86세대 출신 송영길 전 대표를 향하자 그를 감싼 건 한때 86세대 기수였던 김민석 정책위의장이었다. “(송 전 대표가) 물욕이 적은 사람임을 보증한다”고 했다. ‘조국 사태’ ‘안희정 사건’ 때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진보세력이라고 자칭하는 같은 세대들이 그들을 옹호했다. 86세대는 서로 방어막을 쳐줄 네트워크를 갖고 있었다.
사실 86세대가 1990년대부터 권력을 형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런 네트워크가 핵심이었다.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86세대가 시민사회를 기반으로 기업, 국가 등을 포괄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권력의 중심으로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광범위한 그룹의 ‘문해 시민층’이 유사한 집합적·문화적 정체성을 가지고 조직화된 사례는 역사적으로 드물다.”(『불평등의 세대』) 네트워크의 힘은 생명력을 의미하기도 했다. ‘2선 후퇴론’의 손가락질 속에서도 그들은 오래 리더 자리를 뺏기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러나 ‘살아남은 자들의 어깨동무’도 이젠 헐거워지는 것처럼 보인다. 송 전 대표의 ‘적은 물욕’을 보증한다던 김 의장은 불법정치자금 7억2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2010년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추징금 7억2000만원 중 약 6억원을 2020년 총선 때까지도 납부하지 않았다. 파산한 사람이 연대보증인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산업화 세대가 물리적 나이 때문에 퇴장했다면, 86세대로 표현되는 민주화 세대는 도덕적 파산 때문에 나이보다 빠르게 역사의 뒤쪽으로 밀려나는 느낌이 든다.
윤성민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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