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노인·여성 위주로 고용 늘어...美와 달리 인플레 압력 낮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고용이 증가했지만 올해 물가 상승을 크게 부추기진 않을 거란 전망이 나왔다. 노인과 여성 위주로 취업이 늘면서 ‘고용의 질’은 떨어졌고, 경기 부진 등으로 일자리 수요는 점차 둔화하고 있어서다. 미국은 노동 공급이 줄면서 노동시장 긴장도(tightness)가 높아져 서비스 물가와 같은 근원물가가 잘 떨어지지 않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25일 한국은행은 ‘노동시장 상황과 인플레이션 압력’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코로나19 이후 노동시장의 변화가 통화정책에 미칠 영향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모두연설을 맡은 서영경 한은 금융통화위원은 “최근 주요국의 통화정책 차별화는 노동시장 상황 차이와 이에 따른 물가압력 차별화에도 일부 기인하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금년중 고용시장에서는 수요둔화와 공급확대가 맞물리면서 긴장도가 완화돼 물가압력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국내에서 코로나 전후 노동시장의 변화와 통화정책적 함의를 입체적으로 분석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은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시장 긴장도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미국은 실업률을 빈일자리율로 나눈 비율이 팬데믹 이전(2014~2019년) 0.86에서 팬데믹 이후(2021년~지난 2월) 1.57로 확대된 반면, 한국은 0.34 그대로였다. 미국은 팬데믹 이후 일자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노동시장이 과열된 것으로 나타난 반면, 한국은 실업률과 일자리가 같이 줄었다. 단지 일하려는 사람이 많아져 고용이 양적으로 증가했다는 의미다.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우선 한국은 팬데믹과 베이비부머의 은퇴 시기가 맞물려 고용이 증가했다. 고령화와 고용률 상승 효과를 모두 고려했을 때, 지난 5년간 1차 베이비부머(60~65세) 계층의 고용증가(67만명 증가)는 전체 고용증가의 절반가량(49%)을 차지했다. 미국에서 높은 코로나 치명률과 조기 은퇴 등으로 고령층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하락한 것과 대조적이다.
또 한국은 만혼과 저출산 심화, 가사노동의 시장화(노인돌봄, 간병서비스 등)로 여성의 노동공급도 증가했다. 이처럼 고령자와 여성 중심으로 '저임금·불완전 고용'이 늘다보니 고용의 질은 낮아졌다. 일평균 근로시간은 2017년 8.4시간에서 지난해 8.2시간으로 줄었다. 시간제(36시간 미만) 근로자, 비정규직 비중도 2019년 각각 19.8%, 36.4%에서 지난해 각각 28%, 37.5%로 증가했다.
이처럼 고용이 양적으로만 증가하다보니 경제성장률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다. GDP(국내총생산)와 취업자간 상관계수(2010~2022년)를 분석한 결과 한국은 0.52로 미국(0.9), EU(0.7)에 비해 낮았다. 코로나 전후 노동생산성(GDP/취업자수) 증가율도 2.5%에서 1.7%로 하락했다. 같은기간 미국은 0.4%에서 1.3%로 증가했다. 노인·여성 위주로 부가가치가 낮은 부문의 고용이 늘다보니 생산성이 떨어져 경제성장에 기여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한국은 미국처럼 고용이 늘면 물가가 오르는 식의 직접적인 관련이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노동수요가 크게 증가한 제조업의 임금 상승률(0.9%포인트)이 서비스업(0.3%포인트)보다 더 높아진 반면 미국과 EU는 서비스업 임금 상승률이 제조업보다 더 높았다. 서비스업은 제조업보다 임금 인상과 물가 상승의 연관성이 큰데, 한국은 상대적으로 서비스업 고용 비중이 낮아 인플레 압력도 미국보다 약한 것으로 분석됐다.
다만 노동시장의 긴장도와 근원물가(변동성 큰 식료품·에너지 제외)는 유의미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은은 밝혔다. 쉽게 말해 고용이 활발하게 이뤄지면 외식비 등 서비스물가가 오를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고용시장 긴장도와 근원서비스물가는 지난해 10월 정점을 찍고 동반 하락중이다. 단기적으로는 고용이 물가를 밀어올릴 가능성이 적지만 주의를 기울일 필요는 있다고 한은은 설명했다.
한은은 노동생산성 하락이 지속될 경우 저성장-저물가 체제가 이어지면서 통화정책을 운용할 때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은은 “노동시장의 실질적인 구조개선을 위해 베이비부머 인적자본 활용, 보육여건 개선 등을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며 “실업률, 고용률과 같은 전통적 지표말고 경기상황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고용지표를 계속 발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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