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퇴장" 고조된 비명계…박광온에 힘 실어 개편 주도할까
이원욱 "돈봉투, 386 정치인 도덕성 망가뜨린 사건"
당 일각서도 '86 반발' 부글…비명계 집결 시그널도
원내대표 선거전 유일 비명 '박광온' 수혜 여부 관심
최근 더불어민주당을 뒤덮은 '돈봉투 의혹'으로 당내에서 도덕성 논쟁이 들끓고 있다. 특히 의혹의 몸통으로 지목받은 송영길 전 대표를 옹호하는 86그룹(80년대 학번, 60년대생)에 대한 비판 여론이 대두하면서 비명계 의원들이 집결할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이번 원내대표 선거에서 비명계의 대표격으로 출마한 박광온 의원에게 힘이 실리면서 선거 국면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원욱 민주당 의원은 25일 SBS라디오 '정치쇼'에 출연해 '돈봉투 의혹'과 관련해 "이른바 386 정치인의 도덕성까지 망가뜨리는 아주 결정적 사건이다. 이것을 그냥 온정주의로 넘어갈 수 있겠느냐"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그는 "송영길 전 대표는 386 정치인, 운동권 출신 정치인 중 대표주자다. 운동권 정치인들은 그나마 도덕적으로 깨끗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있고, 민주당을 지지해 준 이유 중 하나였다"며 "그런데 운동권 출신 대표주자가 돈봉투를 뿌렸다고 하는 녹취가 나오면서 국민들이 바라보는 신뢰는 '이제는 운동권 출신들도 믿을 사람들이 없구나, 저것도 부패했구나, 기득권 집단들 맞구나’라고 하는 걸로 전락하고 있는 시기"라고 비판했다.
이 의원이 이같은 날선 비판을 내놓은 이유는 송 전 대표를 향한 86그룹 의원들의 옹호 발언 때문이다. 운동권 출신인 86그룹은 앞서 송 전 대표가 돈봉투 의혹에 대한 책임을 지고 탈당과 동시에 귀국하겠다는 의견을 내놨을 때 그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대표적인 86그룹 중 한 명인 김민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송 전 대표를 향해 "나와 마찬가지로 아직 집 없는 드문 동세대 정치인"이라며 "물욕이 적은 사람임은 보증한다"는 메시지를 냈다.
서영교 최고위원도 전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김기현 (국민의힘) 당대표가 민주당에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스스로를 되돌아보길 바라겠다. 김현아 (전) 의원이 고양시에서 공천을 미끼로 돈 봉투를 주고 갔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그리고 돈을 요구하는 내용이 녹음이 된 녹취가 있다고 한다"고 지적하며 송 전 대표를 옹호하고 여당에 반격을 가하는 발언을 내기도 했다.
이같은 '송영길 옹호 발언'에 대한 당내 비판 여론이 만만치 않다. 성치훈 민주당 정책위 부의장은 "(송 전 대표를 향한) 발언들이 대부분 국민 눈높이에는 하나도 맞지가 않다. 이견을 허용하지 않는 문화를 그들(586)이 만들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이상민 민주당 의원은 전날 CBS라디오 '뉴스쇼'에 출연해 "(돈봉투 사건은) 진실과 책임이 핵심인데 그것은 하나도 달라진 게 없고, 탈당했기 때문에 한숨을 돌린다고 한다면 꼬리 자르기 아니냐"며 "검찰 수사는 우리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수사기관의 입장에서 계속 수사를 할 것이지만 별개로 그 조직의 자체 조사는 해야 되는 것 아니냐. 해야 되는데 미리 포기하는 것은 지도부의 리더십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발언했다.
민주당과 함께 범야권으로 묶인 정의당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등장했다.
이은주 정의당 원내대표는 지난 24일 열린 상무집행위원회 회의에서 "이번 사태를 더욱 키운 것은 송 전 대표만이 아니다. 기자회견 직후 민주당 정치인들은 앞다퉈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큰 그릇이다' 등의 칭찬인지 격려인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쏟아냈다"며 "민주당 스스로 과연 이 비리 의혹을 엄격히 다루고 자정할 수 있을지조차 가늠하기 힘들다"고 사실상 86그룹을 겨냥한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당내에선 86그룹을 향한 실망감이 차기 원내대표 선거전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오는 28일 치러질 예정인 차기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전에 출사표를 던진 의원은 홍익표·김두관·박범계·박광온(기호순) 의원 등이다. 정치권에선 이미 이번 원내대표 선거전이 '당내 계파 싸움' 구도로 치러질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홍익표·김두관·박범계 의원은 친명계 색채를 내고 있는 반면, 박광온 의원만 홀로 비명계를 대표하는 주자로 나선 상황이다.
이번 원내대표 선거가 계파 대리전이 될 것이라는 조짐은 벌써부터 감지되고 있다. 실제로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원내대표 후보자 합동토론회'에서 김두관 의원은 경쟁 상대인 홍익표 의원을 향해 "이낙연 캠프에서 정책본부장을 하며 열심히 도왔고 최근 언론에서는 친명으로 분류했는데 정치인은 합당한 입장이 있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으냐"며 사실상 어느 계파에 속하는지를 따져물었다.
하지만 당내에선 이같은 계파 대리전적인 성격의 선거가 돈봉투 의혹과 맞물려 의외의 결과로 연결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특히 86그룹의 송 전 대표 옹호 발언들이 차기 총선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는 만큼 의외의 '비명' 결집효과를 낼 수 있단 분석에서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번 (돈봉투) 사태로 당내에서 느껴지는 차기 총선에 대한 위기감은 심상치 않다"며 "계파를 떠나서 이 정도로 당과 선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라면 86그룹에 대한 없던 반감도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당내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기 자신을 '친명'이라고 말하는 그룹과 뚜렷한 '비명'이라고 말하는 의원들보다 '그렇지 않다'고 하는 중립 성향 의원이 대다수"라며 "이번 사건에서 86그룹의 도덕성에 대해 실망한 사람들이 많은 만큼 중립 성향의 의원들이 어떻게 움직일지가 중요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비명계의 결집이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느냐 하는 데 의문도 나온다. 앞서 박지현 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해 86(그룹의) 용퇴를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81학번인 윤호중 당시 공동비대위원장과 고성을 내지르며 싸우다가 결국 용퇴했던 사례가 있는 만큼 실제 86그룹의 퇴진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에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너무 친명 색채가 뚜렷하다는 여론을 의식해 원내대표는 비명을 밀어주고자 했던 당 지도부의 기류가 오히려 이번 돈봉투 사태를 거치면서 굳건한 친명 체제로 굳혀질 가능성도 있다"며 "그런 만큼 비명계가 뭉칠 명분은 충분하지만 이들이 과연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는 또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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