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만에 200만…애플페이 ‘특수’ 싱글벙글 정태영 현대카드·커머셜 부회장 [CEO 라운지]
정태영 현대카드·커머셜 부회장(63)이 지난 3월 애플페이 서비스 시작 기념행사에서 한 말이다. ‘대단히 위대한’이라는 표현을 썼을 정도로 정 부회장은 이 프로젝트에 공을 들였다.
애플페이는 아이폰에 신용카드만 연동하면 전 세계 어디서나 전용 단말기가 있는 곳에서 물건을 사고, 유무형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결제 시스템이다. 2000년대 말 아이폰이 국내에 보급됐으니 애플페이 역시 자연스레 국내 시장에 들어올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현실은 달랐다. 현대카드가 무려 6년 전부터 애플페이 도입을 추진해왔으나 애플 본사가 한국 시장을 서비스 우선순위에 두지 않아 쉽지 않았다. 게다가 금융감독당국은 현대카드에 독점권을 주는 것 자체를 문제 삼았다. 따라서 애플 본사는 물론 감독당국과 기나긴 조율 과정을 거친 끝에야 비로소 한국 서비스가 시작됐다. 참고로 애플페이는 모든 신용카드 회사와 원칙적으로는 연동 가능하다. 다만 협상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현대카드가 제일 먼저 연동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게 됐다.
직접 애플 본사를 찾아가 담당 임원과 담판을 낸 이가 바로 정 부회장이다. 소셜미디어(SNS) 스타 CEO답게 애플과의 협력을 암시하는 사과 이미지를 자주 올리던 그는 애플페이 서비스 시작 후 3주 만에 또 글을 올려 주목을 받았다.
‘가입 토큰 수는 200만 돌파, 가입자의 이용률은 60%, NFC 단말기는 품귀 현상. NFC 단말기 보급이 아직 열세라지만 가입과 이용률은 간편페이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 중’이라는 내용이다. 참고로 토큰이란 신용카드를 애플페이 기기에 등록할 때 카드 정보를 암호화해 발행하는 번호다. 예를 들어 아이폰 소유자가 애플워치 등 다른 결제 장치를 갖게 되면 각각 한 개의 토큰으로 분류한다. 가입 토크 수 200만개 돌파는 애플페이 등록 기기 수가 200만개를 넘겼다는 말이다.
MZ세대는 물론 외국인도 반기는 분위기다. 120만 폴로어를 보유한 틱톡커 맥스 에이브라함 씨(미국인)는 “한국에서 한식, 한국 문화를 알리는 일을 하고 있는데 외국인으로서 아쉬운 점은 결제”였다며 “이제 편리하게 한국에서도 다양한 제품 구매, 심지어 배민과 같은 배달 앱까지 애플페이를 통해 이용이 가능해졌다는 점을 한국에 들어오는 외국인에게 적극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일찌감치 디지털 경영 진두지휘
정태영 부회장은 애플페이뿐 아니라 이미 다양한 디지털, AI(인공지능) 강화에 몰두해왔다. 2015년 ‘디지털 현대카드’를 선언한 후 6000억원에 달하는 투자를 단행했다. 마이크로소프트·구글·IBM·페이스북 등 글로벌 IT 기업 우수 인재를 공격적으로 영입하는 데도 공을 들였다.
지속적인 디지털 투자는 서서히 결실을 보이기 시작했다. 디지털 기반 신용카드 가입 시스템 구축을 업계에서 가장 먼저 한 데 이어 직접 개발한 IT 시스템을 해외에 수출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현대카드 신용카드 IT 시스템 ‘H-ALIS’를 일본 내 신용카드 신규 사업자에 판매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 지난해 하반기부터 뉴욕타임스가 현대카드의 AI 기반 초개인화 마케팅 기술에 주목, 현대카드 자사 고객 대상 1만 뉴욕타임스 디지털 구독자 확보에 관련 기술을 활용하며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있다.
데이터 사이언스 기반 PLCC(상업자 전용 신용카드) 사업도 순항 중이다. 현대카드는 네이버, 대한항공, 무신사, 배민 등 유통, 모빌리티, 패션, 엔터테인먼트 분야 대표 브랜드와 세계 최초로 데이터 사이언스 기반 PLCC 파트너십을 맺었다. 차별화된 이들 전용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록인(일종의 단골 고객 확보) 효과를 노리는 방식이다.
그 덕에 정 부회장은 매경이코노미 올해 발표한 금융 CEO 베스트50 핀테크 부문 1위에 올랐다.
‘브랜드 전략 = 정태영’이라는 업계 평판도 스스로 개척했다.
그는 처음부터 현대카드에 몸담지는 않았다. 1987년 현대종합상사에 입사했다. 현대정공(現 현대모비스)으로 옮긴 후에는 일본 동경, 미국 샌프란시스코지사장을 지냈다. 미주, 멕시코 법인을 이끌던 1996~2000년에는 ERP(전사적 자원 관리) 도입을 통한 생산 효율화에 성공해 해당 법인을 처음으로 흑자전환시켰다. 이후 현대모비스 기획재정본부장, 기아 구매본부장 등 현대차그룹의 주요 보직을 거쳐 2003년 현대카드를 맡았다.
이후 현대카드는 눈부신 성장을 했다.
정태영 부회장은 카드 사업에 브랜딩과 마케팅을 적극 도입해 현대카드를 ‘국내에서 가장 브랜딩 잘하는 기업’으로 위상을 격상시켰다. 또 현대카드만의 화법으로 유명 모델 없이도 완성도 높은 광고를 선보여 광고계에도 이정표를 남겼다. 세계 최초 ‘디자인 라이브러리’를 비롯, ‘뮤직, 아트, 쿠킹 라이브러리’와 ‘스티비 원더’ ‘콜드플레이’ 등 세계 최정상급 아티스트를 무대에 세운 ‘슈퍼콘서트 시리즈’ 역시 그의 작품이다. 그는 신용카드에 프리미엄 문화 혜택을 결합하는 차별화한 시도로 국내 신용카드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노력 끝에 회사 합류 시점 업계 최하위였던 현대카드를 1000만 고객이 이용하는 금융테크 기업으로 만들었다. 더불어 현대차그룹 유일한 상용차 캡티브 금융사인 현대커머셜을 대한민국 산업 금융 시장의 대표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등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알려진 위기’ 대응에 주력
물론 정 부회장에게도 숙제는 꽤 있다.
대외적으로는 정부 주도 카드 수수료 책정 시스템, 빅테크 대비 불평등한 각종 규제 등으로 자율성이 떨어져 신용카드 사업에서 차별화하기 쉽지 않다.
수익성 면에서도 위기감을 가져야 되는 것 아니냐는 외부 시각도 있다. 매년 2위권으로 치부되던 현대카드는 당기순이익 기준 지난해 롯데카드에 밀려 5위로 밀려났다. 롯데카드는 2780억원, 현대카드는 2540억원을 기록했다. 이를 두고 한편에서는 정 부회장이 밀어붙이고 있는 PLCC 사업이 실익이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물론 현대카드 측은 ‘참전용사론(論)’을 꺼내며 응수한다. 정 부회장이 2003년 대표이사 취임 당시는 신용카드 대란이 극심했던 때다. 이를 직접 겪어본 유일한 현장형 CEO다 보니 대외 환경 악화를 염두에 두고 대손충당금을 보수적으로 쌓은 탓에 순익이 줄어든 것처럼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실례로 지난해 말 기준 현대카드의 고정이하여신비율은 0.69%로 전년(0.88%) 대비 0.19%포인트 개선됐다. 연체율은 1.12%에서 1.09%로, 손실위험도가중채권 비율도 0.61%에서 0.53%로 좋아졌다.
정 부회장은 “작금의 대외 환경은 ‘알려진 위기’라는 점에서 예전과 다르다. 위기 뒤에는 반드시 기회가 찾아오는 만큼 이 시기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겠다. 2023년은 화려함보다는 기초와 본질에 충실하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6호 (2023.04.26~2023.05.0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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