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섬은 가라앉는다” 사이바이섬 원주민의 편지 [이슈&탐사]

이경원,이택현,정진영,김지훈 2023. 4. 26.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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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멸종위기종 인간] <2> 우리의 섬은 가라앉는다
토러스해협 저지대 섬인 ‘사이바이’의 원주민 파바이 파바이(왼쪽)과 폴 카바이(오른쪽). 이들을 포함한 사이바이 원주민들은 호주 연방법원에 "호주 정부가 기후위기 대응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아 원주민들의 삶과 전통이 파괴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기후위기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섬이 바다에 잠기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라타 펀드' 제공(photo credit: Talei Elu)


“제가 사는 곳은 ‘사이바이’라는 섬입니다. 우리의 섬들은 바다에 잠기고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 구성원들은 앞으로 어떤 계획을 세워야 할지도, 우리 섬과 문화가 남게 될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큰 화석연료 회사들이 대기를 오염시킬 때, 우리가 고통받는 건 불공평합니다. 우리는 그 일에 가장 적게 기여했으나 가장 많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피해자는 ‘글로벌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대륙과 파푸아뉴기니 사이 ‘토러스해협’에 위치한 저지대 섬인 사이바이의 원주민 지도자 폴 카바이는 국민일보에 이렇게 말했다. 그는 호주 정부의 온실가스 배출 감축 실패가 자신들의 섬 지역사회를 파괴하고 주민들을 이주하게끔 만들었다며 2021년 호주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에는 해수면의 상승, 홍수와 폭염 빈도 등의 자료를 제출했다. 소송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그라타 펀드’의 최고책임자 이사벨 라이네케는 국민일보에 “카바이는 법원이 정부에 온실가스 배출 감소를 명령, 지역사회가 피해를 입지 않게 되길 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호주 사법부는 “정부의 외면으로 기후위기가 심각해져 묘지마저 수몰되고 삶과 전통 모두가 파괴되고 있다”는 원주민들의 주장을 황당한 것으로만 듣진 않았다. 연방법원은 소송을 각하하지 않고 변론 절차로 나아갔다. 연방법원은 오는 6월 5일부터 토러스해협의 사이바이, 보이구, 바두섬을 현장검증키로 했다. 법원 관계자들이 섬의 피해를 직접 확인하고 구두 심리를 하는 절차다. 11월에는 기후 과학자들의 증언을 듣기로 했다. 원고들은 내년 상반기엔 판결이 선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앞서 유엔인권위원회는 호주 정부가 토러스해협 주민들을 적절하지 보호하지 못했고 그들의 권리를 침해한 책임이 있다고 밝혔었다. 라이네케는 “인권위의 결정과 호주 연방법원에서의 소송은 별개”라면서도 “모든 사람은 법정에서 그들의 권리를 변호할 권리가 있으며, 이것은 역사가 될 만한 훌륭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 소송의 또 다른 원고인 파바이 파바이는 국민일보에 “기후위기 문제는 너무 크고, 아무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대법원의 ‘우르헨다 판결’을 이끈 데니스 반 베르켈 우르헨다재단 변호사도 인터뷰에서 “오염의 주인공은 우리가 아는 부유한 나라들이고, 가장 큰 피해를 보는 나라들은 ‘글로벌 사우스’(제3세계 또는 개발도상국을 일컫는 말)”라고 말했다.

하와이주 교통부를 상대로 교통수단 온실가스 배출이 청소년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내용의 헌법소원을 제기한 하와이 청소년들. 하와이 환경법원은 지난 6일 정부 측의 소송 각하 요청을 기각하고 사건을 본안에 회부했다. 이로써 이 사건은 기후위기와 관련한 교통시스템 위헌 여부를 따지는 세계 최초 헌법소송 사례로 남게 됐다. '아워칠드런스트러스트' 제공(Photo by Robin Loznak)


사상 첫 ‘교통시스템’ 헌법소송

미 하와이주 대법원이 “우리 아이들의 생명이 위태롭다”는 판결을 내린 지난달 이후 하와이 하급심 법원에서는 작은 변화가 있었다. 하와이주 환경법원은 15세 토란 농부인 나바히네 후쿠미츠 등 10대 청소년 14명이 하와이주 교통부를 상대로 지난해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지난 6일 정부 측의 소송 각하 신청을 기각하고 사건을 본안에 회부키로 결정했다. 청소년들은 주 교통시스템이 온실가스 배출을 충분히 감축하지 못해 기본권이 침해됐다며 소송을 냈었다. 교통부는 “필요한 조치를 다 하고 있다” “법원이 판단할 일이 못 된다”고 맞섰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환경법원은 “원고들은 미성년자이고, 하와이 헌법에는 ‘현재와 미래세대의 이익을 위하여’라는 말이 있다”며 정부의 절차적 문제제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와이주 대법원이 지난달 13일 “미래세대의 생명이 위태롭다”는 판단을 내놓은 점도 본안 회부 결정에 한몫했다. 이에 따라 ‘나바히네 사건’은 정부의 교통시스템 관리 부실로 인한 대기오염, 그리고 그에 따른 미래세대 기본권 침해 여부를 놓고 벌어지는 세계 최초의 헌법재판이 됐다. 독일에서 속도 제한 정책의 부재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늘린다는 문제가 제기된 적은 있었지만, 전체 교통시스템을 권리 침해의 주체로 지적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비영리단체 ‘아워칠드런스트러스트’의 설립자이자 유명한 ‘줄리아나 사건’의 대리인인 줄리아 올슨 변호사는 “미국에서도,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본안 회부 결정은 앞으로 공개법정에서 증거가 제시되고, 젊은이와 기후 과학자들이 증언대에 서고, 판사가 그 증거와 증언들에 대한 판단을 내리게 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이 다른 나라에서도 ‘친환경적 교통 시스템’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는 일로 이어질 것이라고, 올슨 변호사는 예상했다.

위헌이 확인돼 나바히네 등 청소년들이 승소하면, 정부는 항공기‧선박의 단거리 이동을 전기화하고 자전거도로를 확충하는 등 교통 시스템 개선 계획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고법원인 하와이주 대법원이 최근 기본권 보호를 위해 허용 가능한 기후를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350ppm(현재 419ppm)’으로 제시한 점도 원고들에게 희망적이다. 국민일보가 “350ppm이라는 기준이 급진적인 건 아니냐”고 묻자, 올슨 변호사는 “지금 상황에서 초래될 혼돈과 파괴가 훨씬 급진적인 변화”라고 답했다. 그는 “우리가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미래세대 보호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급진적”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를 상대로 기후변화 소송을 제기한 네덜란드 시민들이 네덜란드 대법원의 공개변론이 개최된 2019년 5월 24일 대법원 밖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일부는 "원한다면 기후 보호가 가능하다!(HET KAN ALS JE HET WILT!)"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네덜란드 대법원은 2019년 12월 20일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고 시민들의 승소를 확정했다. 맨 앞줄 정장 차림으로 오른손을 들고 있는 사람이 우르헨다 사건 승소를 이끈 데니스 반 베르켈 변호사. 데니스 반 베르켈 제공


부정의를 다 상대할 순 없지만

기후변화 소송은 행동에 나서지 않는 정부·기업을 압박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독일 법원은 1만㎞ 밖 페루의 농부가 “독일 최대 전력회사 때문에 홍수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사건을 현장검증을 동원해 심리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스위스 여성노인단체가 “나이든 여성은 폭염에 큰 영향을 받는다”며 자국 정부를 제소한 사건을 대재판부(17명의 법관으로 구성된 가장 큰 재판부)에서 심리 중이다. 대재판부는 공개변론에서 스위스의 탄소예산 배분 원칙 등을 날카롭게 질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적 기후변화 소송의 폭증은 결국 행동에 나서지 않는 정부‧기업을 압박하는 강력한 수단이 법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송이 부정의의 전체를 다룰 순 없다. 베르켈 변호사는 “사법체계는 그 관할 내에 있는 국가의 이익만을 고려하도록 설계돼 있다”며 “오히려 기후위기에 가장 취약한 적도, 사하라 이남, 인도 주변 지역의 정의는 소송으로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유명한 '줄리아나 사건'의 대리인이자 비영리단체 '아워칠드런스트러스트' 설립자인 줄리아 올슨 변호사. 세계의 기후변화 소송들에서 활약하고 있다. '아워칠드런스트러스트' 제공


그는 “그럼에도 소송으로 기후위기가 각국의 어젠다가 되고 각자 국제적 책임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전체 문제가 나아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올슨 변호사는 “정부가 우리를 기후위기에서 벗어나게 할 때까지 현재 세대는 문제를 해결할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노력은 ‘시민으로서의 권리 행사’다.

이슈&탐사팀 이경원 이택현 정진영 김지훈 기자 neosarim@kmib.co.kr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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