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찾은 이승엽 "난 이제 두산의 일원…삼성팬들 이해해주실 것"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이승엽(47) 감독이 선수단 버스에서 내리자 여러 대의 카메라가 따라 붙었다. 26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 삼성의 영구결번 레전드인 이 감독이 처음으로 다른 팀 유니폼을 입고 '대구 원정경기'에 나선 날이었다.
이른바 '이승엽 더비'를 보기 위해 수십 명의 취재진이 모였다. 대구 지역에 오전부터 비가 내려 경기는 취소됐지만, 이 감독의 '출근길'부터 '퇴근길'까지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쏟아졌다. 그러나 정작 주인공인 이 감독은 "정말 아직까지는 별 느낌이 없다. 실제 경기를 해봐야 알 것 같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이 감독은 "버스를 타고 야구장에 오면서도 고향에 온 감격보다는 '비가 오는데 경기는 할 수 있을까', '취소되면 선발 로테이션은 어떻게 할까', '타순은 어떻게 짤까' 하는 생각을 했다"며 "오히려 처음에 내가 '두산과 함께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남다른 감회를 느꼈는데, 지금은 완전히 두산의 일원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이 감독은 삼성에 등번호 36번을 영구결번으로 남긴 대표 프랜차이즈 스타다. 대구의 야구 명문 경북고를 졸업한 뒤 1995년 고향팀 삼성에 입단했다. 이후 KBO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홈런 467개를 때려내면서 한국 야구 최고 타자로 우뚝 섰다. 삼성라이온즈파크 오른쪽 외야 담장엔 여전히 '이승엽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이 감독은 "처음엔 그 벽화를 안 봤는데, 주위에서 얘기해서 한 번 보게 됐다"고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그래도 큰 감회는 없었다. 내 스마트폰에 저장이 된 사진으로 이미 많이 봐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삼성 팬들에게 '라이언 킹' 이승엽은 무척 특별한 존재다. "(대구에 와도) 특별한 감정은 없다"는 이 감독에게 자칫 서운한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감독은 "삼성 팬들도 이런 마음은 이해해주실 것"이라고 양해를 구했다.
이 감독은 "삼성에서 선수로 뛰면서 팬들에게 받았던 사랑은 당연히 잊을 수 없다. 나라는 선수가 태어나고, 자라고, 가장 좋은 시절을 보낸 곳이라 한도 끝도 없이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며 "다만 지금은 지도자로서 두산 유니폼을 입고 있으니 삼성에 대한 애정을 어떻게 표현하겠는가.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해야 하고, 두산 팬들 마음도 생각해야 한다"고 털어놨다. 또 "이런 생각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두산 유니폼을 입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삼성엔 이 감독이 선수 시절 아끼던 후배들이 여전히 뛰고 있다. 삼성 간판 타자 구자욱처럼 이 감독을 '아이돌'로 여기며 야구를 해온 후배도 많다. 그래도 이 감독은 "아무래도 상대 팀인데다 예전에 뛰었던 팀이라 (선수들과 만나는 게) 조심스러운 건 사실"이라며 "자연스러운 만남까지 거부할 이유는 없지만, 굳이 따로 인사해야 한다는 부담은 안 느꼈으면 좋겠다. 멀리서 하는 눈인사로 충분하다"고 웃어 보였다.
비로 날아간 두산과 삼성의 시즌 첫 맞대결은 26일 같은 장소에서 다시 열린다. 양 팀은 선발 투수를 라울 알칸타라(두산)와 데이비드 뷰캐넌(삼성)으로 나란히 변경했다. 두산은 4연승에 도전하고, 삼성은 4연패를 끊기 위해 나선다.
대구=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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