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고요가 된 일상의 조각들

이경진 2023. 4. 2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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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희조는 일상에 녹아 삶의 동반자가 된 사물을 골똘히 바라보기로 했다.
‘제자리에 놓기’(2023)

Q : 이희조의 화폭에선 항상 따스한 햇빛이 느껴집니다. 당신만의 컬러 팔레트는 어디서 기인하는 걸까요

A : 형태와 표현방법은 주제에 맞게 선택하는 데 비해, 색채는 취향과 감각, 감정에 많이 좌우되는 편입니다. 주로 눈과 마음이 편해지는 색을 고릅니다. 가끔 계절에 영향받을 때도 있고요.

Q : 일상에 녹아 삶의 동반자로 역할을 하는 사물을 바라보고 탐구하는 작가의 관점이 참으로 골똘히 느껴지는 그림들입니다. 어떤 물음 혹은 관찰에서 탄생했나요

A :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있었어요. 이 질문이 지닌 보편성도 잘 알았죠. 나만의 답을 그림으로 풀어보고 싶었어요. 주로 일상에서 저와 함께하는 물건을 그리는데, 반복적인 행동이나 루틴이 저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이를 그려낸 방식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이 됩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점묘화처럼 수많은 점과 선으로 표현돼 있어요. 모든 순간을 점으로 치환한 것인데, 순간을 오롯이 느끼며 현재를 살자는 마음이 담긴 표현이에요.

‘익숙한 공간’(2023)

Q : 형태와 색채를 다듬고 세부 묘사를 없애고, 특정 부분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색감을 제한적으로 활용하고 형태를 단순화했어요

A : 구체적인 대상과 상황 묘사는 작가만의 경험으로 치부되기 쉽다고 생각했어요. 장식적인 색감은 배제하고 형태를 단순화해 관람자가 저마다 경험에 빗대 작품을 바라보게 하고 싶었어요. 작가와 작품의 관계는 별개로, 작품과 관람자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생겨나 그들만의 사물이자, 사람, 장소로 자리매김하면 좋겠어요.

Q : ‘일상의 조각들’ 시리즈가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A : 스스로 일상의 조각에 애정을 쏟기 시작했어요. 예를 들어, 제 그림엔 다이어리가 자주 등장해요. 오래전 친구에게 선물받은 다이어리인데 3년간의 대소사가 적혀 있죠. 3년간 손때 묻히며 사용한 다이어리는 세상 유일한 사물이 돼요. 이걸 느낀 후로 제 손길이 닿은 것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됐습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예요. 많은 가치를 돈으로 수치화할 수 있는 시대지만 우정을 쌓거나 사랑하는 것,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은 다른 이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고 그 자체로 의미 있잖아요. 존재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시간과 사람을 오롯이 느끼고 싶어요. 작업을 통해 저만의 일상 조각이 품은 의미가 구체화된 겁니다.

‘Morning Routine’(2022)

Q : 작은 화폭에 단순화된 일상을 담은 작업들을 관통하는 전제가 있다면

A : 우리는 수많은 조각으로 이뤄졌다는 것.

Q : 이희조의 내밀하고 사소한 일상 조각은

A : 아침의 침구 정리, 식사 후 비타민 섭취, 작업 중 마시는 커피, 외출할 때 챙기는 핸드크림, 수요일과 금요일에 하는 요가…. 하루 혹은 일주일을 지탱하는 다양한 조각이 있지요. 요즘은 새로운 시리즈에 관심을 쏟고 있어요. 입체물을 만드는 작업도 좋아해서 오브제를 제작하고 있고, 인간관계를 풀어내는 인물화도 작업 중이에요.

‘거실의 식탁’(2023)

Q : 영원한 영감이 되는 것

A : 영감은 주로 내면에서 얻어요. 진정 알고 싶은 것, 추구하는 것, 이슈에 대해 몸과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찬찬히 살펴보면 그림의 방향이 나오죠. 그런 다음 같은 고민을 풀어낸 책을 읽고 아이디어를 다듬어 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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