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정치인의 실언, 비속어보다 말의 맥락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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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이 최고위원들의 설화로 내홍을 겪고 있다.
정치인의 막말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내 연구에서, 대학생 220명이 인식한 정치인의 막말 사례 중 95.9%는 일반어로 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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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이 최고위원들의 설화로 내홍을 겪고 있다. 정치인의 막말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잊을 만하면 발생하고 큰 선거의 승패까지 좌우한다. ‘정치인이 왜 막말의 함정에 빠지는가?’ ‘막말을 구별하는 기준이 무엇인가?’에 관한 궁금증을 조금 풀어보고자 한다.
상당수 정치인은 욕설, ‘생지랄 공약’ 같은 비속어, ‘정부 돈에 맛 들이면’ ‘말짱 도루묵’ 같은 사석에서 격의 없이 쓰는 통속어만 피하면 된다고 본다. 이는 잘못된 믿음이다. 내 연구에서, 대학생 220명이 인식한 정치인의 막말 사례 중 95.9%는 일반어로 돼 있었다. ‘5·18 헌법 수록 반대’ ‘전광훈 우파 천하 통일’ ‘제주 4·3 기념일은 국경일보다 격이 낮은 기념일’ ‘4·3사건은 김일성 일가 지시’ ‘김구는 김일성의 통일전선 전략에 당한 것’ ‘JMS 민주당’ ‘양곡관리법 개정 대신에 밥 한 공기 다 비우기 운동’ 등 설화로 여겨진 국민의힘 최고위원들의 말도 모두 평범한 단어로만 구성돼 있다. ‘품격이 낮은 단어만 피하자’는 단순 논리만으론 설화를 막을 수 없으며 ‘말의 맥락’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실언 여부를 정하는 이 맥락은 간단하다. 정치인의 말이 ‘사회에서 합의된 사안’을 배격하면, 대중은 ‘너무 나간 말’로 인식한다. ‘합의된 사안’을 판별하는 문제와 관련해 서로 으르렁거리는 보수와 진보가 모두 동의하는 사안은 합의된 사안이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5·18 헌법 수록은 보수 성향 윤석열 대선후보도 약속한 보수·진보 합의 사안이다. 4·3사건에 김일성 지시가 발견되지 않은 점, 김구가 김일성에게 이용당하지 않은 점도 보수·진보 교과서 등을 통해 인정된 사안이다. 이 합의 영역을 반증 없이 뒤엎으려 하니 설화로 인식된다. 전광훈 우파 통일은 사회의 다수가, 보수의 다수가 부동의 하는 언급이다. JMS 민주당은 더불어민주당의 특정 행위를 비판하는 차원을 넘어 당 자체를 쓰레기(Junk)로 규정함으로써 그 구성원의 인권을 부인한다. 정치인은 독특한 주장을 할 때 그 말이 사회적 합의에서 일탈하는지 점검해야 한다.
실언은 ‘합의된 문화적 사안에서 벗어난 말’과 ‘합의된 물리학적 사안에서 벗어난 말’로 나뉘기도 한다. 5·18, 전광훈, 4·3, 김구, JMS 설화는 전자에 속한다. 반면 밥 설화는 물리학적 사안에서 벗어난 말이다. 밥을 조금 남기던 사람들이 밥 한 공기를 다 비우는 방식으로 식사 습관을 바꾸더라도 이로 인해 증대되는 쌀소비로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의도하는 쌀 매입량을 도저히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언의 부정적 성격에선, 문화적 사안에서 벗어난 말이 물리학적 사안에서 벗어난 말보다 훨씬 심각하다.
실언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같은 공론장에서 실망, 냉소, 혐오의 감정을 일으키고 이로 인해 지지도 하락을 초래한다. 대중은 왜 실언에 집단적 감정으로 대응할까? 정치인들은 열성 지지층의 환심을 사고 자신에게 표를 주지 않는 국민을 사회에서 정서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해 강한 표현을 쓰다가 실언을 범한다. 대중은 실언 뒤에 감춰진 이 의도를 본능적으로 알기에 실망하고 냉소하고 혐오하는 것이다. 이렇게 정치권 실언의 기준, 의도, 효과를 알면 실언을 줄일 수 있으리라 본다.
허만섭 강릉원주대 교양교육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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