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상호출자제한기업 전환, 총수 지정 면해
서지영 2023. 4. 25. 17:36
미국 국적의 쿠팡Inc 이사회 김범석 의장이 올해도 공시 의무 등이 부과되는 대규모기업집단 동일인(총수) 지정을 피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시대상기업집단인 쿠팡을 내달 1일부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전환한다고 25일 밝혔다. 작년 말 기준 쿠팡의 자산이 11조1000억원으로 10조원을 넘긴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공정위는 쿠팡의 동일인은 김범석 쿠팡 의장이 아닌 쿠팡㈜으로 유지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제도적 미비로 외국인 동일인 지정에 관한 관련 규정이 없는 상황"이라며 "쿠팡은 김범석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데 반발하고 있고 별도 기준 없이 동일인으로 지정하면 주가 하락 등을 이유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청구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현행 제도의 미비점, 통상 마찰 우려 등을 고려해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한 위원장은 "쿠팡은 국내에 김범석의 개인 회사, 친족 회사가 없어 동일인을 김범석으로 지정하든 쿠팡㈜로 지정하든 규제 효과는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공정위는 2021년 쿠팡이 처음 대기업집단에 진입했을 때도 '현행 제도의 미비점' 등을 들어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지 않았다. 당시 김 의장이 국내 쿠팡 계열사를 지배하는 것이 명백한 데도 국적 때문에 총수의 의무를 면하는 것은 국내 기업과의 형평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일었다. 같은 논란은 지난해 4월 대기업집단 지정 때도 반복됐다.
공정위는 이에 작년 하반기 외국인 총수 지정 근거 및 기준을 마련하는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했으나,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가 미국과의 통상 마찰 우려 등을 제기하며 추가 협의를 요청해 무산됐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의 자회사가 최대 주주인 에쓰오일, 미국계 제너럴모터스 그룹의 한국지엠 등 외국계 기업집단이 총수 없는 동일인으로 지정된 상황에서 쿠팡만 자연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면 자유무역협정(FTA) 최혜국 대우 조항 위반이 될 수 있다는 취지였다.
공정위는 아직 통상 우려를 잠재울 만한 마땅한 결론을 도출하지 못한 상태다. 산업부는 작년 말 '공정거래법 시행령이 국제 통상 규범에 합치되는 방향으로 개정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전달했고, 공정위가 이를 토대로 올해 1월 제시한 수정협의안에 대해서도 '여전히 통상 마찰 우려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결국 올해까지 3년째 '제도 미비'를 언급하며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공정위는 "한국계 외국인이 지배하는 기업집단이 등장했고 외국 국적의 동일인 2세 등이 다수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돼 외국인 동일인 지정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며 "다만 통상 마찰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와 충분히 협의해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거듭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인 시행령 개정 목표 시기는 제시하지 않았다.
공정위는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이 있더라도 특정한 경우에는 회사를 동일인으로 본다'는 식의 규정을 마련해 내·외국인에 함께 적용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다만 이우현 OCI 부회장은 쿠팡 김범석 의장처럼 미국 국적인데도 2018년부터 OCI의 동일인으로 지정돼 온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공정위 설명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한 위원장은 "OCI는 동일인의 친족이 경영에 활발히 참여해 동일인을 법인으로 바꾸면 규제 공백이 생긴다는 점에서 쿠팡과 다르다"며 "OCI 측에서도 동일인을 변경하려는 의사가 없었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추후 시행령이 개정되면 김 의장을 쿠팡의 동일인으로 지정하느냐는 질문에는 "시행령 개정안이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아 김범석의 지정 여부를 예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시행령 개정과 별개로, 동일인 판단 및 확인 절차에 관한 지침을 연내 제정할 방침이다.
서지영 기자 seojy@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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