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먹으며 33시간 사투… 무사히 사우디 도착

장은현,박준상 2023. 4. 25.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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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 교민이 전한 탈출기
한국 군용기 타고 귀국길 올라
26명 오늘 오후 서울공항 도착
교전 중인 북아프리카 수단에서 탈출한 한국 외교관과 교민 28명이 24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 도착해 군용기에서 내리고 있다. 외교관과 교민 일행은 제다에서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 KC-330 ‘시그너스’에 탑승해 서울공항으로 직행할 예정이다. 사우디 국영 알아라비야방송 캡처


수단의 한국 외교관과 교민 28명이 교전 중인 수도 하르툼을 탈출해 24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 도착했다. 이들은 33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북동부 항구도시 포트수단으로 이동한 뒤 한국 군용기에 탑승해 수단을 빠져 나왔다. 제다에서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 KC-330 ‘시그너스’에 탑승해 서울공항으로 직행할 예정이다. 대통령실은 한국행을 희망하는 26명은 25일 오후 서울공항에 도착하며, 당장 귀국을 원하지 않은 2명은 제다에 머무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교민 이송은 ‘프라미스’라는 작전명으로 진행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작전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고받았고,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이 윤 대통령 지시에 따라 서울에서 우리 국민의 안전한 철수를 지휘했다. 프라미스 작전 과정에서 미국과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 등 우방국의 적극적인 협조를 받았다.

교민 A씨 등에 따르면 남궁환 주수단 대사를 포함한 외교관과 교민들은 전날 새벽 5시30분쯤 주수단 한국대사관에서 탈출을 시작했다. 처음엔 도착지 포트수단까지 차로 13~15시간 걸리는 경로를 이용할 예정이었지만 안전을 위해 경로를 바꿔 이동에만 약 33시간이 걸렸다. A씨는 “수도 밖으로 이동하던 중 총격 소리가 한 차례 들려 일시 정지한 뒤 다시 움직였지만 그 이후부터는 검문소를 큰 문제 없이 통과했다”고 말했다.

북아프리카 수단에서 탈출한 343명이 24일(현지시간) 요르단 암만 마르카 군 공항에 도착해 군용기에서 내리고 있다. 이들은 독일 이라크 요르단 팔레스타인 시리아 국적이다. 지난 15일 발생한 수단 군벌 간 무력 충돌이 계속되면서 각국은 배편과 항공편 등을 통해 자국민 구출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포트수단 국제공항에 진입한 시간은 현지시간으로 24일 오후 2시40분(한국시간 오후 9시40분)이었다. 외교관과 교민 일행은 공항 내 검문을 거쳐 군용기에 탑승, 귀국 절차를 시작했다.

이들이 육로로 이동하는 동안 수단 신속지원군(RSF)과 아랍에미리트(UAE) 대사관이 이들이 탑승한 45인승 버스를 호위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버스에는 일본인 5명도 동승했다고 한다. A씨에 따르면 하르툼에서 시 외곽으로 이동할 때는 오토바이를 탄 RSF가 일행을 지켰고, 일정 시간이 지난 뒤부터는 UAE 대사관 차량이 이들을 에스코트했다.

긴 이동 시간 탈출 일행은 미리 준비한 김밥 40줄과 경단 떡을 먹으며 버텼다고 한다. A씨는 “교민들이 비상식량으로 갖고 있던 과자와 라면, 오징어포, 인삼차 등을 서로 나눠 먹었다”면서 “화장실에 가기 어려워 (음료 등을) 많이 먹는 것은 피했다”고 말했다.

앞서 이들이 대사관에 모두 모일 수 있었던 것은 남궁 대사의 위험을 무릅쓴 노력 덕분이었다고 A씨는 말했다. 남궁 대사는 탈출 3일 전부터 교민을 일일이 찾아 차량에 태워 대사관으로 데려갔다고 한다. 한국대사관 인근에서 격전이 벌어진 탓에 도보 이동은 생각도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탈출하는 탑승 수단 안에서 대부분 교민은 잠을 자는 모습이었다. A씨는 “지난 15일 교전이 시작된 뒤부터 교민들은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며 “집 안으로 총알과 탄피가 날아들어온 경우도 있어 계속 긴장한 채로 지냈다”고 말했다. 전기와 수도가 끊겨 교민들은 한동안 큰 불편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식료품과 생필품을 구하기 힘들어지면서 빈집 털이범이 생겨 외출하기도 어려웠다고 한다.

A씨는 하르툼에서 멀어질수록 마음이 안정됐지만 남아 있는 수단 국민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털어놨다. 그는 “탈출 직전까지 현지인과 통화했는데 외국인인 제 안전을 더 걱정해줬다”며 “교전이 빨리 끝나고 안정을 되찾기를 소망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수단에서 교민들을 이송하기 위해 시그너스를 추가 투입했다. 시그너스는 23일 오후 8시쯤 부산에서 이륙한 뒤 24일 오전 11시쯤 사우디 제다의 킹압둘아지즈공항에 착륙했다. 시그너스는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이 탈레반에 함락됐을 때 현지 교민의 조력자들을 구출하는 ‘미라클 작전’에도 투입됐다.

장은현 박준상 기자 e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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