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로 받은 좌절, 극복할 길은 오직 축구뿐”
“인도네시아 축구협회 관계자로부터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개최권을 잃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미리 전해 들었지만 믿지 않았어요. 개막이 채 두 달도 남지 않았는데, 설마 싶었지요. 그 ‘설마’가 현실이 되니까, 진짜 황당하더라고요. 3년 반 넘게 이 대회 하나만 보고 함께 달려온 선수들과 스태프의 얼굴, 그리고 우리가 함께 겪은 기억들이 뒤엉키면서 머릿속이 복잡했지요.”
지난 16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만난 신태용 인도네시아축구대표팀 감독은 2주 전 겪은 상황을 설명하다 또 한 번 ‘울컥’했다. 지난달 30일 FIFA는 인도네시아의 U-20 월드컵 개최 자격을 박탈했다. 다음 달 20일로 잡아 놓은 대회 개막을 불과 50여 일 앞둔 시점이었다. 유럽 예선을 거쳐 출전 자격을 거머쥔 이스라엘 선수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는 이스라엘과 역사적·종교적 이유로 적대 관계인 팔레스타인을 형제의 나라로 여긴다. 대회 개막이 가까워져 오면서 인도네시아 일각에서 “이스라엘 선수단의 입국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대규모 시위로 번졌다. 상황이 악화하자 FIFA가 ‘개최권 박탈’이라는 철퇴를 휘둘렀다. 동시에 개최국 인도네시아가 갖고 있던 본선 자동 출전권도 사라졌다. 인도네시아에서 성인축구대표팀과 U-23 대표팀, U-20 대표팀까지 함께 맡은 신 감독에겐 핵심 목표 중 하나가 갑작스럽게 사라진 셈이다.
지난 3년여 동안 신 감독은 인도네시아 U-20 대표팀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매진했다. 주축 선수들의 체력과 전술 수행 능력을 끌어올리는 한편,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포지션은 유럽에서 뛰는 인도네시아 혈통의 다문화 선수들을 일부 영입해 보강했다. 신 감독은 “대회가 정상적으로 열렸다면 조별리그 통과를 넘어 8강 진출까지도 바라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면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대회 취소 직후 ‘우린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울먹이는 제자들을 지켜보는 게 더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실의에 빠져 지내던 신 감독은 최근 심기일전을 다짐하며 다시 일어섰다. “나는 인도네시아 축구를 성장·발전시키기 위해 이곳에 온 사람”이라면서 “축구를 통해 받은 좌절과 실망감을 극복할 방법은 결국 축구뿐이다. 내겐 아직 U-23 대표팀과 A대표팀이 남아 있다”고 했다.
신 감독의 다음 목표는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이다. 23세 이하 선수들이 나서는 대회지만, 지난해 개최 예정이던 대회 일정이 코로나19로 인해 한 해 미뤄진 탓에 24세 이하까지 참가할 수 있다.
신 감독은 “인도네시아 대표팀을 맡은 이후 모든 연령대 대표팀을 영리하고 투지 넘치는 선수들 위주로 재편했다”면서 “A대표팀의 70%가 20대 초중반의 젊은 선수들이다. A대표팀 멤버 중 상당수가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만큼, 메달권 진입을 기대한다. 허풍이 아니라는 걸 결과로 보여주겠다”고 했다.
아시안게임을 마치면 내년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준비에 나선다. 인도네시아가 이 대회 본선에 나서는 건 공동개최국으로 자동 출전권을 얻은 지난 2007년 이후 17년 만이다. 총 4차례 본선 무대를 밟아 12경기에서 2승(2무8패)을 거둔 게 전부지만, 신 감독은 이번 대회에서 인도네시아의 결선 토너먼트 행(16강)을 기대하고 있다.
다음 달 11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아시안컵 본선 조 추첨식에 참석하는 신 감독은 “현장에서 위르겐 클린스만 한국 대표팀 감독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눌 것”이라면서 “우승 후보 한국과는 본선에서 만나지 않길 바라지만, 어느 단계에서든 대결을 해야 한다면 호락호락 물러서진 않겠다”며 활짝 웃었다.
■ ◇신태용은…
「 출생 : 1969년 4월11일 경북 영덕
체격 : 1m75㎝, 72㎏
선수 시절 포지션 : 미드필더
선수 소속팀 : 성남 일화-퀸즐랜드 로어
A매치 이력 : 23경기 3골
감독 소속팀 : 성남 일화-한국U-23대표팀-한국U-20대표팀-인도네시아대표팀
주요 이력 : K리그 최초 60-60(99골 68도움)클럽 가입, K리그 득점왕(1996), K리그 MVP(2001), K리그 명예의 전당(2023)
별명 : 그라운드의 여우(축구 지능이 뛰어나서), 난놈(실력과 운이 함께 하는 인물), 맥콜라리(맥콜+스콜라리)
」
자카르타(인도네시아)=송지훈 기자 song.ji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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