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 꺼져도, 콩쿠르 우승…전설의 피아니스트가 들려주는 쇼팽

2023. 4. 25.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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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전 상태 결선무대 딛고 2010 쇼팽콩쿠르 우승
마르타 아르헤리치 이후 45년 만의 여성 우승자
우크라이나 작곡가 곡을 앙코르로 연주하기도
다음달 12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쇼팽 작품만으로 한국 관객과 만나는 러시아 피아니스트 율리아나 아브제예바. 그는 최근 우크라이나 작곡가 곡을 앙코르로 연주한 것에 대해 ″시국을 반영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사진 마스트미디어


러시아 태생의 피아니스트 율리아나 아브제예바(38) 하면 늘 따라붙는 전설적인 에피소드가 있다.
2010년 제16회 쇼팽 콩쿠르 결선무대에서 아브제예바가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하던 중 갑자기 조명이 꺼지며 암전 상태가 됐다. 객석은 술렁였지만 아브제예바는 전혀 흔들리지 않는 연주를 선보여 우승을 거머쥐었다. 조금의 동요도 없이 연주를 끝내는 그의 모습을 보며, 많은 이들이 '과연 프로는 다르구나' 라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에게 '어둠 속 피아니스트'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당시 그는 다닐 트리포노트, 잉골프 분더 등 쟁쟁한 연주자들을 제치고 우승하며, 전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아브제예바가 1년 반 만에 한국을 다시 찾는다. 5월 1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쇼팽 작품 만으로 관객과 만난다. 아브제예바가 국내에서 피아노 리사이틀을 여는 것은 2015년 이후 8년 만이다. 지난해 1월엔 KBS교향악단 정기연주회의 협연자로 국내 관객과 만난 바 있다.
아브제예바가 폴로네즈, 전주곡, 마주르카, 스케르초, 소나타 등 다양한 스타일을 체험할 수 있는 ‘올 쇼팽’ 프로그램 독주를 하는 건 13년 만이다.

그는 서면 인터뷰에서 “쇼팽 음악의 비전을 제시하고 제가 요즘 느끼는 쇼팽의 예술을 한국 관객들과 공유하고 싶다”며 “모든 시대의 음악은 서로 연결돼 있다. 바로크 음악이 쇼팽 해석의 아이디어를 주는가 하면 20세기 작곡가 다케미츠의 작품이 쇼팽 음색에 영감을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아브제예바는 벨라 다비도비치, 할리나 체르니 스테판스카(1949년 공동 우승), '피아노 여제' 마르타 아르헤리치(1965년 우승) 이후 45년 만에 탄생한 쇼팽 콩쿠르 여성 우승자다.

다음달 12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쇼팽 작품만으로 한국 관객과 만나는 러시아 피아니스트 율리아나 아브제예바. 그는 최근 우크라이나 작곡가 곡을 앙코르로 연주한 것에 대해 ″시국을 반영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사진 마스트미디어


아르헤리치와 다비도비치는 아브제예바가 우승할 당시 심사위원이었다. 아브제예바는 “우승 이후 아르헤리치와 대화를 나누고 음악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며 큰 영감을 받았다. 다비도비치는 뉴욕과 도쿄에서 열린 제 공연을 보러 오셨다. 쇼팽 콩쿠르 우승자가 객석에 앉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럽고 감사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피에타리 잉키넨 KBS교향악단 음악감독 취임 연주회에서 차이콥스키 협주곡을 협연한 것에 대해 그는 “2020년 3월 이후 대륙을 이동한 첫 해외 공연이었다. 한국 관객들과 음악을 나눌 수 있어 감사했다. 얼마나 그리워했던 순간인지 모른다. 평생 남을 기억”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 연주자들과의 친분도 드러내며 “조성진(2015년 쇼팽콩쿠르 우승자)은 여러 차례 만났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는 언제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연주자다”라고 했다.

‘러시아에는 두 종류의 피아니스트가 있다. 하나는 잘 치는 피아니스트, 다른 하나는 괴물’이란 우스갯소리가 있다. 러시아 피아니즘의 전통은 그만큼 탁월하며 전세계 음악계에 큰 영향을 드리우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그네신 음악학교를 나온 아브제예바에게도 해당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는 러시아 악파의 특징보다는 연주자들의 개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소프로니츠키를 존경한다는 그는 “음과 표현력, 자유로움에서 나오는 강렬한 인상으로 쇼팽 음악을 가장 잘 표현한다”고 이유를 밝혔다.

“연주자의 성향, 곡에 대한 감정과 이해력, 표현에 따라 연주가 결정됩니다. 악보를 해석할 때 자유가 주어지고 모든 연주자의 해석은 저마다 다릅니다. 그렇기에 음악은 독특하고, 아름다운 마법이 됩니다.”

다음달 12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쇼팽 작품만으로 한국 관객과 만나는 러시아 피아니스트 율리아나 아브제예바. 그는 최근 우크라이나 작곡가 곡을 앙코르로 연주한 것에 대해 ″시국을 반영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사진 마스트미디어


원전 연주는 주로 바로크, 확장해서 고전주의 시대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졌다. 아브제예바는 낭만주의 시대를 살았던 쇼팽을 시대 악기로 해석하는 데도 관심이 많다.
프란스 브뤼헨이 지휘한 18세기 오케스트라와 쇼팽 협주곡 1번과 2번을 녹음한 아브제예바는 “쇼팽을 시대 악기로 연주한 건 타임머신을 타고 쇼팽의 시대로 간 듯한 경험이었다. 쇼팽의 귀에 들려왔을 악기 자체의 음향이 굉장한 의미로 다가왔다. 음의 지속력은 짧지만 놀라운 음색으로 음의 조화를 구현하기 때문에 시도 자체에서 만족감을 느꼈다”며 “페달의 사용과 표현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고 쇼팽뿐 아니라 베토벤 해석에도 응용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아브제예바는 올해와 내년에도 18세기 오케스트라와 쇼팽 협주곡을 협연할 예정이다.

최근 우크라이나 작곡가 발렌틴 실베스트로프의 작품을 앙코르로 연주했다는 그는 "시국을 반영한 선택이었다"며 "전쟁 발발 후 안전상의 이유로 독일로 거처를 옮긴 85세의 거장 작곡가를 직접 만나 뵐 수 있었다. 큰 존경과 함께 전쟁에 유감을 표했다"고 말했다.

아브제예바는 이번 리사이틀도 앙코르곡으로 끝을 맺는다. 그는 “앙코르곡도 프로그램의 연장선”이라며 “보통은 요즘 분위기를 반영할 곡을 연주한다거나 내 기분에 맞춘다”고 말했다.

류태형 객원기자·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ryu.tae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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