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AE “당신네 국민은 우리 국민” 교민 탄 버스 1174㎞ 호위
“죽었다 살아난 느낌입니다.”
25일 오후 4시쯤 공군 다목적 공중급유 수송기 KC-330 ‘시그너스’를 타고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에 안착한 수단 교민 반용우(52)씨는 이렇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반씨는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수송기를 보자마자 “‘살았다’ 이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반씨를 비롯한 교민 28명은 꽃다발을 들고 마중 나온 가족·친지의 얼굴을 마주하고 밝게 웃었다. ‘프라미스(Promise·약속)’로 불린 수단 교민 대피 작전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교민과 공관 직원, 고양이 2마리와 개 1마리까지 무사히 한국 땅을 밟았다.
당국의 과감한 결단과 우호적 외교관계, 군의 준비태세 등 3박자가 어우러진 결과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번 철수가 성공하면 다른 어떤 작전도 해낼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최고 난이도의 위기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외교 당국은 지난 15일 수단 군벌 간 유혈 충돌이 벌어지자 사태 장기화를 예견하고 철수를 먼저 고려했다. 작전 시점은 이슬람 금식 기간인 라마단이 끝난 뒤 사흘간의 명절 ‘이드 알피트르’(21~23일) 시기였다.
‘디데이(D-day)’는 23일, 그날을 넘기면 교전이 격해져 수도 하르툼을 떠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진다고 판단했다. 남궁환 주수단대사가 직접 방탄차를 타고 나선 끝에 22일 대피 인원 전원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다음은 탈출 경로였다. 하르툼 공항을 두고 정부군과 반군이 전투를 벌여 하늘길은 선택지에서 제외했다. 육로밖에 남지 않은 막막한 상황에서 아랍에미리트(UAE)·튀르키예·프랑스는 물론 유엔에서도 피란길을 함께하자는 제안이 왔다.
최종 선택지는 UAE였다. UAE는 현지 세력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정보 수준도 높아 한마디로 ‘믿을 만한 친구’였다. 정부는 UAE와 지속적으로 협의했다. 특히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아부다비 행정청장은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Your people are our people(당신네 국민은 우리 국민)”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교민들은 UAE 대사관으로 이동해 북동부 항구도시 포트수단행 버스에 올랐다. 하르툼을 떠난 지 33시간여 만에 포트수단에 도착했다. 안전을 위해 먼 길을 우회하며 무려 1174㎞를 내달렸다. 이 과정에서 UAE 대사관 측이 제공한 에스코트 차량이 대피 버스를 호위했다.
미리 도착해 있던 공군 수송기 C-130J ‘슈퍼 허큘리스’가 교민을 태우고 45분 만에 이륙해 24일 오후 11시8분(한국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 착륙했다.
이어 임무를 인계받은 KC-330이 25일 오전 2시54분 제다를 이륙해 오후 3시57분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약 75시간에 걸친 대장정이 막을 내리는 순간을 정부 주요 인사들이 맞이했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윤석열 대통령이 워싱턴행 기내에서 위성으로 화상회의를 주재하며 탈출 직전까지 상황을 지휘했다”며 “가슴 졸이며 성원해 주신 국민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근평·박현주·현일훈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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