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임대차 3법'이 전세사기 판 깔았다…전세대출은 땔감
“(문재인 정부 시절) 집값 폭등과 전셋값 폭등 때문이다.”(20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지난 정부의 주택정책 실패로 야기된 재난 수준의 피해다.”(23일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정부와 여당이 최근 속출하는 전세 사기의 원인으로 문재인 정부를 겨냥하고 있다. 문 정부의 부동산 실정(失政)이 전세 사기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데 일조했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도 “결과적으로 영향을 끼친 측면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임대차 3법이 전세 사기단에 판을 깔아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대차법으로 전셋값이 치솟은 게 전세 사기의 빌미가 됐다”며 “집값과 격차가 줄면서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 투자를 자극했다”고 말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문 정부 재임 기간인 2017년 5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전국 주택(아파트·단독·연립) 전셋값은 17.5% 올랐다. 특히 2020년 7월 개정된 임대차법은 전셋값 폭등의 기폭제가 됐다.
2017년 5월부터 2020년 6월까진 전셋값이 0.9% 오르는 게 그쳤지만, 임대차법 개정 후 1년 10개월간 16.4% 치솟았다. 당시 세입자들은 계약갱신청구권을 이용해 전셋집에 2년 더 눌러살면서 전세 품귀가 심화했고, 전·월세 인상률을 2년에 5%로 묶자 집주인들은 4년 치 인상분(전세금)을 한꺼번에 받곤 했다.
그 여파로 아파트는 물론이고 서민 주택인 빌라나 다가구주택 전셋값도 덩달아 뛰었다. 한국도시연구소가 국토부 실거래를 토대로 계산한 전국 주택의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셋값 비율)은 2020년 65.1%에서 지난해 90.6%로 치솟았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 소장은 “2021년 전후로 무자본 또는 적은 돈으로 집을 살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이른바 ‘무자본 갭 투자’가 가능한 것만으론 대규모 전세 사기는 불가능하다. 집을 수백 채 살 수 있는 여건이 뒤따라야 한다. 여기서 등록 임대사업자 제도가 갭 투자의 밑천으로 악용됐다. 정부는 2017년 다주택자를 향해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라”고 장려했다. 사업자 등록을 한 집주인은 양도소득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감면 혜택을 누렸다.
세제 혜택이 커지자 정상적인 임대사업자가 아닌 ‘악성 집주인’이 집을 수십, 수백 채를 사기가 쉬워졌다. 국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세입자 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않아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집중 관리하는 임대인 186명 중 114명(61.3%)이 임대사업자 자격을 유지했다. 이들 114명이 등록한 임대주택은 총 6504가구였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무자본 갭 투자를 일삼는 주체가 임대사업자 제도의 빈틈을 파고들었다”고 말했다.
무분별한 전세 대출도 전세 사기의 땔감이 됐다. 전세 대출은 보증금의 90%까지 받을 수 있고, 주택담보대출과 달리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적용받지 않아 소득을 따지지도 않는다. 2020~21년은 저금리 상황이라 월세를 내는 것보다 대출 이자가 적었다. 게다가 HUG 등은 전세 대출금을 최대 100% 보증해줬다. 세입자 입장에선 당장 손에 쥔 돈이 적어도 ‘빚투’(빚내서 투자)로 전셋집을 가는 게 유리한 것처럼 보였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전세 대출을 너무 완화하다 보니 월세로 들어갈 사람까지 전세로 가는 상황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중개법인 대표는 “임대차 3법과 임대사업자 제도, 전세 대출 등 문 정부의 정책 실패가 서민들이 전세 사기극에 휩쓸리기 쉬운 환경을 만들었고, 여기에 집값·전셋값 급락, 한국 특유의 전세제도가 총체적으로 맞물리면서 전세 사기 사태가 촉발됐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도 전세 사기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부가 올 초부터 각종 전세 사기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 없이는 유사한 피해가 계속 양산될 것이란 설명이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빌라나 오피스텔은 선순위 권리가 있으면 전세 계약을 못 하게 하고, 시세 파악이 어려운 빌라의 경우 감정평가사가 평가한 시세에서 전셋값을 50% 이하로 제한하는 전세 상한제 도입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김진유 교수는 “전세가율이 70% 이상인 주택은 전세가 아닌 보증부월세(반전세)로 계약하도록 법을 고치는 등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편, 전세 사기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특별법이 오는 27일 국회에 발의된다. 정부는 이날 전세 피해 지원 종합대책도 발표할 계획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25일 서울 강서 전세피해지원센터를 방문해 “내일(26일) 정도면 특별법 발의를 위한 실무 준비를 마치고 목요일(27일)에 발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여당 원내대표단은 목요일이나 금요일(28일) 국회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특별법에는 당정이 지난 23일 발표한 ▶우선매수권 부여를 비롯해 ▶피해 주택을 경매로 낙찰받을 때 취득세 등 감면 ▶장기·저리의 융자 지원 등이 포함된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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