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돼지고기는 '돼지'입니까 '고기'입니까

조소영 2023. 4. 25.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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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 작가의 <날씨와 얼굴> 을 읽고

[조소영 기자]

자신의 선택이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믿음이 자아도취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보다 나쁜 건 자신의 선택이 아무한테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믿는 자기기만이다.  
 
 <날씨와 얼굴>, 이슬아, 위고 출판사
ⓒ 위고
과거 친구와 삼겹살을 먹다가 비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내가 삼겹살을 먹으면서 고기를 줄이는 것이 환경에 좋다고 하니 슬슬 줄여야겠다고 운을 뗐다. 친구는 사람이 고기를 먹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인데 왜 줄이냐고 말했다. 먹이 사슬에 따라 새는 벌레를 먹고, 사자가 가젤을 먹는 것이 자연의 순리라며. 그런데 왜 사람이 육식을 하는 것이 안되냐고 말이다.

비거니즘이 '동물로 만들어진 것을 소비하지 않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사람은 있어도 그것이 '왜'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이해하는 사람을 많이 만나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비거니즘을 '인싸'들이 하는 라이프스타일이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비거니즘은 환경과 사람을 위해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언젠가는 비건이 되기를 '선택'조차 할 수 없는 미래와 마주할 것이다.

책 <날씨와 얼굴>에서는 내가 속한 세계에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지만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들에 귀 기울여 줄 것을 촉구한다. 이 책에서는 전염병이 돌 때마다 살처분되는 돼지들과, 에어컨이 없는 물류센터에서 과로사한 청년과, 고아라 불리며 필요 없는 동정을 받는 평범한 성인의 목소리들이 들린다. 온전하게 들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목소리를 들으려고 함으로써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인간이 반려동물과 사료를 구분짓는 방식
 
"돼지를 먹는다"보다 "돼지고기를 먹는다"가 더 고급 문장으로 취급되는 이유는 그 말이 당장의 식사가 실제로 살아 있던 동물의 사체를 먹는 야만적 행위와 완전히 일치한다는 사실을, 그들로부터 비롯되는 근원적인 양심의 가책을 지우기 때문이다.

회식자리에서 먹는 소주와 삼겹살, 월드컵만 되면 앉을 자리가 없는 치킨집, 길거리를 지나가면 보이는 고기 무한리필 식당, 매일 먹는 달걀 두 알. 우리에게 동물로 만들어진 식품은 얼마나 일반적인 것이 되었는가? 하지만 이렇게 고기를 자주, 대량으로 소비할 수 있게 된 것도 비교적 최근 역사다. 공장식 축산이 시작된 것은 1920년 미국에서였으며, 우리나라에서도 1960년대 말부터 공장식 축산을 대대적으로 시행하기 시작했다고 작가는 말한다.

공장식 축산으로 빠르게, 싼 가격으로 육류와 유제품들을 생산하면서 덕을 본 것은 대기업들이다. 소비자들이 싼 가격에 많은 양의 동물들을 소비할수록 소, 돼지와 닭들은 더 강도 높은 고통에 시달린다. 대량의 달걀 생산을 위해 암컷 병아리들은 밤낮없이 고통스럽게 알을 낳으며 닭가슴살 생산을 위해 버틸 수 없는 체중까지 살이 찌워진다. 수컷 병아리들은 상품성이 없다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가스사 당한다.

강제로 번식되어 태어나는 동물들은 상품성이 없어지거나 전염병에 걸리면 즉각 살처분된다. 고통 없는 안락사도 아니다. 생매장이나 다름없다. 사람들이 키우는 반려동물인 개와 고양이는 이 동물들과 어떻게 다를까? 사람은 무슨 자격으로 우리의 친구와 우리의 사료를 구분지을까?

다시 한 번 그 친구에게 묻고 싶다. 과연 비거니즘이 먹이사슬이라는 '자연의 흐름'에 거스르는 운동인지 말이다. 오히려 반대다. 비거니즘은 '동물을 착취해서 얻은 것을 소비하지 않는 것'이다. 강제적이고 인위적인 공장식 축산에 저항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거니즘은 노동자를 위한 운동과 많이 닮아있다. '우리가 소비하는 것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는 점에서 이 둘은 비슷하다.

자신이 소비하는 것 이면의 얼굴들을 상상해보자

'가축'은 농가의 소득증대에 기여할 수 있는 동물을 말한다. 그렇게 본다면 노동자 역시 사회에서는 가축과 닮아있다. 노동자의 사전적 정의는 사용자에게 고용되어 임금을 대가로 수입을 얻어 생활하는 사람이지만, 기업의 소득증대에 기여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공장식 축산을 통해 물류센터에서 밤낮없이 일하며 과로사하는 청년들의 얼굴을 떠올리기도 한다.

어느새부턴가 배달은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물건을 주문한 다음날 배송이 오기를 바란다. 쿠팡에서는 '로켓배송'이라는 슬로건을 내건다. 상품 밑에는 '내일 새벽 도착!'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소비자들은 새벽에라도 오면 좋겠다고 바라지만 '새벽까지 일하는 노동자'에 대해선 잘 떠올리지 못한다.
 
물류센터의 모든 노동자가 그들 눈에는 또 다른 자식처럼 보인다. 국회에서, 그리고 물류센터 앞에서 그들은 누구도 다시는 이렇게 죽으면 안 된다고 말하며 현수막을 펼친다. 그들의 현수막에는 적혀 있다. 덕준이의 친구들이 일하고 있다고.

소비자들이 '되면 좋고, 안 되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에 누군가는 목숨을 바친다. 육류를 소비하는 즐거움을 조금 포기하더라도, 곱창밀키트가 다음 주에 배송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일상에는 큰 문제가 없다. 
 
"상상해 보렴. 262년이야. 그게 네가 연결된 시간의 길이란다. 넌 이 시간에 걸쳐 있는 사람들을 알고 있는 거야."

인간은 상상하고 이입하는 존재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누군가의 얼굴이 된다. 매일 강제로 알을 낳아야 하는 암컷 병아리가 되어본다. 함께 살던 돼지가 병에 걸려 내일 당장 생매장당할 위기에 처한 돼지가 되어본다. 한여름에도 에어컨이 없이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되어본다. 보고 싶은 책이 있어도 오디오북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시각장애인이 되어본다. 내가 망쳐놓은 환경에서 앞으로 태어나 살아가게 될 수백만명의 어린이들이 되어본다.
상상력으로 타인의 모든 입장을 생생하게 그려낼 수 없다. 하지만 상상은 변화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나 역시 매번 실패하더라도 다른 이의 얼굴이 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먹고 입고 쓰는 모든 것의 앞뒤에 어떤 존재가 있는지 상상하기를 멈추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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