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코치가 제자 대진표 바꿨다" 소년체전 승부조작 의혹

김준희 2023. 4. 25.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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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인 인권 보호와 스포츠 비리 근절을 위한 전담 기구인 스포츠윤리센터. 2020년 8월 업무를 시작했다. [뉴스1]


"30년 베테랑 지도자가 제자 대진표 바꿔"


스포츠 꿈나무를 발굴하는 전국소년체육대회(이하 소년체전)에 출전할 지역 대표를 뽑는 예선전에서 승부 조작 의혹이 제기돼 관계 당국이 조사에 나섰다. 조작 의혹 당사자로 지목된 코치는 30년 가까이 국가대표 등을 배출한 베테랑 지도자다.

25일 전북체육회·전북교육청에 따르면 전북 지역 4개 초등학교와 1개 스포츠클럽 소속 배드민턴 선수와 학부모는 "지난 2월 13일 고창군립체육관에서 열린 '제52회 소년체전 배드민턴 남자 초등부 전북 대표 2차 선발전'에서 승부 조작이 있었다"며 지난달 31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스포츠윤리센터에 전북배드민턴협회 A 회장과 B 전무이사, 정읍 모 초등학교 C 코치를 신고했다. 이번 대회는 전북교육청이 주최하고, 전북배드민턴협회가 주관했다. 52회 소년체전은 오는 5월 27일부터 30일까지 울산에서 열린다.

국민체육진흥법에 따르면 승부 조작 등은 금지 대상이고, 체육 지도자나 선수 관리 담당자 등은 체육계 인권 침해나 스포츠 비리를 알게 되면 스포츠윤리센터나 수사기관에 즉시 신고해야 한다. 스포츠윤리센터는 전북배드민턴협회 측에 경기 진행 용지 등을 요청하고, 관련자를 조사하고 있다.

지난해 9월 18일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 보조경기장에서 열린 2022 서울시민체육대축전 배드민턴 대회에서 심판들이 네트 위를 지나는 셔틀콕을 눈으로 좇고 있다. 본 기사와 관련 없음. [연합뉴스]


선수·학부모 "협회가 비리 덮어"


승부 조작 논란은 당시 선발전에 참여한 한 학생이 "C 코치가 지도하는 한 학생이 조 추첨 결과 1조에 뽑혔는데도 2조에 배정받아 경기를 뛰었다"고 부모에게 알리면서 불거졌다. 일부 학부모와 대회 관계자 등이 해당 학생 대진표가 바뀐 것을 알게 됐지만, 경기는 그대로 진행됐다.

신고한 이들은 C 코치를 비롯한 일부 학교 코치진이 선발전에서 특정 선수 3명을 뽑을 목적이었는데 3명 모두 1조로 배정되자 대진표를 조작해 3명 중 1명을 2조로 바꾼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날 선발전은 1조 8명, 2조 9명이 개인전을 거쳐 최종 4명이 전북 대표로 뽑혔다. 그러나 추첨 결과와 다르게 조가 편성된 C 코치 제자는 탈락했다.

이에 선발전 이튿날 한 선수 부모가 B 전무이사를 통해 A 회장에게 스포츠공정위원회를 열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A회장은 스포츠공정위를 열지 않고 외려 사건 무마를 종용했다는 게 신고한 선수·학부모 측 주장이다.
지난달 24일 대구 수성구 대구스타디움 육상경기장에서 열린 '2023년 대구시소년체육대회' 여초부 80m 경기에 출전한 선수들이 힘차게 출발하고 있다. 오는 5월 27일부터 30일까지 울산에서 열리는 제52회 전국소년체육대회에 참가할 대표 선수 선발을 겸해 열렸다. [뉴스1]


코치 "승부 조작 없었다"…협회 "맞다" 시인


이들은 "A 회장은 지난달 4일 전주에서 열린 도내 초·중·고 등 배드민턴 지도자 15명이 참석한 간담회에서 C 코치에게 공개 사과를 지시했지만, C 코치는 사건 경위는 밝히지 않은 채 '죄송하다'고만 했다"고 했다.

한 선수 부모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어른 욕심과 잘못된 행동으로 피해를 보는 건 아이들"이라며 "C 코치가 지도한 학생이 원래 조에 있었다면 대표로 선발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제일 큰 피해자"라고 했다.

이에 대해 C 코치는 "승부 조작은 없었다"며 "경기 진행 과정에도 문제가 없었고, 아무도 피해를 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북배드민턴협회 측은 "C 코치가 1조라고 적힌 종이를 뽑은 학생에게 임의로 2조에서 뛰라고 한 것 자체가 승부 조작"이라고 했다.

1973년 6월 대전에서 열린 제2회 소년체전 선수 입장식. 대한체육회 주최로 매년 봄에 열리는 소년체전은 전국 17개 시·도를 대표하는 초등학교 5·6학년과 중학교 1·2·3학년 학생 등이 36개 종목에서 실력을 겨루는 대회다. 52회 소년체전은 오는 5월 27일~30일 울산광역시에서 열린다.[중앙포토]


회장 "진상 조사 착수…코치는 징계"


A 회장은 "당시 1조에 잘하는 선수가 많다 보니 C 코치 욕심에 학생에게 2조로 가라고 한 것 같다"며 "코치가 선수에게 어떤 조로 가라고 하든 경기 진행 요원이 선수가 준 쪽지(조 추첨 종이)를 확인해 대진표에 정확히 적어야 했는데, 역할을 못 했다"고 했다.

A 회장은 "협회도 조직적 담합이 있었는지 등을 밝히기 위해 선발전에 참가한 모든 지도자와 선수, 협회 관계자를 대상으로 진상 조사에 착수하고 C 코치는 징계할 방침"이라고 했다.

전북체육회와 전북교육청도 뒤늦게 사실관계 파악에 나섰다. 체육계 안팎에선 "승부 조작이 이번뿐이겠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성하 전북교육청 대변인은 "승부 조작이 사실로 드러나면 거기에 상응하는 조처와 함께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수립할 것"이라고 했다.

이은정 스포츠윤리센터 이사장. [국회사진기자단]

고창·정읍·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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