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 독립 나선 애플, 그래도 디스플레이는 ‘메이드 인 코리아’ 왜

고석현 2023. 4. 25.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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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로고. AP=연합뉴스


애플이 ‘부품 독립’에 나서면서 아이폰·애플워치 등에 자체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지만, 디스플레이만큼은 삼성·LG 등 국내 기업에 대한 의존을 이어갈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는 중국의 맹추격 속에 프리미엄 제품인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술을 앞세워 ‘초격차’ 전략에 몰두하고 있다. OLED까지 빼앗기면 디스플레이 주도권을 모두 내줄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다.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은 25일 ‘애플의 부품 내재화가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산업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애플이 시장 우위 전략으로 자사 부품 적용을 확대하고 있지만 디스플레이 패널에서는 한국 업체 의존도를 최소 60% 이상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애플의 디스플레이 채택 비중은 LG디스플레이 30%, 삼성디스플레이 21% 수준이다. 삼성디플은 아이폰14의 70%를, LG디플은 애플워치 80%와 아이패드 32%가량에 디스플레이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애플이 자체 부품 생태계를 확대한다는 점은 국내 기업에 위협 요인이다. 앞서 애플은 맥북·아이폰 등에 자체 운영체계(OS)를 구축한 데 이어, 맥북용 M시리즈 칩, 자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설계·개발하며 하드웨어 분야에서도 독자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보고서는 “애플이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반도체 역량을 확충했던 것처럼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도 역량을 키워나갈 것”이라며 “디스플레이 시장에 장기적으로 ‘애플’이라는 새로운 플레이어가 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특히 애플이 주목하는 분야는 마이크로 LED 분야다. 마이크로LED는 칩 크기가 5~10마이크로미터(㎛·100만 분의 1m) 이하인 초소형 LED를 가리킨다. 기존 OLED보다 최대 100배 밝은 화면으로 야외 시인성이 뛰어난 게 장점이다. 패키징 없이 칩 자체를 화소로 사용할 수 있으며 소비 전력이 기존보다 우수한 것도 특징이다. 애플은 2014년 마이크로 LED 개발 업체인 럭스뷰를 인수한 뒤 2017년부터 제품 개발을 본격화해왔다. 늦어도 2025년에는 ‘애플워치 울트라’에 자체 설계한 마이크로LED 디스플레이가 탑재될 것이며, 이럴 경우 국내 업체의 OLED 공급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희망은 있다. 국내 업체가 애플의 마이크로 LED 물량을 수주받아 위탁생산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다. 보고서는 “마이크로 LED를 위탁생산하면 중국 업체에 밀린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의 열세를 만회하는 등 새 수익원으로 부상할 수 있다”며 “마이크로 LED의 대량 생산을 위해선 대규모 투자가 불가피해 향후 수년간 애플이 한국 업체로부터의 디스플레이 조달은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LG디플은 이미 마이크로 LED를 위한 기술개발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LED는 꼭 사수” 보릿고개에도 버티기


한편 삼성디플·LG디플 등 국내 업체들은 디스플레이 ‘보릿고개’에도 투자를 계속하며 버티기에 돌입했다. 최근 삼성디플은 2026년까지 총 4조1000억원을 신규 투자해 세계 최초로 8.6세대 OLED 패널 생산에 나서기로 했다. LG디플은 지난달 ‘형님’인 LG전자로부터 1조원을 차입해 OLED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지금 포기하면 LCD처럼 글로벌 시장 자체를 중국에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도 반영됐다. 이른바 ‘하이디스의 교훈’을 새기자는 것이다. 현대전자 LCD사업부에서 출범한 하이디스는 1997년 외환위기 직후인 2002년 중국 디스플레이업체 BOE에 매각됐다. BOE는 이때 얻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LCD 경쟁력을 키울 수 있었다. 중국이 한국으로부터 ‘글로벌 디스플레이 1위’ 타이틀을 빼앗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다행히 내년엔 정보기술(IT) OLED 시장이 확대되며 시장이 턴어라운드할 것이란 견해가 우세하다. 보릿고개를 잘 넘기면 기회가 있다는 의미다.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426억 달러(약 57조원) 규모인 글로벌 OLED 시장은 2027년 566억 달러(약 75조7300억원)로 확대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신사업과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해 중국과의 격차를 벌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의진 흥국증권 연구원은 “재고를 쌓아놓고 팔던 LCD와 달리 OLED는 수주형 사업이라 시스템 반도체와 비슷한데, 물량이 많은 애플로부터 수주가 중요하다”며 “지난해 BOE 등이 애플 제품의 초도 물량에 들어가며 삼성디플·LG디플·BOE 3사 경쟁이 본격화하는 단계”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OLED 시장에서도 중국 BOE의 점유율이 늘어나는 것은 시간 문제”라며 “LG디플이 투명 OLED를 만들었던 것처럼 국내 기업들이 신기술을 지속 개발해 격차를 벌리고, 마이크로 OLED 등 신기술로 전환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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