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가 낳은 '소설계의 풍운아' 정을병 다시 조명해야"

남해시대 한중봉 2023. 4. 25. 18:5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회 부조리 풍자, 30년 전 발언으로 고향과 '앙금'... 남해에서도 '문학인으로 다시 보자' 움직임

[남해시대 한중봉]

ⓒ 남해시대
고 정을병 선생은 1934년 경남 남해군 이동면 금평마을에서 태어났다. 성남초등학교와 남수중, 남해농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했고 미국 하와이대학에서 수학한 바 있다.

언론기사 등에 따르면 <국도신문> 기자, 동서문학 주간, 한국펜클럽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1963년 현대문학을 통해 '부도', '반모랄' 등으로 추천받고 문단에 등단했다. <개새끼들>(1966), <아테나이의 비명>(1968), <유의촌>(1971), <피임사회>(1973), <까토의 자유>(1976), <인동덩쿨>(1980), <역사가 움트는 소리>(1980), <피임사회>(1987), <영혼의 선택>(1992), <마지막 날의 한강>(1994), <아테나이의 비명>(1994), <꽃과 그늘>(2001), <우리는 바드리나트로 간다>(2004), <수행>(2009) 등을 비롯한 많은 창작집을 발간했다.

정을병은 우리 소설사의 '고발문학'의 대가로 평가받기도 했다. 소설 <개새끼들>, <유의촌> 등으로 당대의 구조적 모순과 역사·사회적 자아의 속물적 욕망을 예각적 어조로 질타하고 <아테나이의 비명>, <까토의 자유> 등으로 인류사 보편과제인 자유와 평등문제를 치열하게 추구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유신 독재에 항거해서 투옥됐을 때의 이야기를 다룬 <인동덩쿨>(1980), 한 작가가 공안당국에 끌려갔다 나온 후 무력한 삶을 살다가 화훼에서 생명력을 발견하는 과정을 다룬 <일어서는 풀>(1984) 등을 발표했다. 그는 거침없는 태도와 넘쳐흐르는 활력으로 사회의 제반 부조리를 비판·풍자했다.

또한 치밀하게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소설 창작에 임해 다산의 작가들이 지니기 쉬운 작품의 밀도 문제에 있어서도 면밀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대문학상, 한국일보 창작문학상, 서울시문화상, 대한민국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03년에는 대한민국정부로부터 민주화운동가로 인정받았다. 2009년 2월 3년 동안 간암으로 투병하다 향년 76세로 사망했다.

30년 전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정을병 선생은 1993년 <월간중앙> 5월호 기고문에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남해를 교두보로 삼아 활동했으며 다수 부녀자를 겁탈한 기록이 있다. 남해군민 중에는 이와 같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후손도 있을 것"이라는 요지의 글을 게재했다.

당시 이에 울분을 느낀 군민들은 망언규탄군민대책위를 꾸려 정을병 화형식까지 벌이며 분노를 표출했다.

이와 관련 정을병과 교류가 있었던 창선 출신 양왕용 부산대 명예교수는 2015년 <남해신문> 기고를 통해 "남해인들과 임진왜란의 관련성 운운은 사실 정 소설가의 역사 인식의 잘못에서 왔으며 오늘날의 남해인들의 조상 거의 대부분은 임란 이후에 남해에 들어온 사람들의 후예다. 따라서 오늘날의 우리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인터뷰의 방점은 남해사람들의 지나친 물질과 권력 지향적인 현실주의를 지적하는 과정에 나온 해프닝"이라는 견해를 남겼다.

아울러 2014년부터 한국소설가협회 1600여명 작가와 남해문인들이 정을병 문학비를 건립하자며 정을병문학비건립추진위원회(위원장 백시종)를 꾸려 고향 남해에 정을병문학비 건립에 나섰다. 그러나 이 일은 남해군과 협의 과정에서 입장 차이로 결실을 맺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정을병문학비는 2016년 3월 그가 45년 동안 살았다는 서울 서대문구 안산공원 느티나무길 입구에 들어섰다.

정을병 선생은 남해 비하 발언으로 고향 사람들과 앙금이 있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남해 자생란 보호에 앞장선 남해인이기도 했다. 

양왕용 교수는 앞서 언급한 기고문에서 "정 소설가는 살아생전 남해군 당국과 화해해 소설가협회이사장 시절 소설가협회 행사를 남해에서 개최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백시종 소설가도 2015년 1월 남해신문 인터뷰를 통해 "선생의 글이 게재된 후 남해군민들의 대대적인 시정요구가 있었으며 선생의 즉각적인 사과가 없어 검찰 고발까지 이어지는 등 감정이 격화됐었다. 그러나 정을병 선생은 세월이 흐른 후 당시의 일을 크게 후회했다"고 전했다.

이제 문학인 정을병을 보자

이른바 필화사건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묻힌 소설가 정을병을 다시 보자고 제안하고 나선 곳은 남해도서관 지역인문학센터(관장 류지앵)다.

30년가량의 지역 도서관 근무 중 9년 가까이를 남해도서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류지앵 관장은 "한국 소설계가 낳은 정을병이란 거목이 왜 고향에서 주목받지 못할까"라는 생각에 지난해부터 "남해와의 갈등을 넘어 문학인으로서 정을병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조명하자"며 포럼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류 관장의 뜻에 정을병 선생이 잊혀져 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 오던 지역의 문인들이 동참하면서 남해도서관 인문학 포럼 '남해의 작가 정을병, 다시 읽다'가 만들어졌다.

이번 포럼에서는 임헌영 문학비평가와 박상률 숭의여자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가 '소설가 정을병을 말한다'를 주제를 통해 인간 정을병의 삶과 남해의 작가 정을병의 작품세계를 살핀다. 이어 남해 출신인 백시종 소설가와 김성철 남해문학회 회장이 '정을병의 삶과 문학'이란 주제로 작가의 인생, 문단 활동과 특유의 삶을 조명한다. 아울러 유성호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와 오봉옥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가 '정을병 문학의 매력' 주제 발표를 통해 그의 소설 세계의 매력을 들춰본다. 포럼은 오는 21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남해유배문학관에서 열린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남해시대에도 실렸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