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박했던 수단 탈출"…우방국 협조로 빛난 '프라미스 막전막후'
숨막히는 외교전…우방국 통해 '현지정보' 수집
UAE, 교민 위한 대형버스부터 경호까지 자처
군벌 간 무력 충돌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북아프리카 수단에서 대피한 우리 교민 28명이 무사히 한국 땅을 밟았다. 대사관 주변으로 총성이 오가고 공항마저 닫혀버린 긴박한 상황에서 우리 국민들이 '무사 귀환'에 성공한 배경에는 우방국의 협조를 이끌어낸 외교적 노력이 있었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우리 교민들이 탑승한 공군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 KC-330은 25일 오후 3시57분께 경기 성남시에 위치한 서울공항 활주로에 착륙했다. 현지에서 교전이 시작된 지 열흘 만의 무사 귀환이다.
순식간에 수단 전역으로 번진 '무력 충돌'
수단 정부군과 반군 신속지원군(RSF) 사이 교전이 시작된 건 지난 15일. 무력 충돌은 빠르게 수단 전역으로 번졌고 각지에서 사상자가 속출하는 등 위험천만한 상황으로 이어졌다. 우리 정부는 사태 발생 직후부터 24시간 체제로 움직였고, 지난 20일 국가안보실을 중심으로 관계부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 데 이어 이튿날 군 수송기 급파를 결정했다. 교민 철수 작전에는 육군 특수전사령부의 707 대테러 특수임무대, 공군 공정통제사(CCT), 청해부대 충무공이순신함(DDH-II·4400t급) 등 육해공 최정예 부대가 동원됐다. 작전명은 '프라미스(promise·약속)', 육해공 전력이 모두 투입된 해외구출작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장 교민들을 수단의 수도 하르툼 소재 우리 대사관에 모으는 일부터 난관이었다. 외교부 당국자는 "길거리 이동은 물론 창가로도 나가지 못할 정도로 위험했다"며 "9군데에 흩어져 있던 교민들을 대사관으로 모으는 작업이 가장 긴박했다"고 회상했다.
대사관은 격전지로 꼽히는 시내 중심부에 있었지만, 태극기가 내걸려 있고 비교적 물자가 풍족하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할 것이라는 판단이 고려됐다. 문제는 그 다음, 대사관에서 잠시 신변을 보장받을 수는 있었다 해도 탈출을 위한 수단이 마땅치 않았다. 교민들을 태울 C-130J '슈퍼 허큘리스' 수송기와 공중급유 수송기 KC-330 '시그너스'가 배치된 미국 기지는 하르툼에서 직선거리로 1200㎞ 이상 떨어진 탓에 공중수송작전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더구나 하르툼의 공항은 이미 폐쇄된 상태였다.
숨 막히는 외교전…위험 무릅쓴 '육로 탈출'
외교 당국은 교민들의 이동 경로를 개척하기 위해 여러 우방국에 동시다발적으로 접촉을 시도했다. 미국과 프랑스, 영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는 물론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을 통해서도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했다. 특히 이 과정에선 현지 세력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UAE의 도움이 컸다. 외교부 당국자에 따르면 당시 UAE 측은 박진 외교부 장관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your people are our people"이라고 강조했을 정도로, 가능한 모든 차원의 도움을 약속했다고 한다.
정부는 우방국을 통해 수집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육로 이동을 선택했다. 회의를 하는 중에도 대사관 주변으로 총성이 들리고 곳곳에서 폭탄이 터질 정도로 급박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불안정했지만,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요르단 피난민과 유엔 직원들이 포트수단까지 육로로 이동했다는 점에서 결단을 내렸다. 그렇게 우리 교민 28명은 한국 대사관에서 대형버스 1대에 몸을 실었고, 지난 23일 오전 출발한 차량은 직선거리로 840여㎞ 떨어진 수단 북동부 항구도시 포트수단으로 향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안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우방국·인접국 국민들과 함께 이동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우리 교민들을 태운 대형버스 1대 외에도 버스 5대가 뒤따랐고, 이 버스들엔 일본·UAE·말레이시아 등 여러 국적의 외국인이 탑승했다. 버스 6대를 통한 이동 규모는 200~300명 사이 규모로 전해졌다. 교민들에 따르면 15시간 이상 이동하는 과정에서 버스 1대가 고장 나 6~7시간가량 이동이 지연되거나,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이동 경로를 바꾸는 등 긴박한 순간이 많았다고 한다.
무사히 포트수단에 도착한 교민들은 대기 중이던 우리 공군 C-130J '슈퍼 허큘리스' 수송기에 올라 경유지인 홍해 건너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 도착했고, 이후 우리 시간으로 이날 오전 2시54분께 공군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 KC-330 '시그너스'를 타고 서울공항으로 향했다. 수단 내 한인 29명 중 현지 국적 취득자 1명은 잔류 의사를 밝혀 귀국길에 동행하지 않았다.
수단 탈출 막전막후…우방국 협조로 '무사 귀환'
목숨을 건 탈출 과정, 그 이면에는 우리 외교관들과 교민들의 활약상도 대단했다. 먼저 남궁환 대사는 현지 사정이 악화되기 전부터 휴일에 대사관으로 나와 직원들과 비상점검을 실시했다. 대사관을 중심으로 한 탈출계획이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던 배경이다. 우리 교민들도 사태 초반부터 대사관과 촘촘한 비상연락망을 가동해 하루에 두 번씩 생사를 확인했다. 불안한 상황에서도 대사관의 조언을 충실히 수행했고, 남은 식량으로 함께 김밥을 만들어 먹으면서 서로를 다독였다고 한다.
탈출 과정을 지도한 외교부 당국자는 '숨 막히는 외교전'을 되짚으며 "어려울 때 누가 나를 진정으로 도와주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여러 우방국 가운데 UAE는 우리 교민들을 위해 대형버스를 지원해준 것은 물론 경호 임무까지 자처했다. 우리 군 병력이 투입될 경우 자칫 내전에 휘말릴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UAE 측은 먼저 우리 교민들의 육로 이동을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고, 특히 수단 정부군·반군 양측에 제3국 교민 철수의 안전을 보장해달라는 협상을 중재하기도 했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여러 외교적 노력을 토대로, 수단에 체류하던 우리 국민들이 오늘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이 과정에서 국방부를 비롯한 여러 관계부처가 대통령실과 '원팀'으로 다양한 방안을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정부는 수단 내 한국 대사관 운영을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이미 우리 공관원 전원은 하르툼에서 철수한 상태로, 당분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주재 한국 총영사관에게 임무를 부여하는 형태로 '비상근무체제'를 유지할 계획이다.
양낙규 군사전문기자 if@asiae.co.kr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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