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부를 때 '목적지 모르게' 추진…오히려 '가려받기' 늘린다?
택시 대란을 해소하기 위해 여야가 추진 중인 ‘택시 목적지 미표시제(이하 미표시제)’가 국회 처리를 앞두고 논란을 빚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교통법안심사소위는 25일 택시 목적지 미표시제법(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을 심사한다. 이 법안은 지난해 2월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했는데 “플랫폼중개사업자는 승객이 탑승하기 전 택시기사에게 도착지를 사전에 고지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골자다. 카카오T택시, 티맵택시 같은 플랫폼중개사업자가 이를 어기면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 수 있다.
이 법안이 도입되면 택시기사는 승객의 호출을 받고도 이용객 탑승 전까지 목적지를 알 수 없다. 택시기사로서는 단거리와 장거리 구분 없이 일단 호출을 수락해야 하기 때문에 ‘승객 가려 받기’를 하기 어렵다. 현재 미표시제는 최대 5000원의 호출료를 추가로 내는 카카오T블루 등에만 적용되어 있다.
지난 11일 열린 교통법안심사소위에서 박정하 국민의힘 의원은 “누구든지 택시를 호출하면 탈 수 있어야 한다. 택시기사들이 목적지를 보고 거부해선 안 된다”며 찬성 의견을 밝혔다. 맹성규 민주당 의원도 “미표시제를 도입하면 가까운 거리를 가는 기사들은 불이익을 본다. 반면에 소비자들은 큰 편익을 볼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위 관계자는 “여야 의원 모두 미표시제 전면 도입에 대해서는 찬성하고 있다”며 “소비자 편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시각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법 취지와 달리 되레 소비자가 불편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표시제가 운영되면 택시 기사들이 중개 어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하지 않고 길거리에서 직접 이용객을 받는 ‘배회영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가 소위에서 미표시제 전면 도입에 대해 유보적 입장을 밝힌 이유다.
어명소 국토부 2차관은 지난 11일 소위에서 “유료호출에 대해서는 미표시제를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무료호출에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하다”며 “미표시제를 강제화하면 오히려 택시기사들이 중개 앱을 꺼 놓고 다닐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특히 호출이 많은 출퇴근 시간에 택시기사들이 특정 지역에 몰려 ‘승객 가려 받기’를 할 위험이 크다고 본다. 정당한 사유 없이 승차거부를 하는 건 자격취소 처분까지 받을 수 있는 불법 행위지만 “공급 대비 수요가 많은 출퇴근 시간대에는 단속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미표시제는 택시기사들의 외면으로 시장에서 한 차례 실패한 전례가 있다. 2021년 사업을 시작한 우티(우버코리아·티맵모빌리티 합작법인)가 미표시제를 시행했지만, 이용률 감소로 2022년 2월 미표시제를 폐지했다. 당시 우티가 호출수락 한 건당 최대 5000원의 인센티브를 제공했지만, 택시기사들은 인센티브 대신 목적지가 표시되는 다른 플랫폼을 선택했다.
벤처업계는 이런 전례를 들어 미표시제가 소비자의 앱 사용 빈도 감소를 불러와 사업 위축을 불러올 수 있는 ‘악성 규제’라고 지적한다. 혁신벤처단체 협의회는 전날 성명서를 내고 “미표시제는 모빌리티 벤처업계를 규제의 틀로 옭아매는 제2의 타다금지법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토위 핵심 관계자는 “각 지역별로 택시업계 의견이 갈리는 상황이라 의견 수렴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이용객 편의를 고려하되 산업 파급력을 최대한 줄이고자 하는 업계의 우려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방안을 다듬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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