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만에 새 집? 또 전세살이…은퇴자 덮친 '분담금 폭탄'

김영주 2023. 4. 25.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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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시장 ‘불패신화’의 역설


2005년 서울 둔촌주공 4단지 3층 전용 84㎡(34평)를 8억원에 산 김모(61)씨. 현재 이 아파트의 조합원 입주권(84㎡ 타입) 시세는 17억~18억원이다. 19년 만에 새 집도 얻고 집값도 9억원가량 뛴 것 같지만 현실은 다르다.

김씨가 2025년 1월 새 집에 입주하려면 조합원 분담금과 이주비 대출 이자 등 약 4억원의 목돈이 필요하다. 김씨는 “조합원 분양 때 큰 평수인 43평을 신청했다”며 “2017년만 해도 예상 분담금이 3000만원 정도라더니 지금은 2억원이 책정됐고 더 늘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여기에 이주비 대출(조합 3억7000만원, 개인 전세자금 대출 2억5000만원) 이자가 연 4~6%로 일 년에 약 2000만원이다. 이주부터 입주까지 6년간 대출 이자가 1억원 이상인 셈이다. 또 옵션 비용 4000만원과 취득세 등을 모두 합하면 입주 시점에 큰돈이 드는 데 마련할 방법이 막막하다. 그는 “이자를 감당할 수 없어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새 아파트를 전세 놓고 보증금으로 부족한 돈을 메꾸고, 전세살이를 계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고금리 시대 ‘재건축 불패신화’의 역설이다.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은 조합과 시공단 간 ‘공사비 인상’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던 끝에 공사비가 당초 2조6000억원에서 3조2000억원→다시 4조3000억원(시공단 청구 금액)으로 불어난 게 결정적이었다. 고스란히 조합원의 추가 부담이 됐다. 그사이 공사 지연으로 입주가 2년이나 늦춰지면서 이자 등이 눈덩이처럼 불었다. 대출 금리도 이주가 시작된 2019년 4%대에서 올해 1월 6.9%까지 뛰었다. 재건축조합 관계자는 “전체 조합원의 40%가 김씨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2000여 가구가 새 집에 입주하지 못하고 전세를 찾아야 할 처지라는 것이다.

둔촌주공의 경우 불운이 겹친 결과이긴 하다. 사업시행 인가(2015년)와 관리처분 인가(2017년) 때만 해도 지금의 상황은 예상하기 어려웠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처음에 조합이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제시한 낮은 분양가(2900만원)를 피하기 위해 시간을 끌다가 금리 인상과 공사비 증액이라는 결정타를 맞았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8월 입주 예정인 서울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한신3차·경남아파트 재건축) 상황도 비슷하다. 부동산 업계에선 전체 조합원 중 300~400명(약 15%)은 새로 지은 아파트에 들어오지 못할 것으로 추정한다. 래미안원베일리 조합원인 A씨의 경우 2014년 한신3차 2층 아파트(전용 99㎡, 32평)를 9억원대 후반에 샀다. 이후 2017년 재건축 시행 인가 때 84㎡(34평)를 신청해 분담금은 1억3000만원이었는데 1년 만에 2억7000만원으로 오르더니 최근 3억3000만원이 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2018년 시공 계약 당시 공사비(3.3㎡당 530만원)가 2배로 올랐기 때문이다.

한신3차 132㎡(44평)에서 거주하다 래미안원베일리 116㎡(46평)를 분양받은 조합원 B씨도 분담금이 애초 2억6000만원에서 3억2000만원으로 늘었다. B씨는 “전용 면적은 줄었는데도 분담금은 3억원 이상 나왔다”며 “집은 줄고 내야 할 돈은 늘어난 상황”이라고 했다.

강남구 최대 재건축 단지인 은마도 향후 분담금 폭탄을 떠안을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지난 2월 서울시의 정비계획 및 정비구역 결정 고시에 따르면 조합원 분양에서 ‘수평 이동(34평→34평)’할 경우 분담금은 약 1억2000만원으로 추산됐다. 평형을 상향(34평→36평)하는 경우엔 2억2000만원 선이다. 현 추진위 관계자는 “은마의 재건축 기간은 10년 안팎으로 예상된다”며 “그사이 은마도 둔촌주공·래미안원베일리가 겪은 난관에 부닥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주 기자 kim.youngju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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